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안보

제목 '法治國家' 이대로 좋은가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3911
유 병 갑 (변호사)

법대 졸업전부터 법조의 일원이 되어 평생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나지만, 요즘 나는 심각한 회의에 빠지는 일이 자주있다. '이 나라가 법치국가 맞긴 맞나'하는 것이다. 법치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예사로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면 과연 이 나라가 법치국가가 틀림이 없긴 없는가 정말 이해가 안가는 희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 체계나 법 유관기관의 외관은 매우 그럴싸하다. 어떤 때는 법 집행이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혹하여, 동정의 눈물을 금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정사정 없는 냉혹한 법집행은 힘없고 약한 민초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인지 권세깨나 있고 돈이나 있는 소위 권력 유력층에게는 별로 신통할 약발이 없다는 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말단 공무원은 몇 십만원의 뇌물만 먹어도 바로 구속되는 판에, 분수에 안맞는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있던 어떤 자는 몇 천억원을 해먹고도 얼마 안있다가 나와서는 많은 옛졸개를 거느리고 폼잡고 거들먹 거리면서 요란한 행차를 즐기고 있다.

눈곱만치의 반성의 기색은 없고 재산은 어디에다 꼭꼭 숨겨 놓았는지 엄청난 추징금은 한푼도 안문 채 속으로는 집행당국 검찰을 비웃고 잇을 것이다. 나라와 사회에 큰 해독을 끼친 큰 도둑들 치고 끝까지 징역사는 꼴은 좀체 보기 어렵다.

국민의 이목이 있고 법 감정이 있으니 할 수 없이 구속 재판등 일정한 눈가림 절차나하고 나서 슬그머니 내보내는 구실은 너무나 많다. 병보석, 집행유예, 가석방, 특사 등은 역대정권이 늘 써먹어온 편리한 장치들이다. 그런 사람들 모두 다 나오는 것 보면 교도소에 남아 있어야 할 사람은 별로 없어야 하고, 교도소는 거의 문을 닫아야 할텐데도 전국의 교도소는 늘 만원사례다. 도대체 이런 현상을 누가 어떻게 설명하여 국민을 납득 시킬 것인가. '선거사범은 정당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한다. 당선된 후라도 가차없이 처단해서 의석을 박탈하겠다'고 하는 것이 어느 정권이나 선거 때마다 판에 박은 듯이 떠들어온 소리다. 그러나 선거사범이 여야불문하고 공평무사하게 처리되어 왔다고 믿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선거 사범 때문에 당선 후 의석을 뺏긴 사람이 더러 나왔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선거사범 재판 중에서 얼마전 요술과 같은 희한한 판결이 나와 한참 욕을 먹었다. 새로 당선된 한 야당의원이 선거사범으로 1심에서 벌금 5백만원의 선고를 받았다. 백만원 이상이면 의석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어떻게 된 판인지 2심에 가서는 야당탈당(여당입당 예정)이외는 아무런 사정변경이 없었는데도 위험선 아래인 팔십만원이 선고되어 퇴출을 면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판사들의 그런 곡예를 유발했을까. 두 개의 판결 중 어느 한쪽은 엉터리 판결이라고 욕을 먹을만 하고 해당 판사는 당연히 퇴출 해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꼴을 보고도 법치국가 만세를 부르짖을 바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법의 집행이 그렇게 불공평해지면 법에 대한 존경도 신뢰도 모두 떨어진다. 법을 의지하고 기대지도 않고, 두려워 하지도 않고, 너도 나도 무시해 버리면 법치국가는 어떻게 될까. 정말 아찔한 일인데도 모두가 너무나 둔감하다.

무법천지가 어떤 것인지 한번 상상이라도 해보자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법 이란건 그렇게 어려운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니다. 우리모두가 충돌없이 뒤섞이고 어울려 살아나가기 위한 교통 규칙 같은 것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률이다. 법은 체계화된 상식에 불과 하다는 알기 쉬운 풀이도 있다. 그 도덕률이나 상식은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고 고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법치국가이고 민주공화국이다. 민주법치국가의 간판을 내건지 반세기나 되었다. 법을 만들고 운영하고 집행하는 모든 사람들, 그들의 멱살을 틀어 쥐고 있는 정치 권력자들은 뼈아픈 자기 반성을 서둘러야 한다. 법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행세하지 무법천지가 되면 그들이 먼저 다칠수도 있고, 국민 모두가 다같이 고통을 받게 된다. 공정한 법 집행만이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편하게 살아 나가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