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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制憲 50주년 기념 심포지움/ 정치권력과 정치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4107
政治權力과 法治

車 鏞 碩 (한양대 명예교수)

1. 머리에

정치와 법은 본래 역설적인 친소관계를 갖고 있다. 정치측에서 볼 때에는 일면에는 법에 의한 억제를 바라지 않고 그로부터 이탈·반발·초월하는 내적 경향을 가지면서 다른 면에서는 支配를 장기화하기 위해서는 법을 도구로 이용하여야 하고 또한 스스로도 遵法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법의 효력을 담보하여야 한다. 이것은 곳에 따라서는 공공복지나 애국적인 명목의 표방아래에서 실질적으로는 정치권력의 파쇼적인 또는 적나라한 폭력을 합법화하여 국민을 통제하기 위하여 법을 이용한다. 이렇게 하여 정치권력은 법에 대한 적대적인 성향을 띄우면서 법을 억압의 도구로서 합리화하여 그에 의존하고 존중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유사한 역설적 현상은 법의 입장에서도 간취된다. 법은 다양한 정치요인중 주로 정치과정에서 형성되고 정치에 있어서의 利害對立이나 힘의 관계로부터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 반면에는 스스로를 탄생케 한 여러 관계를 규율하고 정치에 대해서도 통제적 기능을 가한다. 법은 일반적으로 형성된 뒤에는 구체적인 타당성(형평성)을 기하면서도 추상적인 正義를 지표로 하여 靜적慾的·현상유지 즉, 법적 안정성을 기하려 한다. 이에 반하여 정치는 본질적으로 다이나믹하고 구체적 이해관계나 힘의 관계에 따라 狀況的 變化를 거듭한다. 속된 표현에 의하면 정치는 허위와 사기성이 농후하여 沒理念的·몰체면적·상황적 변질성을 상례로 하는 장면이다.

양자의 관계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현저히 다르긴 하겠지만 우리의 역사에서는 역설적인 또는 충돌적인 상관관계를 맺어왔다. 우리가 흔히 '經濟論理', '政治論理', '法論理'라는 용어를 구별해 쓰는 것도 각각 성격을 달리하는 면을 강조하는데서 유래한 듯하다.

첫째 것은 합리성·효율성을 둘째 것은 무원칙성·동적·목적지향적·가변적인 성격을, 셋째 것은 안정성·정태성·정의성을 강조하는 논리를 일컫는 듯하다. '훼나'는 현상학파의 맥스·쉘라의 생각을 수용하여 法形成力으로서 物的因子(Realfaktoron)와 理念的因子(Idealfaktoron)를 고려하면서 전자에 대해서는 생식본능·먹는 본능·권력본능에 대응하여 生物學的·經濟的·政治的(權力政治的)인 제요소를 들고 있다. 生物學的 因子는 가장 불가변적이고 경제관계·정치관계 순으로 가변성(변질성)이 강하다고 하였다. 법이 그러한 물적 관계에의 의존성이 강할수록 법의 변화도 불가피하지만 다른 한편 이념작 인자에 의한 통제를 받기 때문에 객관성·획일성·沒自意性·정의·형평성·법칙성을 띄우게 된다.

그러나 정치가 국민의 의식의 내면화되어 통합된 힘을 얻기 위해서는 정당성을 구비하여야 한다. 이 때의 정당성은 바로 법의 이념이다. 법이 정치에 의하여 형성되고 때로는 정치에 의하여 파괴·유린되기도 하지만 결코 정치의 괴뢰가 아니고 더 높은 차원에서 정당성(정의)에 의하여 법을 만들고 법의 운영을 감시한다. 이번에는 정당성에 의하여 형성된 법은 정치권력을 억제·통제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올바른 정치권력은 참된 법치의 틀을 벗어나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명제 아래 우리의 현실에서는 억압적·우위적 위치에서 난무하는 정치권력을 참된 법치의 규범으로써 통제하게 하는 방향을 모색해 보려는데 본 논제의 의미를 찾을까 한다.

2. 정치지배의 도구로서의 법

폭력적으로 또는 혁명적으로 기성질서를 파괴하고 지배체제를 구축하려는 경우에는 법을 단순한 정치수단으로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적나라한 폭력적·자의적 통치를 조직화하여 피치자를 억압하는 도구로서 법을 이용한다. 루소가 지적한 것처럼 "가장 강한 자라도 그 실력을 권리로 바꾸고 복종을 의무로 전환시키지 않는 한 언제나 지배자로서 강력할 수는 없다". 즉 지배의 지속을 위해서는 국민의 복종을 의무화시켜서 법규범에 의한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폭력 또는 자의의 규범화). 여기에서 정치는 법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경우의 법은 정치의 시녀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정치는 스스로 법적 통제를 받기 싫어하면서도 법에 의존하고 법을 떠받드는 경향을 보인다. 총검 또는 권력(실력)만으로서 민중을 지속적으로 지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복종의 의무화·규범에 의한 질서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법은 예링이 말한 것처럼 가장 좋은 힘의 정책(Politik der Gewalt)이다. 그런데 그 정책의 유효성은 담보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법이 국민의 내면적 복종을 이끌어 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그 내용이 국민의 이익과 합치하는 것으로서 적극적인 국민적 콘센서스를 얻는 다는 것이다. 둘째 권력측에서도 자진하여 법치 내지 준법을 실현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 민중의 준법정신을 함양시킨다. 권력이 스스로 법을 유린하거나 편파적으로 적용하거나 또는 조령묘개식의 입법정책을 펴간다면 민중의 반항을 불러 일으켜 종국에는 비극을 겪을 수밖에 없다. 권력측은 그의 지배를 위하여 제정한 법에 스스로도 억제·통제되어야 한다.

위의 두 조건의 실현은 권력측의 진실하고 지속적인 태도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권력측의 위선적이거나 내심과 표현이 상반되는 이중잣대에 따른 태도를 은폐하고 목전의 통제의 필요성 때문에 취하는 일시적 기망적 '쇼'에 불과한 경우에는 그러한 권력의 종말도 불을 보듯 명확하다. 법이 정치권력의 지배를 위한 도구로만 이용되는 경우에는 법에 의한 정치권력의 통제는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 이러한 예는 역사적으로 수없이 증명되었다. 권력집단내에 법 무시·법 초월적인 방자한 부차문화(subculture)가 형성되어 거기에 젖은 자는 불가피하게 규범의식이 둔마되어 불법을 자행하게 된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특히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하는 경향을 띠운다"(Acton)는 명제가 그대로 실현되고 만다. 지배의 도구로 사용된 법은 권력을 억제하기 보다는 권력과 함께 타락한 시녀의 역할로 전락한다. 이 현상은 우리의 근대·현대의 역사에서 진리로 증명된 원칙이다.

3. 정치의 규범으로서의 法의 理念

법이 자연과 사회의 모든 질서를 지배하는 초월적인 법칙(고전적 자연법 사상)이라고 여겨질 때에는 고대 희랍시인들이 읊었다고 하는 "법은 모든 인간과 신들의 왕"으로서 권력자를 규율하는 규범으로 된다. 다양한 내용을 갖는 자연법이 역사상 직 간접적으로 정치권력을 규제하거나 그에게 방향을 제시한 역할은 컸다고 하겠다. 오늘날의 입헌주의를 둘러싼 헌법투쟁은 그러한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법은 법이라고 불리워지긴 하지만 강제력을갖고 사람들의 행동을 규율하는 실정법은 아니다.

실정법적 관점에서도 권력층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법이 권력을 역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서도 실증된다. '법의 지배'를 비롯한 근대 입헌주의의 제 원리와 제도(권력분립제, 법에 의한 행정, 국민의 대표기관에 의한 입법, 법 앞에서의 평등 등)는 '법에 의한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실정되는 제 제도나 원리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자체가 권력의 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법의 우위를 명하고 있다. 입헌주의의 제 제도는 권력의 자의를 억제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정치를 법의 통제아래 위치시키려는 노력의 성과이다. 그러한 입헌주의적 제도의 관점을 떠나서 고찰해 볼 때에도 법의 이념은 곧 정치를 억제하는 정치의 규범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치는 다양한 목적을 조정 조화시키면서 공공의 복지이념을 실현한다. 그 실현을 위하여 법을 만들어 여기에 준거한다. 이렇게 볼때 법은 정치에 의하여 창조되어서 그에 봉사하는 기능을 한다고 하겠다. 정치는 실력을 배경으로 하는 이념적 활동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때의 실력은 적나라한 물리적 힘이 아니고 국민의 의사력에 의하여 통합된 단결력이다. 그 국민의 의식에 내면화되어 통합된 힘을 얻기 위해서는 정당성을 구비하여야 한다. '플라톤'의 말에 의하면 정당한 자에게 힘을 주거나 힘있는 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여야 올바른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때의 정당성은 바로 법의 이념이다. 앞서 말한바 있지만 법이 정치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때로는 그에 의하여 파괴되기도 하지만 결코 정치의 괴뢰는 아니다. 법은 더 높은 차원에서 정치가 법의 이념, 곧 정당성(정의)에 의하여 법을 만들고 법을 운영하는가를 감시하고 있다. 특히 정치가 법을 파괴하려는 경우에는 그것이 사회의 다양한 목적의 조화와 참된 공공의 복지의 증진을 위하여 부득이한 조치인지 어떤지를 엄중히 감시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의 자의에 의하여 지배되지 않는 법의 자주성이 있다.

헌법에 의한 인권보장 및 민주적 공공복지의 이념은 모든 정치활동을 정당한 법 내지 법정신에 종속시킬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법을 통한 엄격한 자기지배라고 하겠다. 본래 법에 의한 지배의 원리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확립된 것이다. 이것이 전체주의 아래에서는 정치의 자기제약의 강조보다는 국민에 대한 전제적 법질서에 대한 준법의 강요로 나타난다. 민주질서를 위장한 독선적 편파적 정실적인 정치행태도 마찬가지이다. 법이 정당성을 갖고 또 그 실천력이 정치권력의 자기 시범에 의하여 확증되면 국민의 자발적인 준법은 더 용이하게 행하여진다. 이것과 관련하여 '파스칼'의 말을 인용해 보자. "올바른 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고 가장 강한 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필요에 따른 것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항에 부딪쳐 무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악인이란 늘 있는 것이니까. 정의 없는 힘은 압정이 되어 비난을 받는다. 그러므로 정의와 힘은 함께 구비하여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바른 자를 강하게 하거나 강한 자를 바르게 하여야 한다. ...... 그러나 사람은 정의에 힘을 부여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힘은 정의에 반항하고 이쪽이 부정이고 자기들이 정의라고 우겨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른 자를 강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강한 자를 정당하다고 하였다"(팡세 298절) 사실 권력이 자의에 의하여 법을 형성한 경우에도 정의의 실현이라는 명목을 표방하는 것이 일수이다. 이와 같이 정당성을 위장한 정치권력에 의하여 만들어 진 법은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내심에서의 준법을 이끌어 낼 수 없고 종국적으로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권력이 비참한 종국을 맞게 되는 것이 일수이다.

정당성을 갖춘 정치권력은 헌법적 요청에 충실한 법의 이념의 실현이어야 한다. 근대국가의 법치의 진정한 의미는 정치권력을 엄격히 규제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장을 확대·강화하는데 있다. 물론 국민의 기본권존중에서도 어떤 것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시민적·자유주의적 법치주의와 사회적·복지주의적 법치주의로 나눠진다. 전자는 국가권력에 대한 억제를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고전적 법치국가사상을 기반으로 하는데 대하여 후자는 국가권력의 개입을 통하여 국민의 실질적인 평등권의 보장을 중시하는 현대적 법치국가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근대와 현대가 병행발전을 요하는 우리사회에서는 그 양자를 다같이 강조하면서 실질적 법치를 지향하여야 할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획일성·확실성·공정성·예측가능성을 본질로 하는 법의 기준에 따라 정치권력과 행정의 제작용이 발동되어야 한다. 시민에게는 같은 사정에 놓여 있는 같은 사례에 대해서는 같이 다루고, 같지 않은 사례에 대해서는 달리 취급하여야 한다. 실질적으로는 정치사회에서의 가치·이익·부담 특히 기본적인 권리·의무의 적정·공정한 배분·조정을 기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출신·신분·재능 등의 사회적·자연적 우연이 미치는 영향을 되도록 최소로 줄이며 개인의 다양성과 독자성에 대한 진지한 배려를 기하고 전체로서의 사회경제적 이익의 증진이라는 명목아래 개인의 기본권신장의 요구를 함부로 희생시키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가장 불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익의 극대화를 기하도록 배열함을 중시함으로써 극복 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사회의 평등 뿐만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법적 정의에서 중요한 배려로 작용한다.

권력에 제한을 가하여 이것을 법의 지배에 복종시키려는 근대입헌주의의 제 원리는 주로 서구사회에서 오랜 정치적 항쟁이라던가 절대권력과의 대결속에서 쟁취되어 형성·발전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권리신장운동이 있는 곳에서는 권력의 억제가 필연적인 결과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입헌주의의 보편적 원리가 신분사회적 특징이 아직도 국민생활의 모든 영역에 깊이 깔려있는 우리사회에서는 그대로의 실현은 기대될 수 없는 것이다. 권력집단을 비롯하여 상하를 막론한 관료집단, 그리고 다양한 사회집단의 내부에는 법무시·법회피·법초월의 불법·무법의식, 양반·권위의식, 편파·정실주의 생활양식, 개인의 존엄을 비롯한 헌법상의 권리의식의 마비 등을 특징으로 하는 부차문화(subculture)가 성행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에서는 참된 법에 의한 정치권력의 억제·통제, 이어서 일어날 국민의 준법의 생활태도는 현단계에서는 연목구어 현상으로 비유 될 수 있을 것이다.

4. 정치권력의 우월성과 부정·부패와의 유착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입헌적 ‘법의 지배’의 원리는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민주주의가 내외의 위기에 직면하여 권력집중경향으로부터 그 자리의 양보를 강요받았다. 군사국가 내지 전쟁국가에서의 군사지배는 법치 또는 법의 우위와는 정반대의 원리로서의 폭력적 지배를 낳았다. 2차대전후의 피식민지로부터 해방된 다수의 신흥국가는 급속한 국가건설과 경제발전을 위하여 군부를 중심으로 한 독재정치의 길을 걸었다. ‘라이트 밀즈’가 전쟁귀족(war-lords)이라고 지칭한 장군들을 중심으로 하여 직업적 폭력인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움직이게 된다. 위기관리, 국가의 안전, 또는 경제개발을 표방하여 법치의 원리는 무시되고 강권정치에 의하여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위한 법치의 후퇴는 불가피하였다. 규범에의 의사는 권력에의 의사에 의하여 대치되었다.(W.K gi) 폭력의 규범화현상이 초래된다.

절대권력은 그를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론을 비롯한 모든 정보전달장치는 엄격한 통제나 권력의 수중에 들어 있기 때문에 불법·탈법이 자행되고 그 결과 절대로 부패의 길을 치닫을 수밖에 없다.

이 현상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후진개발독재국가에서의 보편적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민주주의의 상징적 국가인 미국에서도 국제적 긴장과 시회적 혼란이 격심한 때에 권력의 불법·범죄가 수없이 자행되었었다. 정치권력의 범죄·불법은 권력을 쟁취·유지하기 위하여, 정부관리가 일반시민에게 방자함을 과시하기 위하여 또는 취부를 위하여 저질러진다. 1973년에 있었던 소위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 범죄인을 가리켜 ‘미국을 도적질한 자’라고 일컫게 될 만큼 권력의 불법이 자행된 사건으로서 그 결과 막강한 권좌에 앉았던 닉슨을 퇴출시켰다. 정치권력의 불법이 정점에 이른 사건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법치원리가 권력을 통제·견제하여 권력의 재임중에 사법적 처리를 가하였다는 점에서 법치의 모습을 실증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막강한 백악관의 권력이 언론을 통제할 수 없고 또 법치원리에 따른 각종의 의회·검찰·법원 등의 활동이 정치권력의 법에의 예속을 실증한 사건이었다. 우리의 사회에서는 권력의 자의적 난무현상을 법적으로 억제·통제하지 못하고 또는 않다가 권력이 퇴출된 뒤에 국민의 여론에 쫓겨 정치논리에 따라 법적 처리로서 뒷북을 치는 현상과는 극단적 대조를 이룬다고 하겠다. 우리의 권력의 난무는 법치와는 상관없이 다른 새로운 권력자의 의지나 국민여론 등 (정치논리)에 못 이겨 사법적 처리를 가하는 관례가 생겼다. 정치권력은 아무런 법적 제약을 받지 않고 춤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권력층의 모든 행위는 헌법과 기타의 실정법에 근거한 정치작용이어야 한다. 예컨대 고급관료의 임면권이나 사면권의 행사도 법에 근거하여 발동된다면 그 공권행위는 근거법규의 정신에 따라 객관성·공정성·예측가능성에 적합하게끔 적정하게 행사하여야 할 법적 의무를 지는 행위이다. 권력자의 그 모든 공권행위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헌법정신에 합치하여야 한다. 흔히들 권력자의 그러한 행위를 그의 ‘고유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치원리에 반한다. 그의 모든 공권행위는 물론이거니와 사적행위까지도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법치원리의 정신에 부합하여야 한다. 법치원리나 그에 따른 諸制度를 오랜 동안의 전대권력과의 투쟁에서 스스로 쟁취한 사회가 아니고 형식적으로 모양새를 맞추기 위하여 그들을 이식한 사회에서는 그러한 기본적 정신이 권력자에게 결여돼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5. 참된 法治를 위한 提言

근대 입헌국가가 표방하는 ‘법의 우위’확보가 시급한 과제이다.‘법의 우위'는 본질적·역사적으로는 권력의 기본권을 보장·확대하기 위하여 정치를 법의 통제밑에 두려는 투쟁적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한 법의 우위 내지 법치를 확립하기 위한 제조건을 생각해 본다.

첫째 법이 민주적 공공복지이념에 투철한 정치에 의하여 헌법상의 적정절차에 의하여 형성되고 그 이념을 구현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전제적이거나 무능한 정치권력을 통제하는 내용과 절차를 담아야 한다.

둘째, 법은 루소가 말한 ‘일반의사’의 표현이라고 할만큼 이성에 적합한 내용을 가져야 한다. 특정계층이나 특정집단 내지 정파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내용을 갖는 법은 정치권력과 특정계층의 시녀적 기능밖에 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법의 권위는 실추되고 법에의 불복종현상이 초래된다. 법이 국민의 내면적 복종을 불러 일으키려면 국민일반의 이익과 가능한 한 조화되는 내용을 가짐으로써 국민적 합의에 근거한 것으로 평가된다.

셋째, 민중에게 준법정신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는 권력 내지 지배층에서부터 준법을 시법하여야 한다. 본래 자유사회에서의 법치주의는 국민에 대한 준법의 강요에 앞서서 지배층의 법치가 선행되어야 함을 요구된다. 권력이 스스로 법을 유린하거나 법을 초월하게되면 국민에 대한 준법강요는 무의미해 진다. 권력이 방자하게 법초월적 태도를 보이면 엄청난 부정의의식(sense of injustice)이 국민에게 조성된다. 강자는 스스로에 대해서는 법에의 구속이 엄격하여야 하고 국민에게는 그 적용이 평등하고 관대하여야 한다. 정부나 권력의 불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Louis Brandeis의 한마디를 인용해 둔다.「In a government of laws, the existence of the government will be imperilled if it fails to observe the law scrupulously. Our government is potent, the omnipresent, teacher. For good or evil, it teaches the whole people by its example. Crime is contagious. If the government becomes a law breaker, it breeds contempt of law; it invites every man to become a law unto himself ; it invites anarchy」(Liebman, J. K, How the Government Breaks the Law, 1973, p.15)

넷째, 정치를 통제 감시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참여와 감시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홉스의 표현처럼 「정치권력은 계속적으로 권력을 추구하여 죽음에 이를 때까지 휴식할 줄 모르며 지배의욕과 연결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법의 통제의 무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국민적 참여와 감시가 필요하게 된다. 부패 무능력하거나 방자한 권력 행태에 대해서 국민적 무관심과 방임은 그 사회의 장래를 희망 없게 만든다. 양심적인 국민의식의 환기와 도의정신의 활성화 없이는 그 장래는 구제불가능하다. 꾸준한 감시와 비판이 법을 제 궤도로 복귀하게 한다.

다섯째, 위의 넷째와 관련하여 현대교육을 받은 법률가, 특히 변호사의 역할의 지대함을 강조하고 그들의 법치사회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촉구한다. 변천하는 사회에서의 법이 지닌 현대적 기능은 실로 다양하고 그에 따른 법률가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현대적 법의 기능인 인권보장 및 권력억지기능, 국민의 사회적 활동촉진기능, 분쟁예방·해결기능, 자원분배기능 등을 수행하면서 정부나 권력자에 대해서는 감시 조언을, 국민에 대해서는 법 계몽을, 사회적 약자나 강자에 대해서는 부약억강의 사회정의의 실현등에 선도적 역할을 하여야 할 책무가 있다.

이 자리를 빌어 이모임을 주축으로 하여 '法 正義 실천운동'을 전개하기를 제언하는바이다.이상의 조건들이 한국적 현실을 진단해 볼 때 순탄하게 이행 될 것인지 의문이다. 지배계층의 탐욕적 이기주의, 부패하고 무능력하며 보신 출세에만 혈안 되어 있는 일부 관료집단, 전 계층에 만연된 부정 부패문화와 가족이나 집단이기주의의 팽배, 이념 없이 상황에 따라 방황하는 정치집단,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는 소아병적 신드롬에 걸린 정계, 권력의 집중현상, 법의 권력통제 권력 남용억제기능보다는 보복적 도구로의 이용경향, 상대적 박탈감에서 치솟고 있는 욕구의 분출, 공공심을 잃은 시민의식, 만연된 부패 부정문화, 정실주의 불법 탈법 무법의식의 만연현상 등등 법적 풍토건설에의 장애요인을 어떻게 승화 극복할지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부재', '정치적 역량이나 비전의 결핍'등에서 읽을 수 있는 건설적 의미로서의 정치가 이 땅에서는 '협잡술', '탈법술', '마키아벨리즘', '극단적인 이기적 대치현상', '세 불리기', '공권의 사권화 거래', '비양심적인 뻔뻔함' 등으로 특징 되는 정치문화의 수준을 '정치와 법'의 본래의 자리에 어떻게 정립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한나라의 정치는 국민정신을 통합하여 국민의 결집된 힘으로 공동체의 통일을 확보하는 힘을 발휘하여야 한다. 그 정치력이란 그 국가와 그 시대의 구체적 사정에 응하여 국민이 추구하는 여러 목적에 균형을 이루게 하고 사회의 여러 세력간에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게 하며 적극적으로 균형 있는 공공의 복지를 증진하게 하는 힘이다. 이에 반하여 국민공동체에 내재하는 여러 목적간에 조화가 깨어지고 계층이 분열 항쟁하고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개인의 적나라한 욕구가 통제 못 할 만큼 분출하여 국민의 모든 생활영역이 위험스럽게도 위협받고 있는 것은 규범을 지키지 않는 방자하고 이성 잃은 정치, 아니면 무위·무능의 정치의 결과이다. 그것은 아무런 이념 없이 표류하면서 국민의 분출된 욕구나 그때 그때의 여론에 끌려 다니다가 때늦은 즉흥정치, 상황정치가 갖다준 귀결이다. 또는 폭력적 억압정치 뒤에 일어나는 공백에서 오는 산물이다. 즉 정당성 잃은 정치의 귀결이다.

정치가 준거하여야 할 규범은 그 시대가 요청하는 정당한 이념이다.그것은 다름 아닌 법의 이념이다. 정치에 올바른 방향을 제공하는 것이 그러한 법의 이념이다. 그것은 곧 국민적 합의에 근거한 이성적인 기준이다. 그것은 곧 헌법이념으로서 사회국가적 자유주의 세계관의 징표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이념을 법으로써 실현하는 것이 바로 정치라 할 수 있다

6. 탁월한 윤리성

정치에는 대항하는 정치세력을 극복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칼 슈미트는 정치에 포함된 대립의 계기를 '동지와 적의'관계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정치에는 타협을 통한 대립의 조정이 있고 그 뒤에는 공동체의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이 따른다. 이 때의 통일은 민주주의의 상대주의적 윤리에서 오는 관용과 이해로써 반대세력의 가치를 포용하는 것이다. 반대세력을 침묵시키고 통일을 가장한 독주로는 진심에서의 국민적 의식의 합치를 기대할 수 없다.

권력측에서는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자신이나 주변의 과오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지만 국민이나 반대세력의 주장이나 입장을 스스로의 내면으로 이끌어 들여 아무런 혐오감 없이 격의 없는 토론을 유도하여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는 윤리의 탁월성을 발휘하여 한다. 영국의 고사에서 크롬웰이 죽고 왕정이 복귀된 뒤에 제임스 2세가 절대주의로 환원하려고 했을 때 영국국민은 그를 추방하려고는 했어도 살해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였다. 그가 도망하는 것을 본 어떤 어부가 포상을 기대하면서 그를 체포하여 정부에 넘겼다. 그러나 그 어부가 받은 것은 포상이 아니고 호된 질책이었다. 영국 정부는 제임스 2세가 다시 도망하는 것을 못 본체하고 그로 하여금 무사히 도망하게끔 내버려두었다는 일화는 칼 슈미트식의 사고에는 커다란 교훈이 될 것이다. 반대세력이나 비판세력이 있으므로 현존하는 권력은 그 만큼 단련 강화되고 자기를 뒤돌아보는 순간을 가지면서 원숙의 경지로 접어들게 되므로 그들에게 용서와 화해의 탁월한 도덕성의 발휘가 요청된다.

정당한 법질서에 의하여 스스로를 엄격히 구속하면서 탁월한 정치적 비전을 갖고 국민의 부당한 욕구불만을 설득 진정 순화시키면서 정당한 방향으로 국민의 단결력을 결집 유도해 나갈 경세가(經世家)의 출현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에 서 있다. 불안하게 방황하는 국민생활을 바로 잡아 둘 정치력과 이념에서 도출되는 정법(正法)의 출현이 간절히 요청된다. 이러한 정법은 참된 정치이념을 구현하고 헌법적 요청을 실현하는 권력제약적 통제적 내용을 담아야 한다.

국가가 위기에 직면할수록 정치권력은 법치의 규범에서 벗어나서 방자한 전횡의 길로 걷는 경향을 띄운다. 이런 때에도 권력은 시대의 요청에 부합하는 이념을 제시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도록 노력하고 이어서 그 이념은 정당한 절차에 따른 적정한 법을 통하여 구현되게 하여야 한다. 전근대적 봉건적 왕조시대의 카리스마를 표방하여 난관극복이라는 미명아래 정당한 법에의 호소를 기피하고 자의적 독선에 흐르게 되면 새로운 법치주의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고 이것은 곧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의 규범화 시대를 열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