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안보

제목 制憲 50주년 기념 심포지움/ 정치와 자유정신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4147
政治와 自由精神

金尙哲 (변호사/한미우호협회 회장)

1.政治, 人治, 위력의 支配

(1)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기본권의 보장, 권력의 분립과 통제, 대의 민주제, 司法的 權利救濟 등 모든 법치국가의 요소를 다갖추고 있다. 이러한 헌법상의 제도와 권리의 보장은 명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규법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법으로 다스려 지고 法治主義가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리어 權力者가 지배하고 '人治'로 다스려 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80년대 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없이 90년대 이야기만 해본다 하더라도 김영삼정권 초기에 단행되었던 이른바 改革과 司正은 法治라기보다 '人治'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여론의 支配였다. 그러나 대중여론이란 무상한 것이다. 그때의 90%이상의 지지여론은 실종되고 이제는 어제의 그대통령에 대한 업적평가가 부정 일색으로 표변하였다. 現政府에 있어서도 정부 정책이나 대기업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법이 아니라 대통령의 생각과 말 한마디이다. 공직자들과 언론의 대통령을 바라보기만 하는 태도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시되는 용어가 軍출신의 경우 '국가'와 '안보'에 있었다면 대중정치인의 경우 '民主主義'와 '改革'에 있다는 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권위주의적 지배의 흐름 자체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다.

(2) 돌이켜보면, 한국사회는 너무 오래동안 권력자가 지배하고 위력이 지배하여 왔다.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 오만해지고 약자 앞에서 군림하려는 것이 인간의 악성의 한 표현이라고는 하겠으나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굴종과 군림의 형태가 너무 뿌리 깊고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 비굴하고 반인간적인 행태는 구조적이라기 보다 습성상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과연 한국사회에서 권력자의 지배나 그 어떤 횡포에 무릎을 꿇지 않고 달리 살아날 길이 있느냐는 반문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더 이상 과거처럼 제도적으로 기능하는 권력의 억압장치가 없고, 정보는 공개되며 비밀은 폭로된다. 인권보장과 권리구제의 제도와 규범은 死文化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살아있다. 권력의 탄압은 그 수단과 정도에 있어서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도 사후 구제절차까지 봉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보면 근본적인 문제로서 만일 정의를 위해 투쟁하려 한다면 이로써 어느 정도의 희생이나 박해를 받게될 것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불가피 하므로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이미 고문이 근절되고 제도적 억압 장치가 철폐된 지금 만일 우리가 권력의 지배를 용인하고 이에 굴종 한다면 실은 변명의 여지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굴종을 선택하였기 때문이요, 눈 앞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권력의 지배 현상에 대하여 권력자와 권력기관을 핑계하거나 남의 탓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전에는 전직 대통령을 불법적 억압과 독재를 했다 하여 교도소로 보냄으로 써 스스로의 굴종 책임에 면죄부를 만들어 넘길 수 있었을지 모르나, 다수의 선택을 거친 이제 와서는 그러한 책임전가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 법치를 원하고 한국 사회가 정녕 법치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면,우리는 이제 법치를 세우려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법치의 근본은 과연 무엇인지를 성찰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 法治의 根本 - 自由人으로서의 選擇

(1) 법치주의는 특정 개인이나 기관 또는 집단의 자의적인 권력행사, 즉 야만적이고 권력발동에 대한 거부이다. 법치는 곧 국가의 자연질서의 정리된 재현으로서, 국가 구성원 각자의 존엄성과 이익이 최대한으로 보장되는데 필요한 사회구성원리이다. 법치는 곧 국민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최고의 기본가치로 전제하며, 그 존엄성을 보장하는 조직원리이다. 그러므로 법치는 모든 개인이 존엄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한,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하며, 행동할 권리를 갖는 것을 전제로 한다. 법치는 곧 자유인으로서의 자연적인 선택이며, 그 결과로서의 사회계약이다. 계약의 요건은 자유의사이다. 자유의사는 자유인의 의지의 발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있어서 자유인의 역사는 일천하다. 우리민족은 조선왕국 시대에는 중국을 종주국으로 섬기는 군주제하에서 살아왔고, 그후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속국으로 살아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건구구한지 50년이 되었으나, 세계 공산주의의 야욕에항 거하기 위해서 미국 등 우방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자유의 제한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自由人으로서 정신과 자세를 익히고 키우는데 제약과 장애가 많았다고 하는 점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2)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들의 자유인으로서의 역사는 서양 선진국들에 비해서 아직 많이 뒤떨어진다. 지난 50년의 세월로써 少年期를 지났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이제 겨우 靑年期로 접어드는 단계이다. 안정이 되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본다면 思春期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있어서 '시민계층'이 분명 크게 성장했으며, 자유정신이 많이 성숙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첫째로, 두터운 중산층의 형성을 통해서 이룩되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주택 소유율은 80%에 이르고 있고, 매우 낮은 실업율과 아주 높은 저축율을 보여왔다. IMF경제 위기에 따라 중산층이 부분적으로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한번 형성된 중산층 의식이 쉽게 사라지지는 안을 것이다.

  둘째로 왕성한 비판정신과 권리의식의 성장이다. 민주화의 저항과 투쟁의 과정에서 비판과 권리주장은 체제와 권위의 와해를 염려할 정도로 왕성하였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부정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권리의식의 발달과 그 적극적 표현은 시민정신의 함양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은 책임정신과 자발성 그리고 봉사정신의 자세라고 하겠다. 본래 사회나 남에 대해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비판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은 아직 없기 마련이다. 만들어 지고 세워지는 것은 오직 책임 수행을 통해서 이고 일의 성취는 책임정신과 자발성에 의하여 양과 질이 결정된다. 그리고 권리 주장만 있고 봉사와 희생이 없으면 균열과 부족이 봉합되고 메꾸어지지 않으므로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자유인은 자유의지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유인은 항상 대가를 치르며 공자를 바라지 않는다. 자유인은 억압 때문에 억지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원하여 하며, 늘 기쁨으로 하고 또 가끔 선한 덕성을 발휘하여 봉사로써 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정신인 것이다.

3. 自由精神과 國家理念

(1) 우리가 만일 자유정신으로 충만한다면 자연히 국가의 이념은 다음과 같은 것이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이고, 통일한국의 이념이며, 모든 문명사회의 보편적인 공동체 이념일 것이다. 첫째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다. 모든 인간은 인종과 성별과 신체와 교육정도와 근면성과 도덕 수준의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존엄한 인간으로서 존중되며, 무슨 이유와 명분으로든지 인권을 탄압하거나 법 앞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존엄하다. 둘째로, 개인의 자유와 보장이다. 자유는 도덕적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가치이다. 자유없이 도덕이 없고 책임이 없다. 국가는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최대한으로 발현 되도록 보장하고, 보호하며, 간섭과 규제는 최소한으로 억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자유와 창의의 활동의 결과 얻어지는 소산은 각자에게 귀속되며, 사유재산권은 보장되고 상속이나 기증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권리이다. 아무리 공공복지라든지 경제적 정의 라는 명분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합리적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자유는 내재적으로 어디 까지나 질서안에서의 자유이다. 각자의 자유는 질서를 통하여, 질서안에서만 발현될 수 있다. 질서는 자유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 본질적인 가치이다. 사실 우주와 대자연의 근본은 바로 자연의 제일의 법칙인 것이다. 셋째로, 국가의 가치이다. 국가란 인위적인 사회계약의 산물이기 보다는 자연의 산물이다. 인간 생활의 기본단위는 가족으로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국가라는 단어는 나라라는 말과 가정이라는 말의 복합어로서 국가는 가정의 자연스러운 연장체이다. 국가, 즉 인간의 정치적 조직체는 인간의 사회생활이 낳은 자생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국가를 뒤집어서 국가의 개혁을 시작하겠다는 꿈을 가져서는 안되며, 국가의 결점에 대해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상처에 겸허한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접근 하듯이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관은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와 양립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유야 말로 국가 자체의 생명의 샘터이고 에너지이다. 국가는 그 안에 있는 자유의 정도에 따라 생명과 활력이 있기 때문이다.

(2) 우리사회는 90년대 이래 '改革'이 마치 거역할 수 없는 명분 처럼 주장되어 왔고, 현 정부에 들어서서는 '구조재조정'이 새로운 정책이나 되는 것처럼 강조되고 있지만, 개혁이나 구조재조정이나 모두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우리의목표는 어디까지나 自由精神과 創意活動의 존중과 보장에 있어야 하며,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法治에 의해야 하고 咨意와 偏見에 의해서는 아니된다. 法治는 언제 지켜지는가. 왕성한 自由精神에 의해서만 지켜진다. 法律과 適法節次에 의하지 아니한 자유의 침해와 훼손에 대하여 단허하고분명하게 '아니오'하는 용기있고 정직한 자유인들이 도처에서 버텨주어야 비로소 法治가 지켜진다. 그렇지 못하면 권력이 지배한다. 法治는 자유인만이 누릴 수 있는 귀중한 열매이다. 이열매를 따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고, 그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공짜는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