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께 드립니다
어려운 사회적 변혁기에 정의, 평화,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계시는 대통령께 경의와 치하를 함께 보냅니다. 대통령님의 앞날에 영광과 정진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지금 가장 중대한 과제로 우리앞에 다가와있는 소위 제주 4.3사태에 관하여 몇 말씀 드리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113명과 국민회의소속의원 103명의 이름으로 소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각각 국회에 제출되었습니다. 제주 4.3 진상규명, 명예회복추진위, 범국민위라는 단체도 이와 유사한 취지를 담은 "특별법안"을 성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과 때를 같이하여 소위 제주 4.3사태에 관한 논란이 새삼 뜨겁게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감정을 누르고 이성을 앞세워 4.3 사태 성격규명을 위한 대화적접근을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세 법안의 근본성격은 동일한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위 법안들은 제주 4.3사태를 근본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의 양민학살"사건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권력을 폭력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군.경의 폭력진압행위"를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공산주의 폭력혁명론의 출발점입니다. 이 말은 위 법안들이 "공산주의 폭력혁명예찬"을 담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위 법안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사명의식에 투철하지 아니하다고 하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자유민주주의적인 헌법이었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을 제기할 사람이 없습니다. 바이마르공화국 국민들은 그들 헌법의 뛰어난 자유민주주의 정신때문에 그 제도는 저절로 지켜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가장 훌륭한 자유민주주의 헌법체제속에서 인류역사상 최악의 나치스독재체제가 싹트고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특별법안들이 제주도 4.3 사태를 "제주도의 양민에 대한 군.경의 무차별 대량학살사건"이라고 단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료분석과 연구를 거듭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사편찬위원회가 편찬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제주도 4.3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의 5.10총선거를 교란시키기 위하여 일으킨 무장폭동"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사편찬위원회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독단적으로, 4.3사태를 "공산주의자들의 무력폭동"으로 단정하였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주 4.3 사태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그 사태의 진압을 위해서 선포되었던 계엄령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계엄령이 적법하고 정당한 것이었다고 하면 법안제안자들이 주장하는 "군.경에 의한 양민학살"이라는 개념자체가 존립의 근거를 상실하고 맙니다.
국방부장관은, 1998. 8. 1, 제주도 4.3사태 진압을 위해 선포된 계엄령이 합법적인 것이었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법제처의 견해도 이와 같습니다. 계엄업무의 주무관청인 국방부장관과 법률에 대한 유권해석기관인 법제처가 4.3사태관련 계엄령의 합헌성에 관해서 확실하고 명백한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다른 개인의 주관적견해를 내세워 그것을 불법계엄령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계엄령이 적법한 것이라고 하면 4.3 사태를 "공권력에 의한 불법학살사건"이라고 하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존립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위 법안은 출발점에서부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됩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4.3 사태진압을 위해서 선포된 계엄령이 적법한 것이었다고 하면 "양민에 대한 불법학살"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이 문제를 계엄령선포의 대상이 되었던 난동행위자의 측면에서 살펴봅니다. 4.3 사태의 주동자들이 격렬한 남로당계열의 공산당원들이었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점은 김대중대통령께서도 인정하였습니다. 계엄 군.경에 의하여 체포되어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2,971명의 죄명이 내란죄, 살인죄, 방화죄와 국가보안법위반죄였다고 하는 사실도 분명한 것입니다.
4.3사태가 진압된 후에 그 사태를 주동했던 몇몇 사람들은 북한으로 탈출하여 거기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것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내란죄", "국가보안법위반죄","방화죄"의 범인들이 어떻게 해서 "선량한 도민"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위 법안제안자들은 무엇을 하다가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희생되었는가 하는 점을 가리지 아니하고 "희생당한 모든 제주도민"을 희생자로 봐야 하는 이유를 국민들앞에서 떳떳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위 세법안에 의하면 결국 가해자는 미국과 한국의 군경이고 피해자는 군.경과 재산무장대(빨치산)에 의해서 희생된 수만명의 제주양민들입니다. 민국과 군.경은 이들 모든 희생자(빨치산에 의한 희생자 포함)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빨치산은 어느쪽 희생자에 대해서도 법률상의 책임을 지지 아니합니다. 이런 독선과 모순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위 법안들은 무서운 독소조항을 허다히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안들은 정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즉시 철회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1999. 12. 15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회 장 정 기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