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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제목 소설 「태백산맥」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4644
태백산맥의 메시지

  이 글은 소설 <태백산맥>이 이적성을 띤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입니다. <태백산맥>의 작품성이나 주제 등은 이 글의 관심사항이 아닙니다. 심지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할 역사왜곡의 문제도 이적성 여부와 관련해서만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문학작품을 법의 잣대로 재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 역시 이 글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 글은 오로지 소설 <태백산맥>이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왜곡하였으며, 이를 통해 어떤 인식을 심어주는지, 그리고 <태백산맥>이 궁극적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은 현대사를 왜곡

  작가 조정래는 소설 <태백산맥> 제4부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를 흔히들 '민족사의 매몰시대' '현대사의 실종시대'라고 한다. 그것은 곧 그 시대가 그만큼 치열했고, 격랑이 심했으며, 분단사 속에서 또 그만큼 왜곡과 굴절이 심했음을 의미한다. 그 시대의 참모습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복원하고 되살리느냐가 바로 분단극복이고 통일지향일 것이다. 그 시대의 복원은 바로 오늘을 푸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작업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현장을 찾아다녔다. 소설은 단순히 상상력의 산물일 수만은 없으며, 엄연한 역사사실 앞에서 소설을 쓰는 자는 제멋대로일 수가 없는 것이다. <태백산맥>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렇게 증언을 토대로 하고, 확인을 거친 것들이다."

  작가의 이러한 말은 소설 <태백산맥>이 현대사의 복원이되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증언을 토대로 확인을 거친 엄연한 역사사실에 기반한 것이라는 인식을 독자에게 심어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설 <태백산맥>은 작가의 말처럼 '그 시대의 참모습을 객관적으로 복원'시킨 것이아니며, 증언도 작가의 인식의 틀에 맞는 것만을 선택적으로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소설의 무대가 되고 있는 벌교와 율어 등 현지 조사를 해보면 알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 <태백산맥>에 그려진 '그 시대(해방에서 한국전쟁 휴전까지)'는 전혀 '객관적인 복원'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인물창조에서부터 작가는 객관성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좌익인물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부도덕하거나 비인간적인 인물은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순결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반면 우익인물은 모두 음험하고 비인간적이며, 탐욕스럽습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인물설정은 설득력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참모습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심성이나 도덕성이 그 사람의 사상에 의해 규정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설 <태백산맥>을 보면 '좌익은 곧 善이요 우익은 곧 惡'이라는 이분법적 등식이 성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 심재모라는 인물은 예외입니다.

  그는 우익임에도 긍정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 조차도 위의 등식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심재모는 뚜렷한 신념도 철학적 사유도 없이 단순히 우익진영에 속해 있을 뿐인 인물입니다. 바로 그의 눈을 통해 우익의 추악함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재모라는 인물을 설정한 배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에따라 좌익 곧 당시 대한민국을 파탄시키려 했던 공산주의자들은 긍정적으로, 우익 곧 대한민국 주도세력은 부정적으로 그려졌으며, 그들의 행위에도 똑같이 善惡의 가치판단이 부여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대한민국이란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른 것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인식을 갖게 되며,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곧 북한이 역사의 당위성을 갖는 것으로 판단하게 만들 우려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객관적인 역사의 복원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소설 <태백산맥>이 증언과 확인을 거친 엄연한 역사사실에 기반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그릇된 역사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혁명의 소명을 소설로 포장한 선동

  이분법적인 인물설정과 현대사에 대한 왜곡을 통해 소설 <태백산맥>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이 글의 핵심이자 이 소설이 논란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소설 <태백산맥>은 처음부터 끝까지 역사의 순리는 공산혁명이었다는 인식을 집요하게 관철시켜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역사의 순리를 거스른 것이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순리였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또 6·25는 인민해방전쟁이고, 나아가 미국이라는 외세에 맞선 조국해방전쟁이라는 인식을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 다음과 같은 대목에 있습니다. "그는 억센 산줄기의 봉우리 봉우리에서 봉화들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중략) 그의 가슴에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 불길이 타오르고, 그 함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중략)먼저 떠나간 대원들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혁명의 별이 되어 어둠 속에서 저리도 또렷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봉화가 타오르고, 함성이 울리고 있는 가슴에다 그 별들을 옮겨 심고 있었다." 이 대목은 '혁명은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문학으로 포장된 선동이나 다름없는 내용입니다.

  이제 소설 <태백산맥>의 연역적 구조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역사의 순리는 공산혁명이었다. 그런데 그 순리를 거스르며 대한민국이 섰다. 반민중적이고 반민족적인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때문에 인민해방전쟁이 일어났고, 미국이라는 외세가 개입하면서 전쟁의 성격은 조국해방전쟁으로 바뀐다. 비록 전쟁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혁명은 여전히 이루어야 할 소명이다'는 게 그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문학작품을 법으로 제재하는 것이 타당한가 여부와 관계없이, 또 창작의 자유 논란을 떠나  소설 <태백산맥>이 이적성을 띠고 있음은 명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조남현<르포작가/시사평론가>

[이 글은 헌변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