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법치

제목 헌법정신 살아있는가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3410
정 기 승 (헌변회장/前 대법관)

  우리 민족을 압제하던 일본이 패전하고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한 1945년 8월 당시의 한반도에는 애국심과 朝鮮朝(조선조) 전통,잡다한 외국사상 견문 3가지를 빼놓고는 이 나라를 세울 만한 자산이 별로 없었다. 굳이 이용가치가 좀 있다고 하면 일본인의 통치 유산인 철도,항만,종자개량,보통학교,중학교,전문학교제도,부동산등기제도,치안시스템 등 민형사제도 정도가 있는,가난에 찌든 농업사회였다.

  이 불모지에서 난데없는 동족증오의 敎條主義(교조주의)가 난동과 폭동을 시작해 끝내 이 좁은 한반도에서 전쟁 참극까지 일으켰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헌법이 實(실효)있게 미치는 지역이 반세기만에 반만년 역사상 가장 번영하고,가장 자유롭고,가장 기회균등하게 된 사연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갖은 악조건을 무릅쓰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건설한 「헌법의 아버지들」에게 고마워하고,「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대한민국 국군,경찰,학도병,청년단원,「지게부대 노무단원」,우방의 군인에게 묵념을 올리는 까닭이다. 형식적인 헌법전 속의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권한 배분이라든가 선거관리라든가 개헌방법이라든가 하는 규정들이 여러차례 고쳐져 왔으나 「자유와 인권보장」 「행복추구와 창의」를 핵으로 하는 실질적인 헌법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시스템에는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 모두는 잠깐이나마 잊어서는 안된다. 1948년 7월17일 헌법제정 이후 23개월 8일만에 기습당한 우리 헌법 시스템을 지키던 애국시민들이 얼마나 많이 학살당했는지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의 큰 실패경험을 잊어버리는 공동체는 미래에도 그 실패를 반복하다가 망한다는 역사의 교훈이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헌법 시스템의 타도를 전제로 조직된 반국가단체가 정부 형태와 군사조직을 갖추고,대한민국 헌법이 한반도 북쪽 부분에 실효시행되는 것을 막으면서 국제적으로 교전단체의 지위로부터 공인된 정부의 지위로 인정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자유와 번영」의 헌법시스템이 한반도 북쪽부분에 적용되는 것을 갈망하는 동포들이 心中發言(심중발언) 한마디 때문에 특수독재구역 속에서 굶어죽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일부 지식인들이 애용하는 「통일」이라든가 「민족」이라든가 하는 표현이 言語濫用(언어남용)임은 가까운 역사에서 분명히 확인될 것이다.

  옛과 지금,동양과 서양을 가릴 것 없이 자기 공동체의 「삶의 시스템」,즉 헌법에 대한 애착과 충성이 없는 공동체는 존속의 가치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헌법 시스템」에 대한 충성심을 규범으로 요구하고 강제하고 강요한다. 건전한 어느 국가도 이러한 애국과 「법의 지배」를 강요하고 반역과 법에 대한 불성실을 형사적으로 抑止(억지)한다. 「반역과 법에 대한 불성실」의 자유도 허용하는 실험을 해보던 얼빠진 바이마르공화국은 그 훌륭한 「자유와 인권」의 규정에도 불구하고,간악한 독재자에게 「자유와 인권」의 시스템을 타도할 자유를 주었다. 반역을 보고도 방관하는 사람들을 「선량한 시민」이라고 불러주던 월남공화국은 베트남 인민공화국의 침투에 대해 방관할 자유를 주장하는 지식인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 망했다.

  대한민국 대신 「조국」,대한민국 헌법정신 대신 「민족」이라는 감상적인 글을 쓰고 행동하는 일부 지식인은 반국가단체의 교조주의와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조화-타협이라는 백일몽을 젊은이들에게 傳道(전도)하려고 한다. 1948년 대한민국 헌법제정 과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그들이 자유 시스템 타도의 교조주의자와 대화를 하려던 실수마저 미화하려는 것은 보편적 역사발전에 대한 퇴행적 반응이다. 역사상 가장 덜 나쁜 제도라고 믿는 우리의 자유경제체제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지만 우리민족의 꾸준한 저력은 우리 헌법시스템을 터잡아 우리를 선진국 시민으로 더빨리 다가가게 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