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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보험

제목 -토 론- 사회보장제에 대한 근원적 의문들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8591

김 정 호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보장제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사회보장제를 실시해야 한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가? 자본주의 사회는 분업과 전문화에 기초한 사회이다. 우리들 각자는 자급자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는 데에 종사하며, 그 가를 받아서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득이나 부는 남들에게 봉사한 대가인 셈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소득이나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또는 봉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인 셈이다.

  사회정의와 같은 개념에 의해 소득의 재분배를 도모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도둑질이나 사기와 같이 부정의한 행동의 결과가 아닌 한 소득이나 재산을 부정의하다고 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돕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파지고 도와 주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럴 경우에 직접 도와주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대신 시키는 경우도 많다. 자선단체나 종교단체에 기부를 해서 대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게 하는 것은 대표적인 일이다. 대신 도와줄 사람의 범위를 자선단체에서 정부로 확장시킨다고 해서 크게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사회보장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재분배를 받을 사람들에게 소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기본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보고 누군가가 도와주고 싶어하기 때문에 재분배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시각은 정부를 통해서 누구를 도와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방향을 제시해 준다. 정부는 수 많은 국민들이 바라는 바를 대신 해주는 존재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누구나 돕고 싶어하는 사람이 다를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모두 다 공통적으로 돕고 싶어할 사람을 골라서 도와주는 것이다. 그 대상은 아마도 도저히 혼자의 힘으로는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될 것이다. 지체 및 정신 장애인, 소년 소녀 가장, 무의탁 노인 등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물론 그 이외의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금을 통해서 일을 하는 정부의 몫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벌 집의 한 형제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 (실패해도 여전히 부유할 것이다) 다른 형제들이 도와 줄 수 있듯이 국민 각자가 누구를 도와 주든 그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세금을 가지고 일을 하는 정부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만을 도와주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이렇게 본다면 의료보험 제도 같은 것은 사회보장제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돕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처지의 사람들을 보고 TV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은 것은 그 증거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면 큰병에 걸려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보험제도는 큰 병은 외면한 채 작은 병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작은 병의 경우 정부의 강제보험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보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보험회사가 수익을 위해서라도 의료보험 상품을 만들어 팔 것이다. 우리의 의료보험제는 사회보장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의료보험이라고 보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