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경제

제목 現實對面을 겁내는 社會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6861


임 광 규 (변호사)

1. 사막에서 위험에 처하면 머리만 구덩이에 처박고 몸은 그대로 내놓는 새가 있다고 한다.
  現實對面을 겁내니까 우선 내가 보지 않는 것은 危險이 아니다라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학교에서 팔뚝에 예방주사 찌르는게 겁나 도망가는 아이들과 수술받는게 겁나 일찍 죽는걸 마다 않는 어른들과는 서로 다를게 별로 없다. 6.25의 苛酷한 生存鬪爭을 겪은지 半世紀 가까워가는 오늘의 우리社會는 1598 壬辰倭亂終戰으로부터 30년이 채 안되는 정묘(丁卯)년(1627년)에 가까워가던 때 北方에 대하여 現實外面하던 朝鮮朝 지도자들과 유사한가 다른가. 現實을 直視하지 않으려 하면서 名分을 되게 좋아하는 모습까지 아주 닮았다. 나라안보, 우리강산의 환경, 자라나는 자녀교육 어디 한군데 않그런데 없겠지만, 경제면에 국한해서 보자.

2. 우리 헌법의 핵심은 제119조의『자유와 창의』이다. 문제는 세상에 공짜 점심같은 건 없다는 점이다. 자유의 대가는 매우 비싸다는 것, 창의는 상당히 위험한 짓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비싼 대가를 치르고 상당한 Risk를 안고 일하는 사람이 부자가 되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려는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고, 또 그래야 사회가 번영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본주의자이고,『자유와 창의』는 공짜로 안전하게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사회주의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지식인들이 사리를 직시하는 것을 겁낸다. 현실대면을 두려워한다.

3. 자본주의 본래의 악덕은 이세상 축복을 불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점이고, 사회주의 본래의 악덕은 이세상 빈곤을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점이라고 경제학자 아닌 Churchill이 말했다고 한다.

  자유는 불공평이라는 비싼『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자기 힘으로 먹고 입지 못할 사람들, 고아, 장애인, 노인(젊어서 부지런했던 게을렀던)의 인간적인 생계를 돌보는 것은 문명인의 의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의무이고 불교신자들의 의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힘으로 3D든 3K든 파출부든 막노동이든 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시민들의 평등주의 주장이다. 1998. 4. 28.자 신문을 보니까 우리나라 직물, 염색, 목재산업에서는 구인란이어서 젊은이들이 몇일 일하다 힘들다고 일 안한다고 한다. 참한 면서기라도 되려면 공부해야 하는데 유능한 면서기가 되지도 못하는 젊은이로부터, 기업에 취직하였으나 기초지식도 별로 없어 직장에서 월급 받고 몇달동안 예비교육 받는 젊은이들에게 이르기까지, 요새 우리나라 청년들은『위화감』느끼지 않게 평등하게 취급해달라고 주장한다.

  편하고 안전하게 관행대로 일하는 사람에게『위화감』없게 정책펴라는 것은 땀많이 흘리고 Risktaking하고 자기 아이디어를 내보면서 일하는 사람에게 따로 이익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과 똑같은 내용임을 우리 젊은이들, 우리 일부지식인들은 대면직시(對面直視)하지 않으려 한다.

4. 요사이 망해가는 은행 내에서 쉬쉬해가면서 50대 은행원이 받는 명예퇴직금이 4억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30만불 가까이 되는 돈이다. 미국에서는 괜찮은 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가 퇴직할때 Home Mortgage말고 50만불 저축 있으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이렇게 돈 허비하는 우리나라 은행이 고생고생하는 기업으로부터 년20%이자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망하는 은행이 생기면 국민 세금 뜯어서 붙들어 주는거다. 망하는 회사 경리과장 돈벌고 흥하는 회사 경리과장 고생한다는 말도 있다. 공짜를 좋아하는 사회, 가난해지고 부패해진다. 공부 좀 하고 먹고 살만한 젊은이들이 공짜를 꽤 좋아하는 풍조를 우리는 무심코 웃어넘긴다. 장인 돈도 신세지고 나면 남자의 의욕은 없어지고 Guilty Consciousness가 꽤 가슴속에 도사려 투쟁하는 노동자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한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Edward Kennedy가 되는 거다. 잡화상집에서 자라 하고 싶은 공부 할 시간 빼앗겨가며 장사 심부름하던 Magaret Robert(Thatcher)나 가난한 젊은 시절 3류 야구장 해설자로 자수성가한 R Reagan은 당연히 보수주의자가 된다.

  공짜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우리나라 국회는 1977. 12. 31.에 민법 제1112조 유류분제도를 만들어놓았다.

  재산가진 시민이라도 자기 살아 생전에는 재산을 모두 자손에게 미리 증여하지 않으려 하는게 보통이다. 그 대신 절약하고 부지런한 둘째아들에게 물려주고, 낭비하고 게으른 맏아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고 유언한다고 하자. 이 선택을 못하게 새로 없던 민법 제1112조를 만든 것은, 헌법의 재산권 행사보장을 무시하는 입법이었다. 아들이나 사위나 부모로부터 받는 유산은 공짜다. 이 공짜를 법으로 보장하는 악법이 바로 민법 제1112조이다. 시민의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고,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부정하고, 공짜로 횡재하는 권리를 확보해주는 이런 법제도를 구태여 새삼 만드는데, 우리의 학자들, 국회의원들이 애를 쓰신 것이다.

  공짜가 남의 재산을 축내거나 제한해야 가능하다는 현실을 우리사회는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5. Frank Borman의 말을 좀 빌리자. 파산이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이 없는 그리스도교와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파산없는 시장경제를 건설하려고 온 국민이 세계적으로 아주 위대한 노력을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파산은 왜 시키는가. 돈 빌려주고 물건외상준 채권을 남은 재산 더 없어지고 녹슬기 전에 회수하기 위한 것이다. 파산은 왜 빨라야 하는가 채권이 빨리 회수되는 시스템이라야 이자율도 떨어지고 시민들이 투자와 융자에 과감해지기 때문이다. 채권은 바로 헌법 제23조의 재산권이다. 땅만 재산권이 아니다. 회사정리절차법상의 정리절차나, 화의법상의 화의절차는, 세상에 잘못 알려져 있듯이 부도난 기업의 주주, 임직원을 도와주려는 법이 아니라, 기실 재산권자(채권자)의 채권회수를 보장해주려는 절차이다.

  갑자기 토지, 건물, 기계를 경매시켜버리면, 회사의 무형가치와 시스템, 잠재력, 유기적 조직의 가치가 없어지니까, 어떻게든 이것까지 환가하여 공정하게 채권자들에게 나누어 주려는 절차가 정리절차이고 화의절차이다. 신속한 재산권(채권)행사를 지연시키는 것 자체가, 재산권에 대한 실질적인 박탈임에도 불구하고, 부도난 기업의 대주주와 임직원들의 꾀많은 법률절차 활용에 따라서는, 무능한 책임자들이 빚떼어먹고 상당기간 경영하고 월급받아가는 채무자 보호 제도로 정착되어가고 있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처럼 채무자를 열심히 보호하는 민사소송구조하에서는 채권자들의 헌법상 재산권은 빼앗기고 제한되는 우롱을 당하는게 보통이다. 눈앞의 파산이라는 수술이 두려워 자꾸 미루면 나중에 사회전체의 부담과 도덕타락을 만나게 된다.

6. 정부는 구조조정을 빨리 하라고 독촉하면서 정리해고를 가급적 삼가라고 한다. 정리해고를 해야 구조조정이 된다는 초보적인 현실마저 인정하기를 겁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행정지도자들이다.

  우리 헌법 제119조는『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하고 있다. 우선 근본적으로 100원을 벌어들이는 100원 생산성의 근로자에게 150원 월급
주다가 지친 경영인이 50원 깍자고 할 자유가 있는가. 이는 근로자급여의 하방경직성 때문에 안된다. 그 근로자 한사람이 경영자에게 언제까지 50원의 이전 소득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 동안 기업이 자금마련을 하는데 대출금리가 투자자금의 한계생산성보다 낮게 보였고 또 손비처리까지 해주었다. 부채가 큰 때문에 느껴지는 미래의 리스크도 크지 않아 보였다. 큰 말은 죽지 않는다나. 무엇이 답답하여 경영권을 위협받을 증자를 하겠는가. 자꾸 융자끌어다 쓴 것이다.

  정부가 할일은 신속한 회사정리 절차나 파산절차라든가의 Game Rule을 확고히 시행하고 세제를 고치는 것에서 발을 멈추는 것이, 헌법 제119조의『자유와 창의』에 충실한 것이다. 이것이 미국과 영국에서 가장 현실적인 구조조정 정책으로 입증된 것인데도 우리의 지도자들은 용기가 없어서 노동단체 대표를 만나면 빙빙 둘러대는 말만 한다.

7. 시장경제라는 말은 좋고, 자본주의라는 단어는 나쁘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꽤 있다. 1957. 제가 대학에 입학해보니, 자본주의는 폐해가 많다, 이 자본주의의 폐해를 얼마나 많이 교정하느냐가 얼마나 좋은 사회를 건설하느냐의 기준이 된다고 교수님들이 가르치고 학생들은 시험때마다 그에 따른 모범답안을 썼다. 헌법 교수님, 정치학 교수님 대부분이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다. 심지어 경제학 교수님 중에도 자본주의의 폐해를 강조하는 분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알게 모르게 물들어 간 것이다. 요새 젊은 신문기자들이『형평』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누가 누구와『형평』하자는 것인가.

  우리의 외환위기는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욕하고 자본주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욕먹는 자본주의 네글짜와 우리헌법의 멋있는『자유와 창의』다섯글짜는 기실 똑같은 것인데도, 멋있는 우리지식인들은 자본주의라는 그 용어를 대면하기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