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종 찬 (자유기업센터 연구원)
IMF구제금융체제 하에서 국정을 수행하게 된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취임 이전인 98년 1월 15일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당시 김대중 당선자는 『노사정 위원회가 발족하면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 방안에 관한 합의 도출 이외에 새 정부 출범 뒤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면서 합의의 이행보증과 필요하면 합의수정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노사정위원회가 지속적 기구이며 노사문제 전반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는 사회적 협의체라는 것을 밝혔다. 최근 들어 노사정위원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그 위상을 높이려는 현 정부의 방침에서 이러한 의도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하지만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출범한지 1년여가 지난 최근에 이르러 노사정위원회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노사정위 기반인 조합주의 모델의 실패
노동계가 자신들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요구하는 노사정위원회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탈퇴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여러 가지 타협안을 제시하며 노동계의 복귀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업계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처벌조항을 삭제하려는 정부의 방침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노사정위 탈퇴를 선언했다. 이렇게 볼 때 노사를 노사정위원회의 틀 속에 묶어두려는 정부의 입장과 노사정위를 탈퇴하거나 탈퇴를 위협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려 하는 노동계 및 기업계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노사정위원회가 결국 해체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정상화되어 정부가 바라는 대로 국가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기구로서 기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다소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단기적으로 정부의 압력에 의해 노사정위원회가 회복되어 운영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장기적으로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노사정위원회가 기반하고 있는 조합주의 모델이 성공할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거나 판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초에 실현가능성이 낮은 것을 계속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모델을 찾는 것이 이 시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이 이 글의 논지이다.
조합주의(Corporatism)의 비극
정부의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입장은 다음과 같다. 정부의 중재 하에 노동계(노동)와, 기업계(자본)가 상호 양보와 합의를 도출해 경제현안을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이 기반하고 있는 모델은 노동과 자본, 국가간의 삼각구도 하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사회적 합의도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현 정부가 독창적으로 고안한 것이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양한 형태의 실험이 이미 행해졌던, 조합주의라는 모델이다. 조합주의는 독점적 대표권을 갖는 조직들이 공공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국가기관과 정치적 교환관계를 수립하는 것으로서 크게 국제 조합주의와 사회조합주의로 나누어진다.
조합주의를 표방했거나 표방하고 있는 나라들 중 대표적인 것이 남미와 유럽이다. 이들이 추구했던 조합주의의 실험결과가 어떠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한국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헤아려 보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먼저 남미의 사례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1)국가조합주의(State Corporat-ism)의 비극 남미에서 조합주의는 두 가지 형태를 띠고 제도화되었는데, 민중주의(Populism)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가 그것이다. 두 가지 형태 모두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제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19세기 이래 20세기 초까지 남미 諸國은 유럽대륙과의 무역관계를 통해 상당한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당시 남미의 경제구조는 주로 광업, 농축산업 등에서 생산되는 원료와 식량을 유럽에 수출하고 유럽으로부터는 생필품 등 공업제품을 수입하는 자유주의 무역정책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유주의 무역정책이 지속되면서 상당한 정도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노동운동세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민족주의적,민중주의적 조합주의가 닿는 곳
1930년대에 불어닥친 세계적 경제 대공황은 남미의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유럽의 경기 침체로 인해 남미의 수출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하락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경제위기에 당면해서 남미에서는 경제민족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이제까지 수입에 의존하던공업제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자 하는 수입대체산업화가 추진되었다. 이러한 경제정책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정치체계가 민중주의적 조합주의였다. 민중주의체계 하에서 정부는 권위주의적으로 자본과 노동을 통제하였는데, 특히 권력의 핵심기반으로서 노동세력을 지원하였다. 즉 노동자들은 정치투쟁을 통해 정치권력의 핵심부와 밀착하면서 경제현실과 유리된 방향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한편 정부는 이들 노동세력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조합승인법을 통해서 등록되지 않은 노조의 활동을 금지하고 소수의 특권적 거대노조 지도자와 연합하였다.
민중주의적 조합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예로서 아르헨티나의 페론정부와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들 수 있다. 1943년에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페론정권은 급격한 근로자 우대정책을 실시했는데, 예를 들면 경제여건에 비해 과도한 사회복지 확충, 고용증대, 재정지출 확대 등이 그것이었다. 이에 따라 노조원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노동세력의 정치집단화가 급속히 가속화되었다. 이렇게 정부가 경제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재정지출을 실시함에 따라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외채누적 등 경제파탄이 가중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국의 수출산업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수입대체산업화를 추진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르헨티나의 성장 잠재력이 파괴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 칠레의 아옌데 정부는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부로서 은행, 광산 등의 국유화, 토지 강제몰수, 집단농장화, 시장가격통제 등 대내적으로는 전형적인 국가 주도형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하고 대외적으로는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을 추구했다. 이러한 정책들을 시행한 결과 아옌데 정권 말기인 1973년에는 인플레율 441%(암거래까지 합하면 1000%에 육박), 농작물(-20%), 광산물(-20%), 산업생산(-10%), 건설(-40%) 등의 생산감소, 외환보유고 감소(6억 달러 적자), 자본의 해외 유출 등 심각한 경제적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軍部,경제발전·질서 확립 그러나 곧 악화
남미 경제가 수입대체산업화와 민중주의적 조합주의로 인해 파탄지경에 이르렀을 때, 군부가 나서서 기존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수립했다. 이 체계 하에서 군부는 기술관료 및 사용자와 연합하여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동시에 노동세력의 정책결정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그리고 노조의 탈정치화를 위해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서 노조활동을 통제하였다. 이러한 권위주의 정치체계는 배제적 조합주의의 성격을 갖는데, 무력으로 노조활동을 탄압하는 것과 아울러 국가가 직접 노조를 승인하고 자금을 지원하며 지도자의 선출에 간여하는 등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노동조합을 통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권위주의(배제적 조합주의) 체계 하에서 경제발전과 질서안정이라는 실제적이고 물질적인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안정적인 노사관계 속에서 노동자의 자발적 참여와 생산성 향상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불가능하였다. 군부정권은 정당성의 결여로 인해 늘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즉 경제회복 과정에서 소외된 중소기업가들이 지지세력에서 이탈하고 노동세력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동정하는 교회세력 역시 지지세력에서 이탈했으며, 정치적으로 완전히 배제된 노동세력은 테러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군부정권의 권력기반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정해져 갔던 것이다. 이에 따라 군부정권은 더욱 더 혹독한 물리적 탄압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시민사회는 공포와 침묵으로 점철되어 갔으며 국제사회도 인권탄압이라는 비난과 함께 경제적 제재조치를 가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었으며 결국 군부정권도 마이너스 성장, 외채누증의 가속화, 인플레이션 심화 등 계속되는 경제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 어느 한편 지원하면 경제 파탄난다
남미의 국가조합주의는 민중주의든 권위주의든 정부가 권위적으로 노사를 통제하면서 어느 일방을 지원함으로써 비극적인 정치 및 경제 상황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파워 엘리트 역시 남미의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현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남미의 모델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현 정부는 같은 조합주의 모델이면서도 국가조합주의와는 다르며, 적지 않은 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유럽식 사회조합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과연 이러한 사회조합주의가 성공할 수 있을까? 이제 유럽의 사회조합주의를 살펴볼 차례가 되었다.
(2) 사회조합주의(Social Corporat-ism)의 한계
유럽의 조합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조합주의로 발전했다. 사회조합주의 체계 하에서는 전국적으로 중앙조직화된 이익집단들, 특히 노동조직과 사용자조직 및 국가가 상호작용을 통해 공공정책을 결정하며, 이들 노동조직과 사용자조직이 국가로부터 승인을 받아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국가는 이들로부터 지지를 획득한다. 여기까지는 국가조합주의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노동조직과 사용자조직이 국가에 종속되지 않고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며, 합의도출 과정에서도 원칙적으로 이들 조직의 자발적인 협동과 조정이 핵심이 되고 국가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들의 협상을 중재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권위적, 정치적 힘에 의해 강제로 집행되는 국가조합주의와 구별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장을 정치화한다는 점에서 국가조합주의와 사회조합주의는 동일하다.
다만 그것이 권위주의적이냐, 아니면 민주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시장의 정치화라는 말은 생산된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가 시장경제원리에 의하지 않고 노사정간의 정치적 협상으로 해결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노사정 각각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은 시장원리에 의해 분배가 이루어질때 보다 더 많은 양보를 해야한다. 즉 사회조합주의적 방식은 높은 임금과 과도한 세금의 형태로 기업의 이윤에 더 많은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윤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기업이 계속 유지되려면 이미 높은 생산성을 갖추고 있거나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해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윤의 압박이 있는 국가에서 기업이 이탈해 그러한 압박이 적은 곳으로 이동하지 않거나 이동할 수 없어야 한다.
스웨덴이 장기성장 지속한 비결은?
둘째, 노동자 개인은 집단적 협상 방식에 의한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의 개선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능력의 차이에 따른 수입의 차이가 (높은 세금 등으로 인해) 미미해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급진적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조합주의 방식을 통한 실리를 추구하는 온건 노선을 취해야 한다.
셋째, 국가는 노동자를 위한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동시에 이윤압박으로 인해 경쟁력이 취약해질 수 있는 자국의 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과 노동자들로부터 고율의 세금을 거두어 재정지출을 늘리고 관료기구를 확대해야 한다. 사회조합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 중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스웨덴이다. 이 나라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사회조합주의의 문제점을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산업화는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늦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되었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로 약 100년에 걸쳐 스웨덴은 다른 어떤 산업국가보다도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으며 수많은 기업들이 생겨나서 국제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웨덴이 이렇게 고도성장을 계속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낮은 과세율로 인해 기업가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투자하려는 경제적 동기가 높았고, 둘째, 해외로부터 자본과 기술이 유입되어 생산적인 분야로 투입되었으며, 셋째, 발명과 혁신에 의한 신기술 개발이 이어졌고, 넷째, 노동시장이 유연하여 생산성이 낮은 농업부문에서 생산성이 높은 2차 산업이나 서비스 업종으로 노동력이 이동할 수 있었으며, 다섯째, 해외수출 시장을 개척하는데 적합한 유연한 기업조직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스웨덴은 전투기 개발이 가능한 4개국(미국, 프랑스, 러시아, 스웨덴) 중의 하나였을 만큼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이에 더하여 2차 세계대전 후 서유럽의 재건에 필요한 자본재를 공급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수명 다해가고 있는 사회조합주의
그러나 스웨덴 경제는 1970년대 이후 계속해서 내리막으로 치달았다. 60년대까지 연평균 4.6%대의 경제성장을 계속하던 스웨덴은 70년대에 이르러 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고 80년대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90년대에 이르러서는 실물 및 금융시장의 붕괴로 인해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게 되면서 기업의 파산은 5배나 증가하고 실업률도 2%대에서 8%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정부의 예산적자가 GDP의 10%대에 이르렀고 외채 또한 급격하게 늘어났다. 왜 이렇게 됐는가?
1973년에서 1976년 사이에 산업노동자들의 임금은 59%나 증가했고 기업의 노무비는 80%나 증가했다. 1976년에서 1981년 사이에 공공지출은 GDP 대비 50%에서 65%로 증가했다. 또 1970년대 중반 이래로 스웨덴 정부는 해외로부터 막대한 돈을 차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율은 1975년과 1996년 사이에 21%에서 14%로 감소했는데, 이것은 막대한 차입금이 생산분야가 아닌 소비적인 분야에 투입되었다는 의미다. 또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해가면서 확충한 복지제도 때문에 일할 수 있는 인구의 5분의 1 이상이 자발적 실업, 고용훈련프로그램에의 참가, 명예퇴직, 휴식을 위해 노동시장을 떠났다.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에서 저축할 필요가 없어지게 됨에 따라 저축률은 1970년 15.3%에서 1995년 4.9%로 감소했는데, 이것은 투자재원의 고갈을 의미한다.
결국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자유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하여 부를 축적한 이후로 계속해서 생산을 가로막고 소비를 장려한 결과 스웨덴의 경제는 심각한 위기 국면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생산과 부의 축적이라는 흐름을 소비로 돌려버린 데에는 사회민주주의라는 고상한 정치이념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사회조합주의라는 민주적 정치과정이 있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의 눈에 사회조합주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과거세대가 축적해 놓은 부를 본격적으로 소비하고 있었던 현재 세대의 풍요에 시야를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현재의 세대가 다 써버리고 나면 미래세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회민주주의는 더 이상 매력적일 수 없다.
노사정위원회, 이룰 수 없는 희망
최근 들어 스웨덴과 독일 등 사회조합주의 국가에 있던 기업들이 영국과 같은 나라로 떠나가고 있다. 이것은 기업들이 사회조합주의의 부담을 피해 그런 부담이 없는 나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경향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회조합주의 체계가 가능했던 것은 과거에 자본이 상당한 수준으로 축적되어 있는 상태에서 국가가 자국산업을 보호하거나 자국 기업의 이동을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을 때였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국가의 그러한 힘이 점점 더 약해질 것이기 때문에 사회조합주의는 이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얼마전 현 정부가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노선에 치중했던 것을 수정하여 신중도노선을 따를 것이라는 신문보도가 나왔다. 신중도노선에 입각해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노사정위원회가 입각하고 있는 사회조합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현정부에게 노사정위원회는 단순한 형식적 기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과연 현 정부의 이러한 의도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얼핏 보기에 사회조합주의 모델은 매우 매력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매력적인 것과 실현 가능한 것은 다른 문제다. 사회조합주의 모델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자본축적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어야 하고, 국가가 자국 기업들을 국제경쟁에서 보호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복지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적 여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계와 기업계가 상호 양보와 타협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자세를 지녀야 하고 의회 내에서 정치경제 현안이 합리적으로 처리될 수 있을 만큼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숙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조건들 중 과연 어느 것을 갖추고 있는가? 한국의 생산력 수준과 자본축적 수준은 겨우 중진국들 중 선두그룹에 올라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출신장에 경제의 사활이 걸려 있는 우리나라는 WTO체제하에서 보호무역을 통한 우리 기업의 보호를 주장할 만한처지가 되지 못한다. 국가재정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채무는 지급보증한 것까지 포함해서 GDP45%에 달하는 2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보다 복지국가 의욕 앞서면 망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계와 노동계가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상호 양보하고 타협하는 성숙한 책임의식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치권의 낙후성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정부가 바라는 기능을 다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더욱이 사회조합주의 체계를 유지해 왔던 유럽 선진국들조차 더 이상 그 체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유럽이 지금까지 그것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달성해 놓은 높은 수준의 생산성과 자본축적, 성숙한 정치·사회 문화, 자국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의 힘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도 그러한 능력이 소진되어 감에 따라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하물며 한국이 그들의 방법을 도입하겠다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현 정부가 노사정위원회, 신중도노선, 복지주의를 내세우면서 경제문제에 개입하려는 생각을 버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에서 손을 뗀 정부가 할 일이 없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야할 일이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법과 제도를 세우고, 세워진 법과 제도가 잘 실천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자유시장경제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시장경제의 원칙에 입각한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를 세우는 일만 해도 업무가 과중할 것이다. 정부가 그렇게 할 때 한국은 지금까지의 성장을 중단없이 계속함으로써 바야흐로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시장경제를 바로 세워야 할 책무를 자꾸만 뒤로 미루면서 복지국가를 달성한 위대한 정부가 되려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런 성급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자칫 사회조합주의로는 나가지 못한 채 국가조합주의의 비극을 초래할 위험마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 아직 유럽보다는 남미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