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성 일 (서강대학교 교수, 경제학)
몇 해 전 Economist誌에서는 경제학자들의 자문을 구해서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9가지 경제적 오류를 시리즈로 엮은 바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로 꼽힌 것이 이른바 노동량 불변의 오류(lump of labor fallacy)였습니다. 사람들은 노동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사회전체의 노동량이 일정불면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것이 오류라는 것이지요.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막으면 국내 근로자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든가, 조기퇴직제를 확대 실시함으로써 청년층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등의 발상은 모두 다 사회 전체의 노동량이 일정하여 한쪽을 억제하면 다른 쪽의 기회가 많아 질 것이라는 논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어느 한 부분에 대한 인위적 규제가 전체적인 노동량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론의 오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현안인 실업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 역시 노동량 불변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노동계에서는 작년에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유지와 고용창출을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노사정위원회의 토의과제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금년 들어 갑자기 이 주제는 토의과제가 아니라 노동계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변하면서 내용도 단순한 일감나누기(work sharing)가 아닌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바뀌었습니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근로시간 단축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부족한 노동분은 고용을 증가시킴으로써 보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기준 임금이 감소되어서는 안되며, 이에 따라 일어나는 기업의 비용증가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근로자의 생산성 증가로 일부 보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정기간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서 비용증가를 보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례로써 프랑스에서 작년에 통과된 오브리(Aubry)법(2000년 ∼2002년까지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35시간으로 단축)을 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에게 인건비증가를 가져온다는 비용논리로 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이 단순히 비용증가뿐 아니라 생산감소와 고용감소라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은 물론 경영계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하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에 대하여 짚어보기로 합니다.
임금상승과 고용축소
첫째, 현 상황에서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은 임금의 비례적 감축여부와 관계없이 시간당 임금비용을 상승시킵니다. 노동조합은 임금삭감 없는 주당 40시간 제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44시간분의 임금이 40시간에 대해 지급되므로 기준시간에 대한 시간당 임금이 10% 상승하게 되며 초과근로시간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65%가 할증된 임금이 적용됩니다.
노동조합의 주장에서 한 걸음 후퇴하여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기준임금을 비례적으로 감축시키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으나 이 경우 역시 정도의 차이일 뿐 시간당 임금비용의 증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이전에 주당 44시간을 근무하고 44만원을 받았다면 주당 40시간으로 단축된 이후에는 기준근로시간에 대한 임금 40만원에다 4시간의 초과근로시간에 대한 임금 6만원을 합쳐 46만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곧 시간당 임금이 4.5% 상승하였음을 뜻합니다.
결국 법정근로시간 단축의 경제학적 의미는 시간당 임금의 상승입니다. 따라서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고용을 창출한다는 논리는 임금의 상승이 고용증가를 가져온다는 논리와 같게 됩니다.
둘째,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오히려 고용을 줄이고 실근로시간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의 명분과 정반대 되는 결과이지요. 고용규모의 조정과 근로시간의 조정에는 서로 다른 비용이 작용합니다. 즉 고용에는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준고정적 노동비용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준고정적 노동비용에는 채용비용, 훈련비용, 해고비용 뿐 아니라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지출되는 각종 수당, 부가급여 및 법정 부담금 등이 포함됩니다. 기업은 이 점을 고려하여 고용규모와 근로시간의 최적 결합을 결정합니다. 예컨대 해고비용이 많이 증가하게 되면 기업은 고용을 꺼리고 대신 근로시간을 늘리게 되는 것이지요.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은 기업에게 단축된 시간에 대한 초과근로 임금을 지급하게 하므로 마치 준고정적 비용이 증가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옵니다. 따라서 기대와는 반대로 고용이 감축되면서 근로시간이 증가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생산감소와 코스트 푸쉬 인플레
셋째, 설사 준고정적 비용이 전혀 없고 근로시간 단축 이상으로 임금감축이 이루어져 비용의 증가가 없다 하더라도 생산이 줄어드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이는 생산의 기술적 특성상 고용과 근로시간이 완전히 대체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근로자간의 숙련도가 다르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상상해 보시지요. 숙련된 기술자의 근로시간을 10% 줄이고 그 자리를 숙련도가 떨어지는 실업자로 채울 경우 동일한 생산량이 유지되겠습니까?
넷째, 앞서의 이유들로 인하여 근로시간 단축은 비용의 상승과 생산의 감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는 거시경제적으로 코스트푸쉬(cost push)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됩니다. 코스트푸쉬 인플레이션의 귀결은 생산과 소득의 저하, 그리고 고용의 감소입니다. 결국 근로시간 단축은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 채 잘해봐야 일은 덜 하는 대신 모두가 가난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근로시간 단축은 이론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틀린 논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의 또 다른 문제점은 무엇보다 실증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각국의 실업문제를 분석해온 정통경제학자들은 많은 국가들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실업을 감소시켰다는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실업율이 증가된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OECD도 1972∼1992년 동안의 자료를 이용하여 근로시간이 가장 많이 줄어 든 국가들에서 실업율이 가장 높게 증가하였음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개별기업차원에서 포크스바겐사의 일감나누기가 고용유지의 성공사례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국가차원의 법정근로시간 단축이 아닌 개별기업의 일감나누기의 사례일 뿐이며 그나마 생산비 증가로 인하여 더 이상 성공사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의 올바른 방법
혹자는 순수하게 근로조건의 개선차원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은 사회가 지향해야할 과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의 근로시간 단축은 생산성 증가의 결과로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생산성 증가가 있고 이를 임금상승으로 전환할 수 있을 때 임금 대신 근로시간 단축으로 보상받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와 같은 근로시간 단축은 언제 이루어져야 할까요? 이는 실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보다 적어지는 시점이 적합합니다. 우리의 경우 현재의 실근로시간 46.7시간이 법정근로시간 44시간 아래로 내려간 이후에나 검토될 수 있는 과제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다른 나라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법정근로시간이 단축된 예를 찾기 힘듭니다. 일본의 경우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바뀔 때 이미 실근로시간은 40시간 미만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른바 실업대책으로서의 근로시간 단축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근거가 박약한 제안입니다. 오히려 국민경제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이 크게 우려되는 정책이지요. 노동조합으로서야 명분과 실익이 그럴 듯하여 이를 주장할지 모르겠으나 사회와 정부는 정확한 논리와 실증적 근거에 입각하여 냉정히 판단해야 합니다. 자칫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다루다가는 우리경제의 미래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자유기업센터 발행 opinion leaders digest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