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광 규 (변호사)
최근 들어 노동부가『직장이나 직무가 없어서 누구에게 일해주는 것이 없고 또 누구로부터 보수를 받지도 않는 사람』이 지역별 또는 초기업(超企業)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안을 구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노동부가 이러한 입법을 추진하는 동기를 뚜렷이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국제노동기구(ILO)가 권고하니까 따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 당국자가 있다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뚜렷한 경제전략 프로그램과 국민복지향상 플랜에 대한 소신을 갖지 못하고 나라밖 사람들의 말에 솔깃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ILO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1916년 영국에서 열린 연합국노동조합회의에서 헌장(Charter)제정을 추진하고, 1917년 프랑스노동조합(CGT)이 제안하여 동년 10월 연합국노동자사회주의자대회에서 결의하여 요청하고 이어서 1918년 중립국노동자대회에서 결의하여 요청함으로써 1919년 베르사이유 평화조약 항목에 넣어서 생긴 것이 국제노동기구(ILO)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ILO는 서구 선진국 노동자들의 전략프로그램이자 복지향상 플랜인 것입니다.최근에 국제노동기구(ILO)는 순수하게 근로자들의 근로조건과 복지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인 문제에 국한해야 할 근본 이념에서 벗어나 정치적 활동까지 전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이 크기 때문에 장래의 운명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처한 환경과는 동떨어진 맥락에서 형성되었고,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할 동기도 가지고 있지 않는 국제기구의 권고사항을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따라야 할 지를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나라의 노동관계법률과 헌법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이 문제가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의 목적은이법의 제1조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산업평화(Industrial Peace)』와『국민경제의 발전』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지향하는 것은 산업평화와 국민경제의 발전 속에서 비로소 노동자들이 유족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노사관계의 공정한 조정을 통한 사업평화가 없다면 기업인의 투자의욕과 모험적 투지(鬪志)가 살아날 수 없고 동시에 근로자들의 심혈을 기울인 일과 연구노력이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절실한 판단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산업평화를 훨씬 더 이룩한 선진세계에서는 벌써『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노력이 진전되고 있습니다. 노동의 인간화란? 1973년의 독일 노동자들이 획득한『작업흐름속에서의 5분간 휴식 권리』, 1950년대 이후로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직무확대, 직무전환 운동』등이 그 예라고 하겠습니다.
『직장이나 직무가 없어서 누구에게 일해주는 것이 없고 또 누구로부터 보수를 받는 일도 없는 사람』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때, 이들이 우리 현실에서『산업평화』와『국민경제발전』, 그리고『노동의 인간화』에 무슨 기여를 할 것인지, 무슨 반대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를 해보아야 합니다.이러한 논의에는 프랑스의 노동조합이 이데올로기적 차이에 따라 세 개의 전국조직으로 나뉘어서 전통적인 계급투쟁사상의 영향 아래서 행동함으로써 그 나라가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1979년까지 직장내의 이노베이션에 대해서 경영자보다 더 보수적으로 행동했던 영국 노동자들의 실패에 그 나라의 노동조합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등을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실업자 노조의 파급효과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가『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을 가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근로조건의 향상』과 관계없는 단결과 교섭은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가 아닙니다. 근로를 하고 있지 않은 무직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여『단체행동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단순한 근로조건의 향상과는 다른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먼저『누군가에게 일해 주는 것이 없는 사람』이 직업적 노동운동가로서 초기업 노동단체나 지역 노동단체의 지도부에 들어가서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노조의 가입목적이 처음부터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과격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1조, 제37조, 제38조의『평화의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누구에게 일해주는 것이 없고 받는 보수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노동조합에 들어가서 하기 쉬운 운동은 실업수당 인상을 위한 투쟁 등 국민세금을 가져다 쓰기 위한 압력활동일 것입니다. 얼마전 두레공동체를 운영하는 김진홍 목사라는 분이 서울역 앞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실업자들에게 일당을 줄터이니 일을 하라고 권했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그 돈을 받고 어떻게 그렇게 힘든 일을 하겠느냐? 싫으니 딴데 가서 알아보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노숙자를 위한 생계비를 인상하라고 요구한다면 이것이 정당한 것일까요? 성경에는『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한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제2조 제5호에 의하면 쟁의행위란『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에 관한 불일치의 분쟁상태』입니다. 그런데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과 관계가 없는 『무직자』가 노동조합원으로서 쟁의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의『산업평화』를 어지럽히게 될 것입니다. 기업에 속한 노조원들의 쟁의행위도 우리나라의 경제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는 판에 설상가상으로 실업자 노조까지 산업평화를 저해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