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6월말 국세청은 23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발표하고 5056억의 추징을 발표했다. 이런 세무사찰은 동원된 세무인력과 기간, 그리고 추징액수의 막대한 금액이라는 면에서 건국이후 최대의 언론사에 대한 세무사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그동안 김대중 정권의 각종 失政과 햇볕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줄기차게 비판적 논조를 지속해 온 언론3사(조선, 동아, 중앙)의 추징액이 전체 추징액의 절반을 넘는다는 측면에서 정치적 보복의 성격이 강하다는 세간의 지적을 받아왔다. 물론 과중한 세금액수에 대해 언론 3사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고, 이에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번 사태를 "언론에 대한 압살극"이라고 표현하면서 장외집회 들을 통해 반정부시위를 함에 따라서 정국은 또한 차례 소용돌이치고 있다.
II. 그러면 야당시절 YS의 집권당의 언론사 세무사찰에 대해 누누이 언론탄압이라고 맞서 저항했었으며, 정치 9단이라고 자칭하면서, 인권주의자로 세계에 명성이 알려진 노벨평화상까지 탄 김대중 대통령이 현시점에서 언론에 대한 세무사찰과 과대한 과징금이 언론사측과 야당의 거센 반발이 올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언론과의 전쟁을 감행한 것일까?
이것은 우선 한반도를 둘러싼 외부적 국제환경과 국내의 정세판도가 집권당에게 갈수록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국의 주도권을 역전시키지 위한 고육지책에서 심각하게 고려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실제로 김대중 정권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이 집권 후반기를 맞이하고 있다. 200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대북강경 입장을 고수한 공화당의 부쉬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이에 영향을 받아서 남북관계도 자연히 침체 국면에 빠지게 되었다. 3월에 서둘러서 미국을 방문한 김대통령은 부쉬 대통령에게 그동안의 남북관계를 설명하고 김정일의 서울 방문에 관해 양해를 구하려했다. 그러나 부쉬 대통령은 김대통령의 말을 막으면서 "과연 김정일은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가?"라고 회의감을 표시했고, 미국기자들과 미의회의원들의 청문회를 방불케하는 질문공세와 추궁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곤욕을 치려야했다. 특히 김대통령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방한시에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서명한 미사일 조항에 대해 미의회로부터 곤혹스런 질문공세에 시달려야했다. 그의 방미는 설득하러갔다고 설득 당하고 온 꼴이 되고 말았다. 그가 귀국하자마자 외무장관을 경질한 것은 그간의 사정이 얼마나 힘들었나를 능히 짐작하게 한다.
내정에서도 민주당 집권층은 실정을 거듭해 왔다. 교육개혁의 혼돈, 옷로비 사건으로 인한 검찰과 집권층의 부도덕의 폭로, 준비 안된 의약분업의 휴유증, 각종 노사분규의 다반사 등으로 경제가 비틀거리고 중산층의 약체화와 세금과중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올해 봄 민주당이 실시한 여론조사는 집권당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20%대로 추락하였으며, 민주당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해 유권자층은 강한 회의감을 표출하였다. 민심 이반을 확인한 민주당은 여러 가지 정책 대안을 마련했으나, 정국운영의 중심축을 세우지 못한 체,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했고, 이전처럼 김대중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결단에 매달리는 형국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방문이후 노골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서 김정일에게 서울 답방을 노크했다. 한국전쟁의 악몽을 잊지 못하는 국민여론이 속앓이를 하던 아랑곳없이, 일국의 국가원수로서의 체통도 내던지고 3백만의 인민을 굶겨죽인 독재자에게 "언제 서울을 답방할 것인가?"라는 애걸조의 러브콜을 무려 8차례에 걸쳐 했으니,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자존심이 상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은 노령의 남한 대통령의 애곡간장타는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지???? 북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김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김정일의 답방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방적으로 퍼부주기식의 대북원조를 강행할 수밖에 다른 묘안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만약 김정일의 서울 방문만 성사된다면, 그와 더불어 한반도통일에 대한 모종의 합의(연방제?)에 이를 수가 있을 것이고, 이런 남북화해의 분위기를 내년 11월 총선까지 연결시킨다면, 이반된 민심을 다시 돌려놓아 민주당의 재집권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여론의 형성과 향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방송과 언론에 재갈을 물리면서 집권층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강압적으로라도 조성하자는데 김대중 대통령과 참모진들의 의견의 일치를 본 것 같다. 관료조직과 집권당도 김 대통령의 이런 시각이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어쩔수 없이 끌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현대아산이 추진했던 금강산관광사업이 북한에 전달하는 미수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사업중단을 선언하자, 북측에서는 미수금을 보내라고 독촉했다. 이 사업의 부진으로 인해 자칫하면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김정일의 답방에 악영향을 우려한 정부는 관광공사로 하여금 대북미수금을 은행에서 융자하는 형식을 빌려서 약 300억원에 이르는 금액을 현대아산에 지원하였다. 김정일을 상대로 하여 남한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무모한 도박이 이제는 한국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이 금강산사업의 정부개입에 대해 펄펄 뛰면서 분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III. 돌이켜 보건대, 민심이반의 원인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의 인식은 일반 국민들과 상당히 다르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그는 이런 일련의 개혁의 실패와 민심이반의 책임이 소위 특정 언론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옷로비 사건 때, 김대통령은 "언론의 마녀사냥"이라고 분노한 적이 있었고, 언론이 인사의 특정지역 편중을 보도하여 지역감정을 오히려 확대시켰다고 인식했다.
이런 언론에 대한 강수는 이미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후 정국구상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이후,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자신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는커녕, 사사건건 그의 햇볕정책에 대해 딴 죽을 거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비평적 논조에 대해 신경질적 반응을 보좌관에게 보였다고 한다. 더구나 부쉬 행정부의 출범이후,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이것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자 대북정책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자연히 강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야당의 공세는 대북원조의 무용론으로 연결되었고, 이를 상세히 보도하기 시작한 보수언론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협상에서 보여준 자신의 업적이 보수언론과 야당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지 않는가하는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하루빨리 서울을 방문하여 자신과 나란히 악수하는 모습이 언론과 방송매체를 타고 전세계로 전파되기를 간절히 염원했었다. 그래야 야당을 일거에 제압하면서 민주당의 재집권으로 순탄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디 호락호락한 인물인가? 김정일은 평양을 방문한 김대통령의 밀사에게 자신이 서울을 방문했을 경우 첫째, 자신의 신변에 대한 안전한 경호문제와 둘째, 자신을 열렬히 환영할 수 있는 분위기의 성숙을 제1차적 조건으로 제시했던 것 같다. 특히 사사건건 대북원조의 위험성과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문제를 건드리는 보수언론 3사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은 보수언론 들의 등쌀 때문에 방문이 어렵다고 하므로 보수언론들을 손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을 손 봐주어야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점에서는 남북 정상의 양 김씨 들의 이해관계가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문이다.
언론과의 전쟁은 민주당내부의 분파세력을 억제하려는 또 다른 정략적 고려가 숨어있다. 시간이 갈수록 레임덕 현상은 심해지면서,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 기사들이 넘치게 될 것이므로, 재집권의 가능성은 더욱 어렵게 된다. 여기에 민주당내에서 공공연하게 당의 혁신을 주장하는 정동영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정풍파 세력들의 기세를 겪기 위해서는 강력한 외부의 적이 필요하게 된다. 언론과의 전쟁은 또한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만약 언론과의 전쟁에서 딴 소리를 내는 정파들이 있다면 해당행위로 간주하여 과감하게 정치적으로 제거할 구실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정풍파들의 입지가 줄어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교과서 파동에 대해 정부의 강경책은 민심이반을 반일감정으로 몰아가서 대세를 만회하려는 정략적 일환이 숨여있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의 반응은 중국, 북한과 대만 등의 반발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이런 강경책을 구상하는 이면에는 실추된 현 집권층의 인기를 만회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재장악하여 보려는 정략적 고심의 일면이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언론사들이 과거에 다소 불법, 탈법으로 세금을 포탈한 적이 있었다처도, 국세청의 추징액수를 맞추어 세금을 내면, 폐업을 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로만 존재해 달라"는 주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언론사들이 과거 탈세를 했으면 탈세부문을 조용히 집행하면 된다. 관행이 잘못되었으면, 시정조치 하도록 올바르게 계도해야하고 좋은 제도를 정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권장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심각한 외화유출이나 탈세의 부문, 그리고 악질적인 사주에 대해서는 응당 법의 처벌을 받도록 고발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 보면, 외화유출, 부실경영으로 문제가 있거나 막대한 은행부채 등으로 벌써 정리되었어야할 언론사와 그들 사주들은 정작 뒷전으로 누락되어있고, 흑자를 내는 빅3 언론들이 세무사찰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는 점이 석연히 않다. 이런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사찰과 과대한 추징금이 여론조사의 지지라는 명분으로 강행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중국문화대혁명의 홍위병식의 개혁을 상기하게 하여 등골이 오싹해진다.
IV. 그렇다면 이런 정치권력과 언론과의 전쟁은 어떤 결과를 야기시킬 것인가?
첫째, 단기적으로 보면, 언론의 권력에 대한 예속이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방송사의 권력에 대한 눈치보기 보도편성이 심화되어 "들러기 언론"의 역할을 하게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KBS, MBC 방송사들의 보도는 정부에 대한 비판적 논조를 삼가면서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개성이 없는 보도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정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의식이 무디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둘째, 장기적으로 보면, 언론3사의 대정부 저항은 결국 언론과 야당 한나라당과의 결속관계를 강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여 민심이반이 심화되고 민주당의 재집권에 크게 도움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1975년 동아일보사가 유신체제에 저항하다가 많은 기자들이 해직되었고, 결국 민심의 동요와 부마사태, 10.26으로 연결된 점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겠다.
셋째, 언론3사와 중소언론과의 갈등구도가 더욱 첨예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독자확보와 광고시장에서의 경쟁이었지만, 이제는 신문사간에 친북신문이냐? 반북신문이냐? 보수냐? 진보냐? 등의 이념대결 구도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신문사들의 대결양상은 논조를 좌우, 보수와 진보로 갈라놓아 국론분열에 기여할 우려가 크다고 할 것이다. 현재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마치 광복이후의 좌익과 우익의 이념, 사상대결의 再版으로 가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불행하게도, 언론사에 대한 집요한 세무사찰과 검찰의 출두요청은 한 부인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불상사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일요일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부인 안경희씨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이 얼마나 안경희씨의 친척과 친구등의 계좌추적이 집요했기에 대한 정신적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이란 극단적인 행동을 강행한 것일까? 실제로, 동아일보 관계자는 "고인이 국세청 조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주변 친·인척들이 연이어 소환되자 괴로워했다"고 전한다. 결국 정부의 언론탄압 과정에서 한 언론사주의 부인의 목숨까지 끊어버리는 사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과거 동아일보와 정치인 김대중과의 관계는 어떠했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인 김대중의 집권은 언론의 헌신적인 도움없이는 불가능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동아일보사는 한겨레와 함께 조선, 중앙과는 달리 김대중 대통령의 야당시절부터 줄기차게 그의 정치적 노선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여주었던 친 DJ신문이아니었던가! 현 정권의 언론탄압은 새삼 세월의 무상함과 권력의 비정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 이주천 (원광대교수)
[이 글은 헌변의 공식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