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안보

제목 국가보안법을 생각한다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4066
임 광 규 (변호사)

1.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은 우리에게 상당히 낯설은 말이다. 우리 시민중 상당수에게『자유』라고 하면 그냥『마음대로 하는 것』일뿐이다. 더구나 국가보안법의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처벌을 받아본 사람과 그 사람의 가족, 그 사람의 친구들에게는 국가보안법이 부당히『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자유』와『안전』을 싸게 또는 거저 가지려는 사회는 노예가 되거나 파멸되곤 한 것이 어김없는 역사의 사실(史實)이다.

600여년 전인 1392년 이래의 조선조 역사에 들어와서 우리 역사는 나라공동체의 안전과 자유를 지키는데 대가를 치루지 않는 무사려(無思慮)를 반복하여 왔다. 1560년경 일본 각지 군사력의 전투력이 급격히 팽창하는 호전성의 정보를 입수한 이황(李滉)이 이를 여러차례 경고하였는데도 심지어 그 훌륭한 제자인 유성룡(柳成龍)은 1570년경에 군사를 양성하자는 이이(李珥)의 제안을『아무런 일 없는데 오히려 화를 양성한다』면서 반대하였고 역시 이황의 훌륭한 제자인 김성일(金誠一)은 1590년경 일본까지 가보고서도『걱정할 것 없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그 사이 일본의 스파이들이 팔도강산을 이곳저곳 지형 정찰하고 잠재 고정간첩들을 사귀고 있을 때에 이들을 감시하고 적발하는 메카니즘 마저 없었다. 그 때문에 1592년부터 우리민족의 큰 부분이 일본군 수중에 어육(魚肉)처럼 죽어갔고 이듬해 진주성을 지키던 군사와 백성 6만명이 일본군 손에 전멸하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598년 일본군이 철수한지 29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민족공동체를 사수하겠다는 결의가 적었던 우리 선조들은 1627년과 1636년 2차례 북방의 여진족 기마병에게 싸움다운 싸움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짓밟혀 치욕을 당하고 있다. 나라를 빼앗겼다가 헌법을 세운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과 내란에 대비한 국가보안에 관한 법을 반대한 국회의원들이 많이 있었던 가까운 역사를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선조 초기를 제외한 500년간의 나쁜 전통을 다시 기억하고자하는 이유는 그 전통이 현재에까지 우리에게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보자. 바이마르 공화국때 법무부장관을 하던 구스타프 라드브르흐가 2차 세계대전 후에 실토를 한 적이 있다. '인간에게 자유를 지켜 주는 자유체제에 대한 공격자인 나치스의 자유까지도 너무 방임한 것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죄'라고 애기했다.

그래서 이 교훈을 잊지 않는 독일의 1995년 개정헌법 제18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려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신문에 발표하거나, 교수로서 강의하거나, 집회결사를 하거나, 통신을 하거나,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 등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거듭거듭 국토의 유린, 백성의 대량 살육, 국권의 굴욕, 6·25 참상을 겪고도 독일헌법 제18조와 같은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정신상태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충성심은 나라 안전의 자산(資産)

나라의 안전을 지키려면 전쟁이 없을때에도 무기등 하드웨어나 그 운영체계 그리고 군인들의 사기(士氣)와 국민의 충성심(忠誠心)이 자산(資産)으로 축적되어 있어야한다. 일단 전쟁이나 폭동이 발생할때에는 국민의 충성심, 군인들의 사기, 무기를 급격히 지출(支出)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국가의 안전을 지켜 나라 파산을 막을 수 있다.

국민의 충성심, 군인의 사기는 우리 헌법시스템을 위하여 각 시민의 생명까지도 바치는 희생을 치루겠다는 의지이다. 희생을 치루려고하는 사람 따로 있고, 나라의 헌법시스템을 타도하자고 떠드는 선동선전자가 별도로 횡행할때에 그 나라 국민의 『충성심 자산』은 상쇄되어버리고 소실되어버리게 마련이다.

『국민의 충성심』 자산을 축적하지 못한 1940년대의 중국 국민당 정부와 1970년초의 월남공화국정부는 무기하드웨어를 적군보다 더 쏟아부어 지출하였는데도『국민의 충성심』자산이 상쇄 소실되어 『국가의 안전』을 얻지 못하고 무너진 것을 전 세계가 목격한바 있다. 우리의 대차대조표는 어떤가.

우리의 『국가안전』을 확보하려는 자기자본 비율은 조선조 개국 직후인 600년 전부터 급격히 축소되는 위험한 전통이 생기게 되었다. 1592(임진년)에 우리나라는 자기자본 부족으로 『국가의 안전』을 잃는 위기에 빠져서야 명(明)나라로부터의 부채(負債)로 겨우 지탱하였고 명나라로부터 부채의존(負債依存) 체질을 벗어나는 의지가 약하여 1636(병자년)에 『국가의 안전』을 또다시 잃었다. 역사를 자세히 그리고 냉정히 보면 그 당시에 무기와 군인의 사기뿐아니라 국민충성심도 상당히 취약하였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국가의 안전』에 관하여 미국으로부터의 『부채의존』체질이다.

세계적인 집단방위나 협력에서, 방위에 관한 상호『부채의존』은 마땅하지만 일방적인『부채의존』자체를 망각하고 당연지사(當然之事)로 의지하는 것은 장래가 미덥지 않은 민족의 자세다. 더구나 일부 시민들의 미국철수의 반복주장은 다름 아닌 군사력『부채회수』를 통한 『국가안전』의 파산을 겨냥한 것으로서, 1948년 우리 정부수립직후 6.25발발까지 애국지사 경력자들 국회의원들까지 이에 동조하였던 우리나라의 이력서를 지금 다시 한번 읽어보면, 미군철수의 『자금회수』를 주장하는 운동이 얼마나 우리의 『국가안전』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게된다.

이『군사력 부채회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바로『충성심 자산』인 국가보안법의 폐기를 주장하는 것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우리는 이 한반도에서 2차대전후 20세기 전기간에 걸쳐 보아도 밀도에 있어 세계 최대의 전쟁을 치루었다. 그 전쟁이 다른 민족 사이 아닌, 같은 동족들 사이에 그것도 서로 누가 누구 편인지 잘 모르면서 싸워야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민주체제의 헌법을 지키기 위하여 싸웠고, 반국가단체는 그들의 이데올로기로 통일하려고 무자비한 침략을 하였다.

누가 우리 헌법에 대한 충성심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지, 누가 우리 자유민주체제를 타도하려는 공산이데올로기 동조자(sympathizer)인지 구분이 안되어, 성실한 수사기관이 눈에 불을 켜고 수사하는 경우에도 대한민국 핵심지도부까지 침투한 공산이데올로기 동조자를 발견 못하는가하면, 대한민국에 대해 충성스러운 시민이 공산이데올로기 동조자로 억울하게 오인되는 사건이 하나 둘이 아닌 민족의 비극을 겪어왔다. 우리 헌법에 대한 『충성심 자산(資産)』은 공짜로 축적되는게 아니다. 고난과 눈물로 쌓여지고 먼저간 선배들이 축적해 놓은 것이다.

1000명의 적대이데올로기 동조자를 검거하다가도 1명의 일시적 누명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은 아무리 인권보장이 철저한 선진국에서도 발생하는게 사람사는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이다. 이 일시적 누명의 바늘을 몽둥이처럼 묘사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꾸준히 제기하는 사람들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그럴듯하고 멋있는 인권논리에 매료되는 순진하고 착한 시민들중에 국가보안법상의 『적에 대한 찬양고무처벌규정』, 『간첩등 고지의무』 등을 없애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또 원래부터 반국가단체는 대한민국헌법에 대한 충성을 강제로 요구하는 법률을 민족의 이름으로 절대 반대하고있다. 그 외에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충성을 법률로 요구하는 국가보안법을 꾸준히 반대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헌법에 대하여 충성하고 싶지않은 사람들은 반대한다. 자기 소신을 말하였더니 그것이 자꾸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에 충돌하게 되더라 하는 사람들도 반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있는 번영하는 나라들, 선진사회들은 예외없이 그 시민에게 자기 시스템에 대한 충성을 절대로 요구하고 있으며 이것이 법제화 되어있고 판례로 축적되고 있다. 하물며 누가 우리 시스템을 타도하려는지 그 피부색과 언어만으로는 도저히 가릴수 없는 단일민족 중에서, 자유민주체제를 타도하는데 동조하여 떠들어대고, 젊은이의 멤버쉽트레이닝에서 자유체제 타도의 세뇌논리를 마음껏 전하려는 자들을 제재할수 없다면, 우리사회는 자기 체제를 파괴하는 자유를 허용하는『자유롭지만 얼빠진』바이마르공화국으로 되어갈 것이다.

자기시스템에 대한 충성을 강제 못하는 헌법은 존립의 가치가 없는 헌법이다. 헌법에 대한 충성을 강제하는 법률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며 나라에 대한 충성을 소멸시키거나 훼손하려는 시도(試圖)에 대하여 형사억지력(刑事抑止力)을 행사하는 것은 우리의『안보』대차대조표 자산부(資産部)에 있는 가장 중요한 항목인 국민의 『충성심』을 보존하기 위한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3. 불고지죄는 헌법 제39조에 근거

『불고지죄』는 국가보안법 제10조에서 정한 것인데, 대한민국을 타도하려는 무장조직, 무장폭파, 군사기밀 간첩, 암살, 납치 등 행위나 계획을 보고 들은 국민은 당국에 신고할 충성의무를 규정한 것이다.

모든 국민은 헌법 제39조에 의하여 국방의 충성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시민들의 충성심이 없으면 존속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리이다. 대한민국 국민(20대 남자)은 병역법 제3조 제86조 제87조 제88조에 따라『신체검사를 받지 않거나』『소집을 받고도 나오지 않거나』등 부작위에 대하여 충성의무 불이행으로 처벌받게 되어있다. 이것은 전쟁터에서 살해당하는 위험을 무릅쓰라고 국가공동체가 충성의무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 내일밤 군지휘관들이 회의중인 군용시설을 고성능 폭탄으로 폭파할 임무를 띄고 잠입한 간첩의 계획을 알면서 경찰파출소에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하자.

다음날 밤에 이 군용시설이 폭파되고 주요 지휘관이 살상되었다고 하자. 부작위로 그냥 보고만 있으면서 신고를 하지 않은 시민을 어떻게 볼것인가.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사살될 위험을 무릅쓰라는 충성의 의무와 가까운 경찰파출소에 가서 신고하거나 전화 한마디로 신고하는 수고를 하라는 충성의무를 비교할때 어느 것이 시민의 희생을 더 요구하는 것인가. 헌법 제39조에 터잡아서 그런 신고조차 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자는 조항이 바로『불고지죄』조항이다. 다른 사람 개인에대한『위해의 임박(危害의臨迫)을 보고도 팔짱끼고 구경해도 괜찮은 자유, 이를 구출할 수고(救出할手苦)를 아끼는 부작위의 자유(不作爲의 自由)에 관하여는 일찍부터 법철학자들 사이에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그러나 국가공동체에 대한『위해의 임박』에 처하여서까지 어렵지 않은 수고를 아낄 부작위의 자유는 어느 나라에서나 훨씬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 한반도의 대한민국 헌법은 역사상 매우 위험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반국가단체로부터 대량 살상무기로 위협을 받고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불고지』라는 부작위를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은 깊은 법철학적 근거가 없다. 더구나 대한민국 시민들을 향하여 반국가단체가 꾸준히 요구한다고 해서, 나라의 적대세력과 화해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통일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으로『불고지죄』를 없애자는 주장은 우리의 헌법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저버려도 좋다는 주장에 가까워 깊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선량한 시민들중에『불고지죄』로 처벌받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해서, 법을 담당하는 사람이 남용할 수 있다고 해서, 인권의 대의명분으로『불고지죄』를 없애자는 주장은,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 소속 모두의 인권의 기초석축(基礎石築)을 하나 둘 빼어 버리고도 괜찮겠치 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말없는 다수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 보라. 다수 시민들은 국가보안법과 같은 자유체제를 지키는 제도를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 뜻 있는 시민들은 월남전에서 내일밤에 월남정부 군부대를 습격할 임무를 띄고 잠입한 베트콩의 계획을 알면서 신고하지 않고 팔장 낀 시민들을, 당시 베트남의 이른바 민주인사들이 인노센트(innocent)시민이라고 옹호하였던 것을 주의 깊게 기억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10조의 불고지죄는 그 부모자식사이 형제사이의 밀고를 권장하는 인륜에 반하는 규정이라는 주장이 그럴듯하다. 그러나 제10조 단서에 친족관계가 있으면 그 형을 감경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실제로 대한민국 검찰에서 부모자식사이나 친형제사이는 거의 처벌하지 않아 왔다. 이 점에 관한 미국의 판례를 참고로 보자. 미국의 하우프트(Hans Haupt)라는 사람은 2차대전 당시 사보타지의 임무를 띈 아들을 집에 재워주고 공장직장을 얻어주고 자동차를 사도록 도와주었다고 기소되어 반역죄(treason)로 유죄판결 받았는데 미국 대법원은 1947년에『아버지의 자연스러운 아들 보살피는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8대 1의 다수로 그 유죄를 지지한바 있다. 『사회전체』『국가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을 무겁게 여기는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러니까 미국은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판례는 그후 번복된 일이 없다.

미국 대법원은 2차대전 때의 일을 가지고 7년이 지난 1952년에 이르러서도, 일본계 미국시민으로서 자기 조상의 나라 일본에 머무르던 중에 미국과 일본사이의 전쟁으로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한채 부득이 일본국법에 순종했다는 주장을 하는 Kawakita에 대하여『미국 시민은 그가 어디 거주하든지 2중국적자라 하드라도 미국에 대한 충성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판결하여 유죄 확정시킨바가 있다.

4.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

역사를 보면 사회나 국가에『해로운 발언』을 했다고 억울하게 처벌받는 훌륭한 사상가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전체주의국가나 독재국가에서는 이른바『지도자』에게 반대하는 발언을 하였다고 처형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유민주체제를 만들어 살고 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하여 어떠한 대가나 희생도 치루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이 자유민주체제 자체에 대하여는『해로운 발언』이 아주 없는가.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법원 판사들과 법학자들은 흔히『극장에서 불이 났다고 말하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함부로 한『말 한마디』의 비물질적 의사전달이 연극을 관람하고있는 관객이라는 공동체에게『심리적 변동』을 일으키는 관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예로 드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생각을 언어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지만 형사처벌을 해야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와 자유에 관하여 깊은 통찰력을 가진 판사들이나 법철학자들의 통설이기도 하다. 이른바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Clear and Present Danger Doctrine)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는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위태롭게 하는』선동, 동조, 허위사실유포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동』을『찬양, 고무, 선전』이라고 부드럽게 썼으나 이런 찬양, 고무, 선전이 바로 선동이다.) 이 조항이 우리민족의 자유체제에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따져보자. 서해 연평도, 백령도를 잇는 북방한계선에서 전투위기가 매우 높아지고 적군이 대한민국 공동체에게 비정상적인 위협을 계속하는 경우를 가상해 보자.

해군, 해병대 장병이 일선으로 몰려가는 부둣가에서, 우리의 북방한계선은 국제법위반이며 동포인 적군병사에게 사격하는 것은 민족범죄라는 등 호소의 데모를 반복하는 지식인들이 있다고 하면, 이는 대한민국의 명운(命運)과 안전을 명백히 그리고 현존하게 해하는 것인데, 이를 언론자유라고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가. 『국가의 존립, 안전, 기본질서를 명백하고도 현존하게 해하는 발언이나 동조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우리 국가보안법 제7조에서 비로소 새삼 규정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 민주제도의 역사에서도 있는 형사제도 이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미국에서 링컨 대통령은 병사들을 향하여 북군(Union)에 참전하지 말라고 박진하게 글쓴 언론인을 처벌해야한다고 하면서 자유언론의 침해라는 비판에 대하여,『나이 어린 병사가 전투공포로 적전도망(敵前逃亡)하다 잡혀 처형되는데』적전도망토록 동기주입(動機注入)한 사람은 제재를 받지 말아야 하느냐고 반문하였다. 우리의 국가보안법 제7조는 대한민국 영토(헌법 제3조)의 수호와 안전, 그리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전문)를 끊임없이 공격, 전복, 와해하려는 세력이 있으면 이에 대처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대한 타도공격, 전복활동, 와해공작을 막을 필요가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설득을 할 수가 없다. 또 우리 자유민주체제는 이미 승리한거나 마찬가지이므로 우리에 대한 타도공격, 전복활동, 와해공작은 되지도 않을 일이므로 안심해도 좋다는 지식인에게 알려주고 싶은 역사가 있다. 무력(武力)만이 나라를 전복할 수 있고 와해시킬 수 있다는 판단은 수많은 인종과 나라가 생존경쟁을 벌여가면서 흥하고 사라져 간 인류의 역사를 읽어보면 아주 순진한 발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오히려 정보모략전(情報謀略戰)에서 전쟁이 결판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패배하여 무너진 나라들의 지도자와 백성들을 살펴보면, 나라 공동체가 적의 전복공작(顚覆工作) 와해활동(瓦解活動)의 먹이가 되도록 방치하고도 무심했던 어리석음이 반드시 복재(伏在)하였던 것을 전쟁사가(戰爭史家)들이 쓰고있다. 국가공동체에『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으로서 헌법시스템의 파괴에 조력하는 행위에는 교사(instigation), 선동(excite or agitation), 선전(propaganda), 세뇌(brainwashing)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마음속의 사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1919년 Schenck v. United States 판례를 보자. 1차대전 참전을 반대하여 군입대를 하지 말자고 전단을 뿌린 Schenck에 대하여 적용된 간첩법(Espionage Act)에 관하여 홈즈(Holmes)판사는『자유로운 언론의 권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자유언론은 극장에서 나지 않은 불이 났다고 소리내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다.』『나라가 전쟁중인때 Schenck와 같은 표현은 국가의 전쟁노력에 방해되며 병사가 싸우고 있는 동안 용납될 수 없다』고 유죄확정판결을 쓰고 있다. 역시 1919년의 Abrams v. United States 판결을 보면 미국정부가 러시아에 파병하는 것을 반대하여 총파업을 호소하는 팜프렛을 뿌린 Abrams에 대하여 다수의견을 쓴 클라크(Clarke)판사는 소요법(Sedition Act)을 적용하면서『전쟁, 소요, 폭동, 혁명의 위기에 선동』을 행하는 것의 처벌은 정당하다고 확정판결을 쓰고 있다. 1927년의 Whitney v. California 판례에서도『언론의 행사는 국가를 파괴로부터 보호하는 제약을 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들 판례의 기본틀은 지금까지 번복된 일이 없다. 당시의 미국의 경우, 오늘의 우리의 국가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인데도 이런 판례가 확립되었다는 점에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5. 이상한 4가지 논리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16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하는 선동죄(제7조-제목이 찬양고무죄라고 하는 것은 표현상 오해의 소지가 있음)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 가운데 근본적으로 헌법정신에 어긋하는 논리들이 섞여있다.

첫째, 북한 당국이 대한민국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서명하였고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으며 대한민국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금강산관광까지 가고 있으니 북한을 주권국가로 보아야한다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일정 지역을 군사력으로 장악하고 그 주민에게 권력을 행사 할 정도의 조직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을 국제법 전쟁법규상 교전단체로 취급하여 상호협상 피차교류를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대한민국으로서 북한 지배집단을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이 되는게 아니다. 이 점은 유엔이 평화정착의 차원에서 북한을 유엔에 가입시켰다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이 점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의 1997. 1. 16.자 판례(92헌바6, 26, 93헌바34, 35, 36)가『북한이 납·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소위 남북합의서의 채택·발효 및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의 시행 후에도 적화통일의 목표를 버리지 않고 각종 도발을 자행하고 있으며 남·북한의 정치, 군사적 대결이나 긴장관계가 조금도 해소되고 있지 않음이 현실인 이상, 국가의 존립·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신·구 국가보안법의 해석·적용상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이에 동조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것 자체가 헌법이 규정하는 국제평화주의나 평화통일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고 설시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둘째,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하여 북한이『적(敵)』이냐 아니냐에 대하여 따지지 말자는 논리가 있다. 북한은 포용해야할 동포이며 같은 민족이므로 적대세력으로 보아서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헌법시스템 즉 인권과 행복추구, 언론자유, 종교의 자유, 신체의 자유가 보장되고 재산권이 보호되며 생활과 경제활동에 자유와 창의가 기본인 그러한 우리의 헌법시스템을 선전, 간첩침투, 무력위협, 지하조직으로 타도하려하고 그래도 안되면 불바다의 전쟁도 할 수 있다는 세력이 우리헌법의 적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적인가.

셋째, 외국의 국제기구나 외국의 인권단체가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비판하고 있으니 마땅히 고쳐야하지 않느냐는 논리가 있다. 걸핏하면 외국의 인권단체가 비판하니까 우리도 이 비판에 응해야한다고 말하는데, 북아일랜드 사태에 대한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의 혹독한 비평, 또 미국의 사형제도나 미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 없는 폭동진압 방법이라든가 법규적용, 그런것에 대해서 이미 계속 인권유린이라고 비판을 하는데도 영국이나 미국은 자기 사회에 필요한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유엔 인권기구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것은 판례가 아니고 일종의 '수사(修辭)'이다. 외국의 예를 가지고 이랬으면 좋겠다, 고쳐라 하는것에 대해 우리가 우리 국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비판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것처럼 논하는 것은 실상 사대주의적인 발상이기도 하다.

판사가 3심에 이르도록 쌍방을 심리하고 고뇌(苦惱)한 끝에 내린 그 사회의 판례(判例)와 나라밖에서 일방의 진정서를 읽고서 고민 없이 발표하는 수사(修辭)를 구별하지 못할때에, 우리사회는 당나귀를 아버지 아들이 함께 타고 가다가 행인의 말에 쫓아 함께 메고가는 줏대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넷째, 그 동안 국가보안법이 악용되어 무고한 시민이 억울하게 처벌받은 일이 있으니 국가보안법은 개정 또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있다. 검사가 잘못 기소하거나 판사가 오판을 하는 차원과, 법 자체가 국가와 국민에게 해롭다는 것을 혼동시키는 논리의 비약이다. 오판의 역사는 인류의 법제도만큼 오래되었으나 오판 때문에, 법 자체를 없애자는 논리는 오늘의 우리사회에서나 듣는 현명하고 신중하지 못한 발상이다. 국가보안법뿐 아니라 모든 형벌법규의 적용에서 법률인들은 인권옹호를 더 철저히하고 신중한 사실인정을 하는 노력을 계속해야할 것이고 우리의 현대 사법사(司法史)도 그러한 길을 걸어왔다.

6. 헌법시스템을 지키는 초소 2개를 철거하지 말라.

국가보안법은 우리의 헌법시스템을 지키는 초소들을 모아놓은 법이다. 10개의 초소가 있는 우리의 국가보안법중 제7조 초소와 제10조 초소는 다른 8개 초소로 대신하거나 카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우리의 자유체제』를 지키기 위한 국가보안법의 10개 초소에 10명 초병을 배치하는 수준의 대가(代價)도 치루기 싫어하는『공짜 자유체제』를 향략하고자 할 때, 우리는 보험 안들고 승용차를 운전하는 운전수처럼, 『자유는 공짜다.(Freedom is free)』라는 착각환시(錯覺幻視)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짜는 즐거워라고 착각환시하다가 전쟁의 사고(事故)나 폭동의 불상사(不祥事)가 발발(勃發)할 때 민족 전체의 불행, 사회공동체의 자유 파괴 내지 상실이라는 엄청난 대가(代價)를 치루게 되어 있음을 역사는 가르쳐 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