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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의 대남정책 그 어제와 오늘
등록일 2003-12-23 조회수 14235
『북한의 대남정책 - 그 어제와 오늘』

- 포용논자의 계몽을 위하여 -

李 命 英 (成大 명예교수·정치학)

1. 북한의 국가목표는 통일혁명

북한의 조선노동당은 자나깨나 혁명의 완수를 고창한다. 무슨 혁명인가. 이미 사회주의를 실현했다고 하는 판에 또 무슨 혁명인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넘어갈 때엔 혁명이 필요하지만 사회주의 다음에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있을 뿐이지 혁명은 필요 없다. 그렇다면 북한이 고창하는 혁명이란 무슨 혁명인가. '남조선 혁명'이란 것이다. 남한에서 미군을 내쫓고 북한 추종세력의 정권을 세워 남북통일을 성사하는 일, 이것이 남조선 혁명이고 통일혁명이란 것이다. 이것이 50여 년에 걸쳐 시종일관된 북한의 국가목표이며 통일정책이다.

공산당은 모든 목표달성과 정책완수엔 반듯이 치밀하고도 속 깊은 전략과 전술을 짜놓고 일사불란하게 밀고 나간다. 남한과 같은 자유사회 민주국가에서는 전략 전술 개념이 생소하다. 따라서 북한의 전략 전술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지 못하기 일쑤이다. 이러한 처지에서 공연히 통일을 촉진한답시고 또 무슨 화해 협력을 도모한답시고 엄벙덤벙 서둘다가는 백발백중 북한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가 예사롭다. 이렇게 말한다면 물론 눈을 부릅뜨고 그것은 냉전시대의 반공논리일 뿐이라고 질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며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고 그들은 대들 것이다. 그러나 명약관화한 현실이 있다. 세계는 소련과 동구권이 공산주의를 포기함으로써 탈냉전시대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나 북은 시종일관 적화통일을 고집함으로써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시대이다.

물론 북한은 탈냉전의 환상을 확산시킴으로써 남한의 대북 경계 태세를 이완시키려는 전술을 부린다. 우리는 과거에 북한의 이 전술에 놀아나는 남한 정부의 씁쓸한 모습을 목격한 일이 있다. 88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루어 낸 다음해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의 호전에 아주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유감스럽게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라고 전제하면서 잘되어 나갈 여러 가지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그래야 할 필요성은 북쪽에도 있다고 했다. 남쪽이 과거의 적대감정을 '스스로 일방적으로' 버리고 '화해와 협력 관계'를 추구하고 나선 것을 전세계가 평가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미구에 남북 정상회담도 성사되리라'고 본다고도 했다. 사실이라면 얼마나 좋은 사태의 진전이었겠는가. 그와 같은 낙관을 허락할 수 있을 만한 조짐들을 정부는 파악하고 있으나 아직은 발표할 시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정부만이 알고 있는 그 움직임들이 허상이었다 함은 그 후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북쪽이 변하는 척한 전술에 남쪽이 깨끗이 놀아난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의 지식과 투시력의 결핍이, 판단의 경망성이 대통령을 한낱 피에로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실태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도 남한은 역사적 경험에서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어디에 나타나느냐 하면 북한이 크게 변하고 있다고 보는 일부 논자들의 언설에 잘 나타난다. 이는 전술적 변화와 전략적 변화를 분간 못한 데서 오는 오류이다. 따라서는 노태우 식인 과거의 적대감정을 '스스로 일방적으로' 버리고 '화해와 협력 관계'를 추구해 나가자 하는 순진하고도 대범한 포용정책적 발상이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정책의 본질을 가변성으로 보느냐 불변성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는 대북인식을 정반대로 갈라놓는 분기점이다. 여기서 북한이라 함은 김일성 부자 체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체제의 본질은 대남정책의 불변성에 있다. 그 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 북한의 대남정책의 불변성

조선노동당의 당면목표는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이며, 궁극적 목표는 남북 전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화이다. 당면목표를 통일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이 통일혁명을 성사시키기 위한 전일적인 이론체계를 전개해 놓은 것이 1975년에 나온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 리론'이란 306면 짜리 책자이다. 이 책은 통일혁명에 관한 북한의 최고의 '경전'이다. 해방 직후부터 남한과 통일에 대해 김일성이 제기해 놓은 모든 이론을 총망라한 이 책자의 내용은 2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도 아니 북한이 김일성과 주체사상을 최고의 가치로, 유일의 원리로 떠받드는 한에 있어서는 변치 않을 대남정책의 원칙들인 것이다. 북한을 연구했다는 사람 치고 이에 대해 딴소릴 할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김일성의 통일혁명 이론 (따라서는 대남정책 이론)의 초기적 표현은 아득히 해방 직후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12월 17일의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북조선을 통일국가 건설의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키는 것이 당의 첫째가는 과업이다'라고 했던 김일성의 연설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기지란 인민민주주의기지 즉 사회주의기지의 뜻이다. 그러니까 그때 김일성이 북한의 첫째 과업으로 제시한 민주기지노선이 오늘에까지 시종여일 변치 않는 사회주의 통일, 적화통일의 기본노선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의 이 노선천명은 실은 스탈린의 지령에 따른 것이었다. 1945년 9월 20일에 스탈린은 암호전문으로 북한 주둔 소련군에게 북한 점령과 관련된 기본지침을 하달했는데 그것이 인민민주주의 단독 정권 수립에 따르는 민주기지노선의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 지령에 따라 북한에는 조선공산당과 별도로 북조선공산당이 나왔고 그 기본노선이 민주기지노선이었고 그 실천을 위해 1946년 2월 8일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란 단독정권이 섰고 그 정권에 의해 '각종 민주화 조치'라는 이름의 사회주의 제도의 창설이 진행되었으며 이 임시인민위원회가 다음해(1947년) 2월에 북조선인민위원회로 다시 그 다음해 9월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으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민주기지노선은 선분단 후공산통일의 노선이다. 이 노선 때문에 미소간의 군사분계선이었던 북위 38도선은 드디어 우리 민족간의 정치적 분계선으로 되고 말았다. 그랬는데도 김일성은 1946년의 8·15 1주년 경축식에서 미국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자는 의도를 갖고 있으며 그래서 지금 남조선은 또 다시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될 엄중한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면서 하루 빨리 북조선의 민주기지를 더욱 공고히 하여 그것을 남한에까지 확대함으로써 통일 독립을 앞당겨야 한다고 연설했던 것이다. 남한이 미제의 식민지이며 이를 해방할 의무가 북한에 있다는 명제는 실로 이때 즉 1946년의 해방 1주년 경축식 때부터 명확한 논리로 등장하여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불변의 그들의 당면목표로 되고 있다. 김일성은 이러한 주장을 1946년 8월 29일의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 때도 또 1948년 3월 29일의 북조선노동당 제2차 대회 때도 또 그해 9월 12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경축 대회에서도 거듭거듭 역설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48년 12월 26일자로 스탈린에게 보낸 '조선인민의 감사문'이란 장문의 편지이다. 이 감사문은 북한 주둔 소련 군대의 마지막 부대가 평양에서 철수하던 날인 1948년 12월 26일의 그 환송식전에서 서명 날인했다는 조선인민 16,767,680명의 이름으로 스탈린에게 보내졌다. 이 숫자는 당시의 남북한 성인 인구의 거의 전체에 해당한다. 감사문은 비단천에다가 글자 하나하나를 수를 떠서 만든 장문의 편지이다. 김일성과 그 정권이 스탈린에 대해 얼마나 정성을 드렸는지를 알 수 있다. 오늘날 북한의 그 어떤 간행물에서도 이 감사문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오늘날 북한의 역사책에는 8·15 해방이다, 북한 정권 수립이다 하는 것이 다 김일성이 한 일이지 스탈린이나 소련 군대가 한 일이라고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단천으로 된 감사문과 서명자 명단이 든 서른 개의 대상자는 모스크바의 구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문서고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감사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스탈린과 소련 군대 덕택에 해방과 정권 수립이 성취되었음을 구구절절이 감사하는 내용이다. 둘째는 분단의 책임을 미국과 남한에 뒤집어씌우는 내용이다. 소련 군대는 강점자로 온 것이 아니라 해방자로 왔으나 미군은 제국주의 강점자로 왔으며 단독 허위 선거로 괴뢰정부를 수립하여 남한을 식민지적 군사기지로 전환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는 김일성 정권이야말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주장한다. 1948년 8월 25일을 기해 남북총선거로 수립된 정부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남한에서는 지하선거로 뽑힌 인민 대표자들이 해주에서 모여 간접선거로 남한 출신 대의원들을 뽑았다는 것이다. 넷째는 공산통일의 맹세이다. 민족적 영웅 김일성의 영도하에 단결하여 미군을 철수시키고 38선을 청산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6·25 남침전쟁의 예고이기도 했다.

북한의 투쟁이 아니더라도 미군은 행정권 이양의 대상인 대한민국 정부가 서자 스스로 철수했다. 그 마지막 부대가 서울을 떠난 것이 1949년 6월 29일이었다. 미군 환송 군중대회도 없었고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감사문 전달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는 미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의 있고 없고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북간의 이 대조적인 차이점은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사고와 행위양식의 차이이며 민주정부와 비민주정부의 심적 태도의 차이이다. 어째든 스탈린에게 보내는 조선인민의 감사문은 6·25 전쟁 이전 단계에서의 북한의 대남정책 이론의 근본을 이루는 문서였다. 북한은 합법성과 정통성을 지닌 나라이고 남한은 미제의 괴뢰이므로 태어나지말아야 할 나라이고 해방의 대상이요 혁명의 대상이란 것이다.

그 남한의 해방을 위해 일으킨 것이 1950년의 6·25 전쟁이다. 그러나 그들은 남침과 동시에 북침이라고 온 세계를 향해 떠들었다. 이 역주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전술이다. 북한의 6·25 북침 주장은 남북분단의 책임이 미국과 남한에 있다는 주장과 함께 그들의 대남정책 이론 즉 남조선혁명 이론의 중요 기둥으로 되어 있다. 6·25 전쟁에 실패한 단계에서의 북한의 대남정책 이론은 정치 사상적으로 남쪽사람들 마음을 휘어잡으려는 보다 더 정교한 심리전 이론 쪽으로 중점이 가는데 그 결정판이 김일성의 1955년의 '4월 테제'이다. 정식 명칭은 '모든 힘을 조국의 통일 독립과 공화국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이며 일명 우리 혁명의 성격과 과업에 관한 테제'라고도 한다. 1955년 4월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발표되었다.

1917년 4월에 레닌에 의해 발표된 저 유명한 '4월 테제'가 러시아 혁명에서 차지하는 결정적인 비중을 생각한다면 그것을 본뜬 1955년의 김일성의 '4월 테제'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짐작이 갈 것이다. 테제는 분단과 전쟁의 책임을 미국과 남한에 뒤집어씌우면서 우리 혁명의 기본임무는 미제침략세력과 그 동맹자인 남반부의 민족반역자들(정부)을 타도하고 남반부 인민들을 해방함으로써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달성하는 데 있다고 했다.

철저한 反韓史觀에 기초한 4월 테제이다. 한국은 애당초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이고 유일 합법적인 인민주권의 나라 북한이 반미 반한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테제는 역설한다. 테제란 말은 혁명의 일정한 단계에서 당이나 국가가 견지할 과업 완수의 기본 원칙이나 기본 방도를 밝힌 강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공산당에서 내놓는 테제는 혁명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없는 한 계속 유효한 법이다. 북한에서는 조선혁명의 성격에 관한 테제로서는 1955년의 4월 테제 말고는 딴 것이 나온 것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주의 통일이라는 하나의 혁명단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4월 테제의 원칙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다.

1970년의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연설에서 김일성은 사회주의 통일의 전제로서의 남조선혁명은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민족해방혁명인 동시에 미제의 앞잡이들과 그들의 파쇼통치를 반대하는 인민민주주의혁명이라고 강조하면서 과거의 주장을 압축 요약했다. 이른바 남조선에서의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통한 조국통일'이란 명제이다. 이는 조선노동당 제5차 대회 및 제6차 대회(1980년)의 당규약에 명문화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대남정책의 기본 명제가 헌법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면 1992년 헌법에서는 제9조에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으로 조국통일을 이룩한다'로 나온다. 이는 1998년 헌법에서도 똑 같다. 여기서 말하는 자주 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이란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에 등장하는 조국통일 3대 원칙 바로 그것이다. 7·4 공동성명에서 남북이 약속했던 상호 비방 중지라던가 군사적 충돌의 예방, 각종 교류의 실시 등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으나 3대원칙만은 북한이 기를 쓰고 내세우는 조국통일원칙이다. 왜 그런가. 같은 한국말, 같은 조선말이지만 말의 뜻이 다른 것이다. 조국통일이란 말은 남한에서는 간단하게 남북통일이라는 말로 쓰여지지만 북한에서는 '외래 제국주의자들에게 빼앗긴 영토와 인민을 다시 찾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적 자주권을 확립하는 일'이란 뜻으로 쓰여진다. 그들 사전에 그렇게 되어 있고 그들의 정책과 일상 언행에서 그렇게 쓰여진다. 다시 말해 남조선 해방통일(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통한 통일)이란 말과 같은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한에게는 평화공존의 문서로 비쳤던 7·4 공동성명이 북한에게는 혁명 완성을 다짐하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남조선 해방통일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3대 원칙인 것이다. 남한에게 '자주'는 남의 나라의 간섭없이 자력으로 나간다는 말이며 '평화'는 군사적 방법에 의지 아니한다는 말이며 '민족적 대단결'은 매사에 협력해 나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북한에게는 처음부터 해석이 전적으로 달랐다. 북한에서의 '자주'는 김일성의 영도를 받아들일 때만이 자주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김일성의 영도하에서 북한이 '자주국가가 되었듯이' 남한 인민도 그 영도를 받아들일 때 자주적으로 된다는 논리이다. 또 '평화'는 남쪽이 김일성의 영도를 받아들일 때만이 '평화적 통일'이 된다는 뜻이다. '민족적 대단결'은 남북 인민이 모두 김일성의 영도를 받들어 평화적 통일을 위해 대동단결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조국통일 3대원칙은 김일성 영도하의 사회주의 통일의 원칙이다. 이러한 시종일관된 그들의 대원칙을 자상하게 알기 쉽게 구체적으로 종합해 놓은 것이 서두에서 언급한 1975년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 리론'인 것이다. 거기에는 북한의 당 규약이나 헌법이 오늘에 있어서도 명백히 규정해 놓고 있는 대원칙들과 그 실천방안들이 세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것이 또한 남한 지하당의 기본이론인 것이다.

남조선 해방통일이란 대목표는 위 3대 원칙에만 의거하는 것이 아니다. 1962년 12월에 채택된 4대 군사노선(전인민 무장화, 전국토 요새화, 전군 간부화, 전군 현대화)에서 보듯이 언제나 완벽한 임전태세 즉 군사적 통일태세의 확립에는 빈틈이 없는 것이다. 위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 리론'에도 명기되어 있듯이 김일성은 일찍이 '교시'했다. 조국통일엔 평화적 전도와 비평화적 전도가 있다고. 평화적 통일은 ① 남쪽 정부가 북쪽 말을 고분고분 받아들일 때 ② 남쪽에 반미정권이 서거나 중립화할 때 ③ 남'쪽에 인민민주주의(민중민주주의) 정권이 설 때, 다시 말해서 남쪽이 조국통일 3대 원칙대로 할 때에 평화통일은 되는 것이고 비평화적통일은 ① 미국이 전쟁을 도발할 때 ② 미국이 타지역의 전쟁에 휘말려서 남한을 지킬 수 없거나 반미투쟁 때문에 미국이 철수할 때 ③ 남쪽의 혁명세력이 북쪽의 지원을 요청할 때에 조선인민군의 남진으로 군사적인 통일이 된다는 것이다. 이 군사적 통일에 대비하여 핵과 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개발에 전력 투구해 온 저들이다. 요컨대는 평화적이든 군사적이든 조선노동당 주권하의 남한 병탄통일이란 대원칙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는 것이다. 이 대원칙은 김일성이 죽었다 해서 변동 변질되는 것이 아니다. 김일성 영도하 통일이 김정일 영도하 통일로 이어질 뿐이다. 김정일이 영도하는 조선노동당 주권하에 통일이 되면 그것이 김일성 영도하의 통일과 같은 것이다. 사상이 같고 체제가 같고 혁명의 혈통이 바로 이어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김일성의 사망과 때를 같이 하여 북한은 미증유의 기아와 빈곤의 늪에 빠졌다. 경제는 엉망이고 식량 사정은 기아선상이다. 그래도 그들은 통일혁명의 과제를 전략목표의 첫 자리에 놓는다. 북한의 이 요지부동의 자세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의 하나가 판문점의 통일각 앞에 세워진 거대한 천연 화강석의 김일성의 '친필비'이다.

'김일성, 1994. 7. 7'이라고 쓴 그의 친필 서명이 새겨진 이 친필비 밑에는 "민족분열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 사업을 이룩하기 위한 역사적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 존함을 남기신 경하는 김일성 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전해 가리"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김일성이 죽기 전날인 1994년 7월 7일에 생애 마지막으로 결재한 서류가 '조국통일 관계문건'이며 거기에 남긴 자필 서명을 그대로 확대하여 만든 것이 '친필비'란 것이다. 그러니까 이는 김일성의 가장 마지막의 유언 중의 유언이 바로 '조국통일 관계문건'에 담겨 있다는 뜻인 것이며 그 뜻인즉 바로 해방 통일, 조선노동당 주권하의 통일이다 하는 것이다. 저들이 그것을 커다란 비석으로 판문점에다 세워 놓은 것은 그 뜻을 기어코 관철하겠다는 다짐을 남북인민들 앞에 당당히 과시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김일성 사후에 김정일이 발표한 논문이나 담화문 또는 그 거동에서 보듯이 그들의 대남정책의 확고한 불변성은 조금치의 변동도 없다. 없다기 보다는 있을 수 없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를 위한 세습체제였으며 이를 위한 수령절대주의, 이를 위한 주체사상 절대고수였고 이를 위해 3백만 아사에도 아랑곳없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우선했고, 이를 위해 잠수정에 실어 무장 특공대와 특수 공작요원을 남파 침투시켜 왔으며 남한 지하당 한국민족민주전선을 30년 째 키워 왔던 것이다.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전신 통일혁명당이 창당된 것이 1968년이다. 1960년의 4·19 사태를 보고 김일성은 남한에 혁명적 당이 없어서 결정적인 시기를 놓쳤다고 해서 1962년 9월의 조선노동당 제4차 대회에서 지하당 조직을 역설하자 1964년 3월 15일에 조직이 시작하여 1968년 8월 24일에 창당된 것이 통일혁명당이며 그것이 1985년부터는 한국민족민주전선이란 대외명칭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래 북한은 대남 혁명공작이 뜻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호기 있게 자랑해 왔다. 1980년의 제6차 당대회에서는 대남총책 김중린이 "당의 대남정책이 훌륭하게 수행되어 남조선에서는 이미 반공방파제가 무너지고 국내외에서 용공통일의 세찬 물결이 넘쳐흐르고 있다"고 선언했다.

나아가 1989년의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남조선에서 '조국통일' 운동은 부분적인 데로부터 전면적인 데로, 낮은 데로부터 높은 데로 확산되어 올해는 '통일혁명'의 결정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김일성 사후에는 어떤가. 작년 9·9절에 평양 갔던 조총련 간부들 앞에서 대남총책 김용순 비서는 "남조선에서 혁명을 일으킬 준비는 다 되었다. 이미 5만 명이 침투되어 있다. 김대중 정권은 우리 손안에 있다"고까지 단언했다. 함부로 큰소리 치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될 엄중한 사태에 직면했음을 뜻있는 사람들은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3. 포용논자들의 논리

이상과 같은 북한의 대남정책에 대해 남한은 어떻게 대응해 왔던가. 남한과 같이 자유로운 민주사회에선 정권이 자주 바뀌는 것과 국민들의 생각이 각양각색인 탓으로 해서 거국적이고도 장기 안목의 대북정책을 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남북통일에 관한 한 대체로 국민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남북이 싸우지 말고 평화공존을 하자, 하다 보면 의사소통이 되고 서로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여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단계인 평화공존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단적으로 말해 사람과 물자의 자유 교류 상태, 평화 교류의 상태를 말한다. 이게 제대로 되면 사실상 통일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두 개 헌법, 두 개 정부하에서 같은 민족끼리 평화교류가 되면 이를 '성격적 통일'이라 하고 그러다가 한 헌법 한 정부로 통합되면 이를 '형태적 통일'이라고 한다. 성격적 통일에서 형태적 통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나 국제 환경 여하에 따라서는 성격적 통일로 그대로 있어도 된다. 그런데 그 평화공존이 불가능한 것이다. 북쪽에서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를 분열주의 책동이라 매도하며 반통일노선이라 타기한다. 우선 통일국가의 모자부터 쓰고 보자는 것이다. 나라는 하나로 해놓고 남북이 각각 자치를 하는 연방제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란 것이다.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주장이다. 사상과 체제가 상극적인 나라끼리 연방제란 것은 이론상으로나 실제에 있어서나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역사상에 있은 일도 없다.

그런데도 통일국가의 모자부터 쓰고 보자는 것은 민족통일을 하루라도 일찍 실현해 보려는 열정에서 나온 척하면서 실은 미군 철수를 실현하자는 것이고 국가보안법을 없애자는 것이고 모든 북한 추종 사상범을 석방시키자는 것이 속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군철수는 적화통일의 선결 요건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김일성은 일찍이 '조국통일의 두 가지 전도'에서 비평화적 통일의 요건으로 미군철수를 첫째로 꼽았다. 요컨대 연방제란 것은 연방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미군철수를 통한 북한 체제로의 통일이 목적이다. 근년에는 경제가 중태에 빠지니 더욱 통일이 급해서 연방제를 고창한다.

그런데 어떤 논자들은 북한은 자기들 생존을 위해 자기 체제의 보존 보위에 여념이 없지 감히 남한을 넘겨다 볼 여력이 없다고들 본다. 이 논자들은 북한의 본질에 대해 공부가 부족했거나 아니면 북한을 살려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주장을 한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북한이란 그 산천이나 동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김정일체제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자체의 체제 보존 보위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현명하게도 남한의 자유민주체제가 건재하는 한, 그 영향력이 밖으로 발산되는 한 그들의 미신적 신앙에 입각한 봉건적 수령절대주의 체제는 존속할 수 없다 함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체제유지책은 남한을 자기들 주권하에 편입시키는 일이 선결요건으로 된다. 그래서 50년 동안 특히 이 근년에 이르러서 저들의 '조국통일'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논자들은 또 무슨 소릴 하느냐 하면 북한이 크게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는 불가피하다고들 큰소리로 말한다. 그 증거로서 북한이 '하나의 조선' 깃발을 내리고 유엔에 한국과 '공동가입'을 했다고 내세운다. 이는 착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국민을 돌려먹기 위한 술수이다. 북한은 하나의 조선 깃발을 내린 일이 없다. 시종일관 북한은 유일합법 정부이고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 괴뢰이다. 또 유엔에 '동시가입'은 했어도 '공동가입'한 일은 없다. 공동가입은 서로가 합의하여 같이 가입할 때 쓰는 말인데 남북은 합의하여 유엔에 가입한 것이 아니고 남한의 가입이 실현되게 되니 북한이 괴뢰의 유엔 가입을 좌시할 수 없다 해서 자기들도 가입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간적으로 '동시가입'이 실현된 것뿐이다. 그것은 본질상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전술적 변화일 뿐이다.

또 이 논자들은 북한이 경제특구를 만들었다던가 남북기본합의서에 동의했다던가 하는 것을 다 큰 변화라고 치는데 그러한 전술적 변화를 큰 변화라 본다는 것은 전략과 전술을 분간 못하는 데서 오는 오류이다. 전략 전술 개념이 제대로 터득되지 못하면 북한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이 논자들은 작년의 북한 헌법의 개정 내용에 대해서도 엄청난 무지 또는 착각을 나타낸다. 북한이 헌법으로 개인소유를 인정했다고 하는데 소비 목적의 개인소유는 전부터 인정되어 있었던 것이고 사유재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산수단의 사유인데 이는 여전히 금물이다.

또 여행의 자유를 허용했다고 하는데 신헌법 제75조에 거주 여행의 자유란 새 조문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나 그 조항이 포함된 북한 헌법 제5장 '공민의 기본권리와 의무'에 보면 어느 자유주의 국가의 규정 못지 않게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잘 명문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유명무실한 조항들이다. 권리 의무에 관한 제규정의 첫머리 규정(제63조) 때문이다. "공민의 권리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라는 명문규정에 걸리는 것이다. 개개인은 전체 즉 당과 국가가 하라는 대로하고 당과 국가는 개개인의 모든 것을 보장해 준다는 이 원칙은 모든 전체주의 독재국가에 공통된 원칙인데 이러한 원칙하에서의 자유 권리라는 것은 헌법상의 장식품밖에 아니 되는 것이다. 또 이 논자들은 북한이 새 헌법으로 독립채산제를 도입하고 원가 가격 수익성과 같은 시장경제 원리의 핵심개념을 도입했다고 야단법석이다.

헌법 제33조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런 용어가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전 헌법에도 명기되어 있었든 사회주의 경제관리 형태인 '대안의 사업체계'를 실시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지 독립채산제 원가 가격 수익성 등이 '대안의 사업체계'를 떠난 개념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다. '대안의 사업체계'라는 것은 이미 일찍이도 1961년 12월과 1962년 11월에 김일성이 대안전기공장 당위원회에서 '교시'한 자본주의 잔재를 없애고 사회주의 경제를 세울 데 대한 경제사업체계로서 내세운 것이며 거기에 독립채산제 등등의 개념이 다 포함되어 있었던 것을 이번 헌법에서 새삼 강조했을 뿐이다. 그것은 사회주의 경제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도 필요했던 소리들이지 시장경제로의 신호가 아닌 것이다. 소리(noise)와 신호(signal)를 구분 못하면 자살적 정책입안밖에 못하는 법이다. 또 이 논자들은 북한에 3백 개 이상의 시장이 섰다느니 자본주의 경제를 배우기 위해 해외에 간부들을 파견했다느니 하면서 환영할 만한 변화라고 선전한다. 배급이 떨어지니 자연발생적으로 장마당이 선 것인데 김정일은 이를 비사회주의 현상이라고 해서 일소하겠다고 벼르고 있으며 또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시장이 무너졌으니 상대가 자본주의 시장밖에 없게 되었고 그 자본주의 시장과 거래를 하자니 필요한 지식 습득을 위해 성분이 좋은 사람을 뽑아서 해외에 내보낸 것뿐인데 그것을 굳이 변화의 큰 징조인 것 같이 주장 광고하는 것은 무슨 의도이겠는가.

이런 논자들의 언설이 대통령의 대북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을 생각할 때 문제의 심각성은 실감으로 와 닿는다. 클린턴 대통령이 내한했을 때 우리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 대통령은 북한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는 조짐이 확실히 있다면서 그 증거로서 헌법개정을 드는 것을 국민은 모두 지켜보았다. 북한이 변하고 있으니 포용정책을 써야한다는 뜻으로도 들렸고 포용정책으로 해서 북한이 헌법까지 고쳐가며 변하고 있으니 지켜보라는 뜻으로도 들렸다. 북한 변화론자들은 무엇 때문에 굳이 '指鹿爲馬' 짓을 하는 것일까. 자기의 권세를 위해서일까 대통령을 위해서일까 북한을 위해서일까.

포용정책이 북한변화론에 토대한 것이라면 미구에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물론 북한도 변하는 것이 있다. 김일성 시대엔 '쌀은 공산주의'라 해서 쌀 생산에 중점을 두었었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에 와선 감자 강냉이 농사에 중점을 둔다. 또 과학 용어나 스포츠 용어도 어색한 조선말이 아니라 원어를 쓰게 되었다. 변한다 아니다의 논쟁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본질, 기본노선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현대의 '금강산 관광'을 놓고 북한의 변화를 운운하기도 하나 그것이 엄격한 감시하의 등산이지 어디 관광이라 할 수 있는가. 거기에 사는 주민과의 접촉이나 그들 사는 모습의 견학이 없는 것이 무슨 관광이냐. 그래도 이 논자들은 데탕트 정책으로 세계적인 탈냉전이 왔다고 하면서 자기 주장을 변호한다. 데탕트란 것과 소련 붕괴로 인한 탈냉전이란 것은 시간적 전후관계일 뿐이지 사실의 인과관계가 아니다. 전후관계를 인과관계로 바꾸어 놓는 논법은 마치 전쟁의 원인이 평화에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평화 뒤에 전쟁이 있음으로써 이다. 그러나 이러한 궤변은 그래도 약과이다. 문제의 사활적 심각성은 현대가 갖다 바치는 돈 9억4천2백만 불이 어디로 가느냐 하는 문제이다.

북한경제는 3중 구조로 되어 있다. 첫째는 예산의 형식으로 외부에 알려지는 정부 관장의 일반경제이고 둘째는 일반경제와 독립된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중앙당중공업부 직속 제2경제위원회 관장의 군수경제인데 제2경제라 불리우는 것이고 셋째는 위 제1, 제2경제와도 독립된 그리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39호실이라 불리우는 중앙당 재정경리부 관장의 당경제인데 북한 전문가들은 이를 제3경제라 부르고 있다. 은행 무역회사 금광 같은 것도 제1, 제2, 제3경제에 속한 것이 각각 따로따로 있는데 제3경제에 속한 것이 제일 알짜이고 그 다음이 제2경제에 속한 것이고 꼴찌가 제1경제에 속한다. 그래서 북한의 민생경제는 아사상태이지만 제2, 제3경제는 언제나 소기의 기능을 다하고도 남는다.

제2, 제3 경제는 김정일 총비서의 직할하에 있다. 제3경제는 혁명과업 수행의 제비용을 담당한다. 여기엔 핵과 미사일 개발 및 남조선혁명의 자금이 포함된다. 현대의 돈은 이 제3경제 즉 당경제에 들어간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현대의 사업상의 계약 상대가 아태평화위원회라 함에 있다. 아태평화위원회는 중앙당 통일전선부의 대외명칭이나 마찬가지이며 그 직할조직으로서 김용순 대남담당 비서가 총책임자이다. 현대의 정주영씨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접촉의 대상은 김용순과 그 아태평화위원회 간부들이었고 그들이 접대 업무를 담당했다. 돈은 그리고 가는 것이다. 그래도 포용논자들은 그 돈이 어디로 갈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면서 많은 외채를 짊어지고 있는 북한이 빚을 갚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북한이 여러 나라에 대해 채무 이행 불능에 빠져 있는 것은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북한이 외채를 갚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어느 나라의 관계기관에서도 없었던 이야기이고 어떤 언론기관에서도 보도한 바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포용논자들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필시 그들은 북한으로부터 소식을 주고받는 지하 통로를 유지하고 있음직하다. 이러한 은밀한 통로의 유지는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혁명집단과의 관계에서는 자유로운 민주사회 쪽이 농락 당하기 일쑤인 법이다. 역정보 위장정보 교란정보 협박정보 유인정보 등등을 잘 포장하여 들어 먹인다. 그래서 북한은 비밀통로 유지책을 대남공작의 중요한 지렛대로 삼는다. 노태우 대통령 때의 허망한 대북 기대감이 그래서 생겼고 김영삼 대통령 때의 이인모 노인의 무작정 송환이 그래서 감행됐던 것이다.

지금 포용논자들의 북한변화론이라든가 외채상환설 같은 것도 이러한 대남공작의 소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남한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대남공작에 부지부식간에 놀아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이 논자들은 남북 당국자간에 공개 비공개의 접촉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인한다. 그래서 그들은 올해 하반기에는 남북 당국자간 대화가 재개되리라는 기대를 표명한다. 아마도 비공개 접촉에서 얻은 정보일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비공개 접촉에는 상대의 전략 전술을 통달하고 그 언어와 표정의 의미를 똑 부러지게 알아차릴 만한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과 둘은 하반기에 당국자 대화가 열릴 것 같다는 감촉은 저쪽의 위장 포즈에 현혹된 것일 수 있다 함이다.

북한은 미일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지렛대로 남한과 접촉하자 하지 미일과의 관계 진전이 있을 때엔 남한을 무시한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의 기업 및 민간인들과는 접촉 합작을 원한다. 1995년에 조선노동당 간부회의에서 경제의 재건책을 논할 때 김정일은 남한의 기업가를 이용하면 된다고 단언했다. 그런데 그 남한 기업과의 접촉이 문제였다. 남한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하지 않고는 접촉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포용논자들이 정경분리 원칙을 내세워 정부간의 관계 개선 없이도 기업이 북한과 접촉 교류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다. 앉아서 봉을 잡은 김정일이다. 굳이 남한 정부와의 대화가 필요 있을 턱이 없다. 설혹 그 어떤 작전상의 필요 때문에 북이 대화에 나선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목적의 전술이지 진정 남쪽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동작은 아니다.

포용논자들은 또 방북자의 격증과 관광객의 쇄도를 들어 포용정책의 성과라고 말한다. 보고 싶은 데를 갔다 왔다면 당사자들에게는 소원성취이겠으나 나라에는 반듯이 유익한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남북관계가 바로 그런 것이다. 사상적으로 체제적으로 상극 상태를 못 면하고 있는 남북관계에서 방북자들이 트로이의 목마 노릇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예방접종 없이 역학조사에 나서는 결과는 되지 말아야 할 터인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북에서는 자기네 목적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만 골라서 입국시킨다. 북쪽 사람을 남쪽 희망대로 내보내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남쪽만이 비싼 돈을 써가면서 저쪽 품으로 들어간다. 그것이 그들의 교류 방식이고 그것이 그들의 통일전선전술의 공작 방식이다. 포용논자들은 여기서도 상호주의 원칙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다. 포용논자들은 케케묵은 기능주의 통합이론의 사슬에서 아직 못 벗어난 모양이다.

4. 절정으로 치닫는 국민의 불안

이상에서 북한이 50여 년 일관되게 추구해 온 통일혁명이란 대남정책의 원칙과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가당치 않은 자세를 살펴보았다. 북한의 대남정책은 당초에는 스탈린의 한반도 사회주의화 계획의 토대로서의 북한의 민주(인민민주주의)기지노선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그것은 바로 김일성에게는 자기의 절대 권력 추구에 꼭 들어맞는 노선이기도 했다. '막강한 미제의 비호 밑에서 호시탐탐이 북진을 노리는 남한'이란 설정은 김일성에게는 개인 독재를 굳혀 가는 데 있어서 절호의 논리였고 민족의 태양으로 추앙 받기를 열망했던 그로서는 만사를 제치고 조국통일 위업부터 성취코자 해서 합법 반합법 비합법 및 사상적 폭력적 온갖 노력을 다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노력이었다 하겠다. 그 '원대한' 포부의 실현을 위해 세습체제가 필요했고 후계자 김정일은 또 그 아비의 유훈을 그대로 총노선으로 삼아 통일혁명을 모든 과업의 첫 자리에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을 놓고 우리 정부의 대응은 많은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포용정책으로 해서 북한이 시장경제로 나갈 헌법개정을 했다고 까지 말할 때 국민은 포용논자들의 인식 수준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아본즉 학력과 경력이 모두 출중한 사람들이다. 무식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의도적인가, 아니면 더 큰 전략을 위한 전술상의 페인트 모션인가, 또 아니면 심정적으로 북한을 긍정적으로만 보게 되는 그 무슨 내력이라도 간직했단 말인가. 요새 사회의 구석구석에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정부 주변에 북의 오열이 박혀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소리까지 나올 판이다.

물론 포용논자들도 안보를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의례적인 말투로 들릴 뿐이다. 잠수정의 침입에 대해서도 안보상의 대응이 국민의 신뢰를 유발하지 못했다. 일선에 나가 군을 향해 국방에만 주력하라고 원칙론적인 훈시는 썩 잘하지만 남조선혁명의 현장인 후방에서의 지하당의 괄목할 준동에 대한 문제의식은 볼 수 없다. 북한이 변한다고 보고 있으니까 대북경각심이라던가 국민의 정신무장 같은 것에 대해선 무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북한추종주의 세력의 진출이 현저하다. 진짜 안보를 말한다면 국민의 정신무장이 첫째이다. 옛부터 衆心成城이라 했고 失衆卽失國이라 했다. 남조선혁명의 기초 이론인 反韓史觀이 그렇게도 판치는데도 역대정권이 무감각하더니 현정권 역시 무감각이다. 이 무감각 위에서의 정치개혁이라면 그것은 이 나라 50여년의 역사를 부인하는 개혁으로 될 공산이 크다.

과거에 서독은 동방정책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Radikalenerlass라고 하는 과격파에 대한 특별 행정 훈령을 실시했다. 신나치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등의 과격분자를 일절 공직에 채용하지 않는 조치이다. 이들은 자유민주체제를 반대하는 세력이다. 서독 기본법은 자유민주주의를 천명하고 있으므로 이에 반대하는 자들을 공직 담당에서 배제함은 당연하다 해서

서독 대법원은 그 합헌성을 지지했다.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 후인 1992년에 이르러서 비로소 이 훈령은 철회되었다. 족히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일일 것이다. 타산지석을 찾는다면 굳이 서독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이웃인 북한에도 있다. 그들은 형법으로 당의 정책을 반대하는 자는 극형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통일혁명 노선을 반대하는 자는 죽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한은 통일혁명을 지지하는 자를 공직에서 배제하는 정도는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도덕적 용기의 유무이다. 북한이 시종일관 그네들의 원칙을 견지한다면 남한은 남한대로의 원칙을 내세울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남한이 이러한 도덕적 용기를 굽히지 아니할 때 북한은 비로소 남조선 혁명의 가당치 않음에 눈뜨고 타협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날처럼 저쪽이 거듭 요구하면 이쪽이 결과적으로 들어주는 조치를 취한다면 저쪽은 자기들 요구의 관철이라 보고 점점 고자세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 결정적인 오류의 실례가 1992년의 남북합의서의 전문에 나타나 있다. 그 서두에 1972년의 7·4공동성명 때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한 대목이 있는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남한은 북한의 해석에 동의치 않는다 함을 상대방에게 주지시키는 조치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 못했으므로 북한은 자기들 원칙에 남한이 동의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사사건건 시비인 것이다.

남북합의서 전문에는 큰 오류가 또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이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 지향 과정의 잠정적 특수관계라 한 대목이다. 엄연히 독립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인 것이 세인 주지의 역사적 사실이거늘 이를 일부러 아니라고 규정한다는 것은 있지도 아니하는 현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허구의 공동인식' 위에 성립하는 약속이 현실성을 띌 수 없을 것은 뻔한 일이다. 통일 염원의 표현이라 할지 몰라도 진정 통일을 염원한다면 주어진 현실에 대한 '인식의 공유'부터 확인해야 하는 법이지 그렇지 못했으므로 이 대목은 '하나의 조선'과 '식민지 남반부'와의 특수관계라는 북한측 주장의 꼬투리로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포용논자들은 남북합의서를 놓고 북한의 적화통일노선의 포기라느니 평화공존시대의 시작이라느니 하면서 교류와 정상회담의 실현을 기대하기에 바빴었다. 그러나 북한은 기본합의서가 조인된 지 열흘만에 저들 제6기 제19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남북합의서는 김일성의 통일노선을 관철한 획기적 성과이며 이로써 미군은 나가야 하고 연방제 통일을 위한 남북 정치협상회의가 소집되어야 하며 이런 것을 떠난 교류우선론 같은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못박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포용논자들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남북합의서의 실천에 대한 기대를 북한에 걸고 있다. 도시 이 사람들은 북한이 레닌 학설의 견결한 신봉자라 함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레닌은 확언했다.

"적과의 약속을 지키는 자는 혁명을 포기하는 자"라고. 북쪽의 주장을 따르지 않는 한 남쪽은 북의 적인 것이다. 적인 남쪽과의 약속인데도 의당 지킬 것이라는 전제하에 대북정책을 운위하는 포용논자들을 볼 때 국민의 회의와 불안은 점점 더 커진다. 이들은 미일에 대해서는 대북 수교를 열심히 설교하면서도 북에 대해서는 미일의 선결 요구에 유의하라는 설교는 못한다. 정책이 있으면 정책 집행의 제 수단이 있게 마련이다. 이를 북한은 공작이란 말로 표현한다. 대남정책에 따라 대남공작이 전개된다. 우리의 역대 정권은 북한의 대남공작에 번롱 당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지면 관계로 설명은 약하거니와 포용논자들이 주도하는 오늘의 대북정책도 실은 북쪽의 대남공작에 얹혀 있음이 크게 보인다. 이 잘못된 노선을 어떻게 광정할 것인가. 첫째는 우리 국민이 과잉 자아 의식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국력을 넘어선 자기 역할의 주장은 실패의 원인이다. 이것이 남쪽의 포용정책에 잘 나타나 있다. Engagement Policy를 관여정책이라 부르지 않고 굳이 포용정책이라고 내세우는 데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면서도 당사자 능력이 태부족인 데서 오는 무력감을 애써 감추고 마치 주역인척 행세해 보려는 과잉 자아 의식(이것은 일종의 허영이다)이 그곳엔 숨어 있는 것이다. 포용이란 말은 '상대를 아량 있고 너그럽게 감싸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남쪽이 북쪽을 너그럽게 감싸 줄 만한 힘이 있는가. 핵에 있어서 미사일에 있어서 잠수정 공작에 있어서 지하당 공작에 있어서 그럴 만한 힘이 있는가. 용어를 만들어 내도 분수가 있어야지 상호협력정책 정도이면 될 것을 공연히 큰 보자기를 펼치는 용어 장난을 할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한미동맹관계나 잘 챙기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한미관계에서는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에 따끔한 충고를 제기할 줄 알아야 한다. 클린턴은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인권외교도 북한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치고 약간의 물자를 제공하면서 김정일의 마음의 변화를 기대한다. 전혀 비현실적인 대응이다. 김정일은 이해관계 상대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상당한 돈을 제공하여 매수하기를 잘 한다. 심지어 수년 전에는 러시아의 야당 당수 지리노프스키에게 백만 불의 자금 제공을 시도한 일도 있었다. 어떤 호사가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김정일은 클린턴에게 상당한 액수의 자금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억측까지 내놓는다. 하찮은 남쪽 공작원에게도 2백만 불이란 거액을 보냈던 지난날의 실적에서 그 근거를 엿본다. 하기야 지난 선거 때 클린턴은 중국으로부터 다액의 자금을 받았다 해서 말썽을 빚고 있다. 이 사람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집무시간에 계집아이하고 놀아날 정도의 위인이니까, 그런 대통령인데도 물러나게 못하는 미국의 문화니까 미국의 도덕적 타락은 冬天의 孤月격이다.

그 미국에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맡겨야 하는 한국의 신세는 화창한 봄날씨에 슬피 우는 가을 벌레 소리와도 같다. 클린턴은 지금 핵탄두의 소형화 기술 'W 88'을 비롯하여 중성자 폭탄의 설계기술 등을 중국에 도둑맞고 심각한 의혹 속에 빠져 있다. 미국의 격주간지 'The New American' 2월 15일호는 'Red Star Over The White House'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낸 일이 있다. 유명한 왕년의 에드가·스노의 'Red Star Over The China'란 책제목을 본뜬 이 기사는 대통령 관저 위에 중국의 오성홍기가 나부낄 정도로 클린턴 행정부의 대중정책은 친중적이라고 비판한다. 중국으로부터 불법적인 정치헌금을 받고 그 대가로 중국을 위해 미국의 안보를 그르치는 정책결정을 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위의 표현을 원용하여 'Red Flag Over The White House'란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Red Flag는 김정일의 '붉은 기 사상'의 '붉은 기'이다. 그러나 아무리 국민이 이러한 절박한 문제의식을 가졌다 해도 국민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다. 정부가 국민과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하는데 아무도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하질 않는다. 우리 나라는 본시 관존민비 사상이 뿌리 깊어서 권력의 권위주의가 심하다. 밑으로 내리 먹이는 권위주의 뿐 아니라 밑에서 위로 올려 바치는 '권위주의' 또한 일상화되어 있다. 알아서 먼저 기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꺼내니 모든 문제의 해결이 거기에 달려 있다는 듯이 만백성이 정상회담의 대합창이었다. 또 어느 대통령이 세계화를 꺼내니 만 백성이 세계화의 대합창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또 어느 대통령이 햇볕론을 꺼내니 만 백성이 대북비판을 사갈시한다. 왕년의 노 대통령이 그래서 실수했듯이 지금도 나라에서는 남쪽이 스스로 일방적으로 적대감정을 버리고 화해와 협력 관계를 추구해 나가면 길이 트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Red Flag Over The White House'에 못지 않게 'Red Flag Over The Blue House'란 현상이 있다 해도 지나친 경고는 아닐 것이다.

5. 一口二言은 二父之子다.

국민의 답답한 걱정을 권력의 정상으로 상달시킬 방법이 막연하다. 대통령제라고 하는 정부형태가 우리 사회의 체질인 상하향 권위주의와 복합되어 헌법상의 독재자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의 마음먹기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로 흔들릴 수 있는 것이 한국이다. 민의가 국운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통심(대통령의 마음)이 좌우한다. 권력이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년에 김일성은 박 대통령의 권력 독점을 도와 그 박 통을 통해 남한을 요리해 볼 요량으로 유신체제의 수립을 부추기기까지 했던 것이다. 지금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똑같은 계책을 부리려고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무엇이든지 독점이란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권력의 독점도 자본의 독점도 시장의 독점도 지식의 독점도 과학 기술의 독점도 다 좋지 않다. 그것은 반진보이고 반정의이다. 나누어 가지는 것 즉 분점이 좋다. 공동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권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인 독점보다는 권력의 공동관리 즉 집단지도제가 나은 것이다. 그래야 민의의 상달 통로가 넓어져서 위기예측능력과 따라서는 위기관리능력이 강건하게 될 수 있다. 내각책임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현정부의 대 국민 약속이 내각책임제로 정부형태를 바꾸겠다고 한 것이다. 1999년 내로 실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부 안팎에서 내각제 개헌으로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민회의 측이 대약속을 외면하려는눈치인 것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동정부 수립과 동시에 '국무총리의 지위와 권한행사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키로 약속했다.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또 그들은 '공동정부운영협의회'를 설치 운영하겠다고도 했다.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또 그들은 공동정부 수립과 동시에 '내각책임제개헌추진위원회'를 설치 운영한다고 약속했다. 1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래 가지고서야 연내 개헌 약속은 또 하나의 대 국민 속임수 아니겠는가.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一口二言은 二父之子라 했다. 한 입으로 이 소리 저 소리하는 자는 이 남자 저 남자를 상대하는 계집이 낳은 새끼란 뜻인데 부모를 욕뵈는 욕 중에서는 가장 고양한 욕이다. 지금 우리 정부와 여당 지도자들은 이 무시무시한 욕의 대상으로 되어 가고 있다. 국민 앞에 서슬이 퍼렇게 내각제 약속을 해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으면 一口二言은 二父之子란 정도가 아니라 二父之子이니 一口二言도 예사롭다는 말까지 나올 판이다. 정치의 세계에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데도 배신의 고함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는 대체로 두 가지 상황이 있다고들 한다. 하나는 약점을 잡혀서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할 때이고 또 하나는 거액의 돈을 얻어먹고 약속을 따질 힘이 생기지 않을 때란 것이다. 민주헌정 50년에 이 나라의 정치 수준은 고작 이 정도밖에 아니되는 것일까. 하기야 이 나라엔 그새 참된 민주세력이 자라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다. 지난날에 이 나라엔 두 종류의 소위 민주세력이 있었다. 하나는 이른바 민주투사라 일컫던 사람들의 세력이다.

그러나 그 민주투사라 일컬었던 사람들은 권력 획득의 방법이 선거밖에 없으므로 민주를 요구했던 것이지 정말 민주를 위해 민주를 요구했던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의 집권후 행태가 그것을 잘 말해 준다. 다른 하나의 민주세력은 민중민주주의 즉 인민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세력이다. 이들은 진정한 민주세력이 못된다. 이들의 본심은 노동계급의 독재에 있다. 인민민주주의 자체가 원 말은 '인민민주주의 독재'이다. 북한 헌법 제12조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이비 민주세력이 대통령제를 집요하게 유지하려 하고 개혁이란 미명하에 권력 엘리트로의 진출을 다그치고 있으며 대북 유화정책에 정성을 쏟고 있다. 북한은 이들과 협공작전으로 정부의 좌경화 유도에 진력하고 있다. 민주의 탈을 쓴 이 계급독재세력은 내년의 총선거에 생애의 명운을 걸려고 한다. 국회의 과반수 의석 확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참이다. 본시 그들은 70년대 80년대를 통해 단련된 혁명세력이며, 혁명이란 과격한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변혁이란 용어를 쓰는 세련된 세력으로서 혁명가답게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세력이다. 이래저래 내각제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 문제는 정부나 여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북정책이 엉뚱한 데로 흐르고 있는데다가 내각제 약속이 국민 기만으로 나가고 있는데도 야당은 방향감지 능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대통령제하에서 여당 정치인들이 실어증에 걸리는 것은 우리 정치의 상례였지만 야당 정치인들마저 실어증에 걸린다는 것은 웬 일일까. 무지가 무언을 낳는 것이다. 더더구나 야당은 어제의 여당으로서 대통령 권력 독점의 폐단을 몸소 체험했던 사람들이다. 그래도 내각제로 선득 나서지 못하는 것은 전번 대선에서 얻은 당선자와의 39만이란 근소한 득표차 때문일 것이다. 다음에는 이길 공산이 크다고 보아 대통령제의 미련을 끊지 못하는 것이다. 선거에 이골이 난 사람들도 욕심 앞에는 판단이 헛갈리는 모양이다. 그때의 득표는 후보 자신의 인기나 당의 힘으로 얻어진 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반김대중 표가 그리로 던져진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이회창씨나 한나라당이 차기에 군침을 삼킨다면 내년 봄에 큰 봉변을 당하고 말 것이다. 일찌감치 권력 독점 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돌리는 일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여·야당 뿐 아니라 온 국민이 정부형태의 변혁이야말로 참된 정치개혁의 진수라 함에 눈떠야 할 때이다. 권력으로 향한 민의의 상달이 보다 더 자유로운 정부형태가 아니고서는 포용논자들의 인식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닌 대북정책의 궤도 수정은 어렵다. 미찌는 한이 있더라도 꾹 참고 자꾸 접촉하다 보면 냉전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논리에 국민이 현혹되어서는 아니된다. 이에 있어서 국민이 기억해야 할 것은 북한의 조국통일 3대 원칙에서의 조국통일 5대 방침의 두 번째가 '다방면적 합작과 교류'인데 여기서의 합작과 교류의 원칙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합작과 교류는 "국가간의 그것이어서도 아니되며 두 제도간의 공존을 위한 것이어서도 아니되며 오로지 남쪽 인민의 북쪽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풀며 김일성의 주체사상의 정당성과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인식시키며 남쪽 정권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켜 모두로 하여금 김일성의 교시대로 움직이게끔 하는 그러한 합작과 교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합작 교류에서의 북한의 대남정책의 요지부동의 원칙이다. 물론 북한은 남한 당국과도 접촉을 시도할 것이다. 과거 50년 역사를 두고 지금처럼 북한에게 고마운 남한 정부는 일찍이 없었다. 그 고마운 상태를 지속시키고 그것을 더욱 강화 발전시켜 김정일 체제가 기사회생되기까지 남한 정부가 여론에 밀리거나 국제적인 제동에 걸리지 않도록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다는 전술에서 당국간 접촉 대화를 하자 할 것이다.

또 무슨 이산가족의 제한된 상봉이니 편지 거래 따위도 공작할 것이다. 그래 봤자 돈이나 떼이고 허풍만 세고 실속은 없는 거래일 것이고 앞에서 지적한 합작 교류의 원칙에 걸려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행사로 되기 십상이다. 이때 북한은 聲東擊西戰術로 미일과의 관계 개선에 진력할 것이고 진전이 있으면 남한과는 다시 소원해질 것이다. '식민지 남한'은 해방의 대상이지 동등 거래의 대상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러나 간에 남한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북한의 핵개발이나 미사일 개발을 저지할 힘은 없다. 미국 역시 역부족이다. 북한 방방곡곡을 사찰할 권능이 미국에도 없고 유엔에도 없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본시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 핵동결과 신포 경수로 지원이 결정되었을 때 미국은 3년 아니면 10년이면 북한이 망한다고 보고 결국은 남한이 북한을 접수할 것이란 전제하에 서 있었다. 이 정보가 북한에 다 들어갔다. 북한은 필사적으로 살아 남아야 하겠고 그러기 위해서 남한은 없애버려야 했다. 3백만 아사자 속출이란 끔찍한 대참변에도 아랑곳없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있는 힘을 다 쏟는 저들이다. 페리 보고서가 어떻게 나오든 북한의 의지와 결심에는 변동이 없다.

페리가 평양 갔을 때의 김정일의 거동만 봐도 저들의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정부로 하여금 친절하게 페리를 접대시켜 놓고는 자기는 군 최고 지휘부를 대동하고 최전방 부대의 시찰에 나가 있었다. 先軍領導政治의 북한에서 미 대통령 특사 페리가 갔을 때 평양에는 군의 수뇌부가 한 사람도 없었다. 북한의 첫째 과업이 조국통일이라 하는 시그널의 발신인 것이다. 이를 지지하겠다면 몰라도 그렇지 아니하다면 페리도 일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핵과 미사일이 초미의 관심사'이나 조선은 '통일혁명이 초미의 관심사'란 뜻이다. 시찰한 부대도 6.25 때 서울 공격에 공이 컸던 부대라 하는 데서 저들 거동의 심장한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지난 6월 1일에 조선중앙방송은 새벽 7시부터 40분간에 걸쳐 당 기관지(紙) 로동신문과 기관지(誌) 근로자의 공동논설을 발표했다.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적 침투를 배격하자'가 그 제목이다. 페리가 전달한 미국의 제의가 결국은 협력이다 교류다 하는 미명하에 썩은 자본주의의 황색 바람을 불어넣자는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나온 논설인 것이다. 사상정치 분야에서는 공개성과 다원주의를 절대 용서해서는 아니되며 경제 분야에서는 개혁과 개방에 환상을 가져서는 아니되며 문학예술 분야에서는 예술지상주의와 서양식 창작의 자유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등으로 이어지는 이 논설은 50년 시종여일한 북한의 본성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미국은 이제 늦게나마 북한의 본성을 제발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남한 역시 이상한 공작루트에 의지하지 말고 백주에 당당하게 발표되는 주장들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도달할 고지가 보일 것이다. 그것이 북한의 정권교체이다. 이것 없이 핵도 미사일도 해결되지 않으며 이것 없이 북한 동포의 아사지경도 해결되지 않으며 이것 없이 남북 평화공존도 동북아의 평화도 공염불이다. 국민은 또 정부형태의 변경과 대북노선의 궤도 수정이란 두 가지 강령을 중심으로 삼아 새로운 그리고도 진정한 범민주세력의 형성에로 또 신의 있는 사회의 실현에로 이바지해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북한의 '남조선 혁명' 기도를 분쇄하고 그럼으로써 저들이 저들의 손 안에서 논다고 장담하는 우리 정부를 우리 손 안으로 확고히 지켜내며 우리 손으로 강건하게 키워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