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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제목 헌변 성명서(2014년 10월 23일)-탈북자에 대한 미란다원칙의 적용에 대하여(헌변회장 이종순 변호사)
등록일 2014-10-23 조회수 2192

탈북자에 대한 미란다원칙의 적용에 대하여

1. 간첩사건에 대한 무죄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14. 9. 5. 간첩사건에서 증거법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한 일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검사가 작성한 피고인의 자백조서가 미란다원칙을 위배했고, 피고인이 구치소에서 작성한 반성문의 신빙성이 없다하여 그 증거능력을 배척했다. 피고인은 국정원에서 12차례, 검찰에서 8회의 신문을 받으면서 한 번도 빠짐없이 자신이 북한에서 직파한 간첩이라는 사실을 자백했다고 한다. 또 그는 같은 취지의 반성문, 진술서 등을 자필로 작성하여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모든 증거를 배척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단계에서는 국선변호인이 선임되어 있었고, 피고인은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이나 효력에 대하여 전혀 이의를 하지 않다가 기소 후 사선변호인을 선임한 후부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모든 증거의 효력을 부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 검찰의 피의자신문 과정

① 미란다원칙이라 함은 수사기관은 피의자신문을 개시하기 전에 먼저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한 진술내용은 추후 유죄판결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 신문을 받을 때 변호인을 참여케 하여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등을 고지해야 하고(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이 절차를 위배한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하여는 증거능력을 배제한다는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피의자로부터 무리하게 자백을 받기 위하여 자행되는 고문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② 이 사건 피고인은 국정원에서 여러 차례 피의자신문을 받아 미란다원칙의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검사의 제1회 피의자신문에서도 검사로부터 진술거부권을 고지받고 거부권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답변했으며, 또 검사로부터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받기 시작하자 그냥 진행하자는 취지의 답변을 하여, 위 원칙 중 그 밖의 사항에 관한 고지와 답변절차를 생략한 채 전체적인 피의자신문절차를 마쳤다. 조서 첫머리의 미란다원칙 고지에 관한 부분 중 잔여부분은 조서작성 완료 후에 피의자가 기재했음이 영상녹화되어 있다고 한다. 위 피고인은 위 조서작성 후 이를 제시받고 그 중 자신의 답변내용을 수 십 차례 정정한 후 서명날인과 간인을 하였음이 조서 자체에도 나타나 있다.

③ 검사는 제2회 피의자신문 때부터는 영상녹화를 하지 않았고, 위와 같은 이유로 미란다 원칙을 구두로 고지를 하지 않으며, 조서 작성한 후에 그 첫머리의 미란다원칙 고지에 관한 부분에 피의자의 답변내용을 기재하였다고 한다.

3. 법원의 무죄이유

① 제1심 법원은 위와 같이 미란다 원칙의 고지가 중도에서 중단되어 완벽하지 않음을 들어서 검사의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제했고, 제2회 이후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해서는 그 기재의 피고인 진술내용이 피고인의 실제 진술내용대로 작성된 것임을 인정할 영상녹화물 등 증거가 없어서 임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시 증거능력을 배척했다.

② 또 피고인이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 등은 그가 탈북자로서 국내법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데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마저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하여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여지므로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역시 증거능력을 배척했다.

③ 제1심 법원은 이런 자료들을 전부 배척한 후 그 밖의 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4. 판결이유에 대한 의문

① 인권보장을 위하여 제정한 형사소송법 상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는 판결이유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란다 원칙의 적용에 관하여는 인권보장이라는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할지 또는 눈을 감고 기계적으로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는 것이다.

② 미란다원칙은 피의자의 능동적 제의로도 적용을 제한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리라고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 수사검사가 제1회 피의자신문을 시작하기 전에 위와 같이 미란다원칙 중 일부의 고지를 중단한 것은 피의자의 능동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었음이 영상녹화물로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위 중단 조치가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했다고 기계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제기된다.

③ 또 검사의 제2회부터 제8회까지의 피의자신문조서가 영상녹화물이 없다는 이유로 일률적으로 임의성을 부인하는 것도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와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이번 판결은 영상녹화를 하지 아니한 모든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제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더구나 피고인이 자신의 진술내용을 일일이 검토하여 조서를 수정한 흔적이 명백한 것인데도 진술과 다른 조서가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결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피고인이 자신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임의성을 부인할 경우 통상적으로는 수사에 참여한 사무관의 증언으로 임의성을 인정하고 있다.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임의성 있는 자백을 했고 피의자신문조서에는 그 때마다 피의자의 진술내용을 그대로 기재했다는 참여사무관의 증언을 받더라도 증거판단을 위와 같이 엄격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증언을 믿을지 여부가 불투명한 것이다.

④ 나아가 탈북자가 구치소에서 변호인의 조력이나 참여가 없는 상태에서 작성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이 스스로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한 반성문, 진술서 등의 임의성을 부인할 사유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항소심에서는 구치소의 영상녹화물 또는 교도관의 증언을 통하여 피고인이 어떤 분위기 하에서 이들 서류를 적성한 것인지를 밝히는 것도 그 진술서 등의 특신상태를 증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⑤ 혹자는 이러한 판결이유는 결과적으로 형사소송법 적용상 국내인보다 간첩이나 외국인을 더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피고인이 북한의 직파간첩 혐의를 받는 탈북자라 하여 내국인 보다 법률상 우대한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201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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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이 종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