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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열린우리 “뇌사여당 미래없다” 스스로 인정
주인 없는 의장실
5·31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사퇴한 뒤 후임 지도체제를 확정짓지 못하면서 서울 영등포 당사의 의장실이 주인 없는 빈자리로 남아 있다. 김경제 기자
열린우리당의 표류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정동영 의장의 사퇴에 따라 5일 국회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후임 지도체제를 논의하기로 했던 일정이 7일로 연기된 가운데 당 일각에선 “당 해체도 검토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온다. 여기에 선거 참패 책임론을 놓고 청와대와 당 간의 갈등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당 해체 검토’ 주장 왜?=부산 출신으로 친노(친 노무현 대통령) 직계인 조경태 의원은 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아주 불행한 일이지만 지방선거 결과를 봤을 때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당 해체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조 의원의 주장에 대해 “동감한다”며 “열린우리당은 이미 ‘정치적 뇌사 상태’에 빠졌고 어떤 기치를 내걸어도 국민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능한 여당’으로 낙인찍혀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이 지방선거 참패로 증명된 만큼 당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해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도권의 또 다른 의원은 “국민들이 죽으라고 했는데 죽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고, 호남의 초선 의원은 “경고가 아니라 퇴장하라는 레드카드”라고 선거 결과를 분석했다.
그러나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생각이 제각각이다. 일부에선 민주당 등과의 통합을 위해 당의 해체도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반면 일부에서는 “그런 통합을 하려면 당을 나가라”는 태도다. 그러다 보니 결국 살 길은 ‘각자도생(各自圖生)’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책기조 변경 놓고 당청 갈등 조짐=열린우리당은 2일 그간 정부여당이 추진해 온 몇 가지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선거 패배 이후 처음으로 가진 원내대책회의에서였다.
노웅래 원내부대표는 브리핑에서 “선거 결과 드러난 엄중한 국민의 뜻을 겸허한 마음으로 무겁게 새기겠다”며 “부동산과 세금 문제와 관련해 국회 차원에서 시정 개선할 게 있다면 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선거 참패 원인 중 하나가 참여정부의 부동산과 조세정책에 대한 민심이반에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다음 주 당 후임 지도체제가 정비되는 대로 열릴 당정협의에서는 1가구 1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과세를 완화하고, 거래세와 양도소득세를 낮추는 등 부동산 조세정책이 우선 검토될 것으로 전해졌다.
노 원내부대표는 “큰 틀의 정책기조가 바뀌는 차원의 재검토는 결코 아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당청 간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노 대통령은 1일에 이어 2일에도 지금의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거듭 밝혔기 때문이다.
당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당 차원의 입장을 정리해 내놓자는 주장도 나온다. 한 발 더 나아가 노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거나 당정 간 완전 분리를 선언해야 한다는 의원들도 있어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청와대는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태호 대변인은 “개별 의원의 발언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잘랐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은 선거기간 당에 부담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당이 이번 선거과정에서 공천과 캠페인 전략에서 많은 패착을 둔 책임을 덮으려는 것 아니냐”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청와대는 열린우리당의 새 지도부가 7일 구성되면 노 대통령과의 후속 회동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고건발 정계개편 구상은=고 전 총리는 다음 달 중 ‘희망한국국민연대’란 이름의 단체를 설립해 중도실용주의 개혁세력의 폭넓은 연대와 통합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7·26 재·보선 직후 발기인 총회를 열고, 비정치인을 주축으로 하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 기존 정당의 정계개편 논의 추이를 지켜봐 가면서 현역 정치인들을 끌어안겠다는 복안이다. 지방선거가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막을 내리면서 정계개편의 중심이 고 전 총리로 기울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 전 총리의 ‘결단’은 어수선한 열린우리당 상황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보수 성향의 ‘안정적개혁모임(안개모)’ 의원을 중심으로 한 30여 명이 벌써부터 고 전 총리를 중심으로 당을 추슬러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신당이 아닌 연대라는 형식의 기구를 띄운 것도 이들이 당적을 유지한 상태에서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탈당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고 전 총리 쪽에 참여가 가능하다”고 했다. 안개모 소속의 안영근 의원도 “고 전 총리가 밝힌 단체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주도적으로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탈당하지 않고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은 ‘단기필마(單騎匹馬)’에 가까운 ‘고건호(號)’에 올라탈 의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