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야당과 시민단체 일각은 되레 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을 요구했었다. 또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안보태세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이유로 인해 관가에
선 개각 발표 직전까지 1∼2명이 바뀔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나 지난달 말 단행된 청와대 인사에서 외교안보팀은 모두 유임된 데 이어 8일 개각에서도 외교통상·통일·국방 장관은 유임돼 정부와 청와대의 외교·안보 라인은 앞으로도 일관성을 유지하게 됐다.
◆대북정책의 일관성 강조
세 장관의 유임은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기조를 당분간 계속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북한이 천안함 사건 등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대남 강경책을 바꿀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얘기다.
북한과 야당은 최근까지 세 장관을 남북관계를 파탄 냈다고 비난수위를 높여왔다. 따라서 ‘교체카드’가 자칫 북한에 대북정책을 바꾼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미국이 천안함 사건에 따른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등의 추가조치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대북조치를 완화할 여지는 적다.
정부는 앞으로 북한에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 등을 계속 촉구하고 지난 5월24일 발표한 교역중단과 서해 훈련 등의 군사적·비군사적 제재를 흔들림없이 이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북한이 먼저 비핵화에 성의를 보여야만 경제지원과 대화에 나선다는 ‘비핵개방 3000’의 원칙도 변함없이 내세우는 한편, 대북정책에서 미국과 굳건한 공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 장관의 천안함 처리에 대한 평가 긍정적
유명환 장관은 ‘롱 런’길에 확실히 들어섰다.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임명된 ’장수장관’ 가운데 유임된 사람은 유 장관과 이만의 환경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세 사람 뿐이다.
유 장관의 재임기간은 2년6개월로, 최소한 연말까지 개각요인이 없다고 본다면 3년 이상의 재임도 가능하다.
역대 35명의 외교장관 가운데 3년 이상 재직한 사람은 6명뿐이다. 3대 변영태(4년3개월), 4대 조정환(3년), 14대 최규하(4년), 15대 김용식(3년6개월), 16대 김동조(3년), 17대 박동진(4년9개월) 장관이다. 1980년 9월 박동진 장관이 물러난 이후 30년간 3년 이상 재직한 외교장관은 아직 없다. 2000년대 들어서는 33대 반기문 외교장관이 2년10개월로 가장 오랜 기간 재임했다.
유 장관의 ‘장수(長壽) 비결’은 외교라는 복잡다기한 영역 속에서 ‘중심’을 잡고 안정감 있게 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펴나가는 능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핵과 천안함 사건 등 민감한 외교적 난제를 맞아 현 정부의 외교노선을 일관성 있게 견지하면서도 상황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나가는 경륜과 외교적 숙련도가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 흐름 속에서 사상 첫 한·미 ‘2+2’(외교·국방장관) 회의를 통해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도 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천안함 후속대응 차원에서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도록 국제사회를 향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에서 유 장관을 교체할 경우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11월의 G20(주요 20개국) 성공개최와 대북 금융제재, 대이란 제재 등 앞으로 산적해있는 현안들을 풀어가는 데 있어 유 장관의 역할이 긴요한 점도 유임의 배경이 됐다.
물론 유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 파문, 독도표기 파문 등으로 숱한 위기를 겪어왔다. 최근에는 “친북 젊은이는 차라리 북한에 가라”는 베트남 하노이 발언으로 인해 야당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천안함 파고’ 넘은 김 국방
김태영 국방장관이 유임된 것은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땅에 떨어진 군의 사기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김 장관이 천안함 후속조치를 무리 없이 추진해왔고, 전시작전권 전환시기 연기 등 현안을 챙길 적임자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자는 “김 장관은 천안함 이후 흐트러진 군을 수습하고 대북 군사적 조치 등 후속 대책을 무리 없이 수행했다”면서 “올해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앞두고 김 장관이 전작권 전환시기 연기 등의 현안을 연속성 있게 챙길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장관도 지난 5월 초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사퇴 의사를 표명한 바 있지만, 당시 교체되지 않았다. 군 내부에선 이미 이상의 전 합참의장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역해, 장관까지 교체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했다.
11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외교·통일라인이 이번 개각에서 자리를 지킨 것도 김 장관의 유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군 당국이 천안함 징계위원회 개최를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에서 김 장관에 대한 유임이 결정돼, 천안함 사건과 사후대처에 책임이 있는 군 고위 간부에 대한 징계가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감사원이 지난 6월10일 천안함 감사를 통해 군 고위 간부 25명에 대한 징계조치 등을 김태영 장관에게 통보했지만 아직 징계위원회는 열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