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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수사 발언 부적절… 등 뒤에서 총 쏘지 마시오”
현직검사, 千법무에 직격탄
“불기소한 ‘삼성떡값’ 사건 장관이 사견 언급해서야…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해야”
▲ 금태섭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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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부 도청 X파일, 천정배 취중발언
‘장관님! 등 뒤에서 총질하지 마세요.’ 지난 12일 밤 법무부 출입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X도 모르는 놈들 서너 명” 발언으로 언론의 회초리를 맞은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이 이번에는 직속 부하로부터 날이 선 비판을 받았다. 한 현직 검사가 천 장관을 향해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에는 안기부 도청 X파일 관련 발언이 표적이 됐다.
이날 천 장관은 보수 성향의 논객에 대한 원색적 비판에 앞서, 안기부 도청 X파일 사건에 대한 소회를 말했다. “(삼성의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검사들에 대해)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한 것보다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느냐”, “그러나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200만~300만원이 현금으로 오간 것을 어떻게 밝혀내느냐”는 내용이었다.
▲ 천정배 법무부 장관
이에 대해 대검찰청 기획조정연구관인 금태섭(琴泰燮·39) 검사는 17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소위 X파일 수사에 관한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올렸다. A4용지로 6장, 200자 원고지로 38.4장 분량의 장문(長文)이다.
그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법률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글을 시작했다.
그는 “천 장관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기자들에게 발언한 것은 ‘판사는 판결로,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법조 윤리 규범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그 예로 1967년 ‘김근하군 유괴살인 사건’을 예로 들었다. 검찰이 기소한 사람들에게 무죄 판결이 난 사건이다. 당시 주임검사는 “재판 결과야 어떻든 피고인들이 진범임에 틀림없다”고 발언했고, 언론은 이 말을 대서특필했다. 금 검사는 “당시 검사의 발언은 피고인들에게는 유죄 확정보다도 고통스러우며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꼬리표”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국민적 관심사인 황우석 교수 사건 수사에 대해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주변 사람들이 많지만, 혹시라도 그 사건에 대해 오해하거나 선입견을 갖게 될까 봐 절대로 내 나름의 생각이 표정에라도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물며 다른 사람도 아닌 법무부 장관이 기소도 하지 않은 의혹 대상자들에 대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피해는 회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금 검사는 “천 장관의 발언은 (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들이 돈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기도 어렵다는 말도 된다”면서, “(이런 식으로) 언론을 상대로 혐의를 암시하는 말을 하는 것은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일갈했다.
금 검사는 또 불법을 근절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불법)도청의 산물인 X파일 내용을 공공연하게 전파, 확인해 준 것도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단 한 사람의 인권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그 침해를 막는 것이야말로 법무부와 검찰의 존재 이유”라고 글을 맺었다.
금 검사의 글에 대해 일선의 반응은 다양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평검사는 “증거와 법에 죽고 사는 검사로서 인사철을 앞두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X파일 사건에 대해 장관이 내린 정치적 해석을 논리적으로 반박한 것은 용기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검의 한 검사는 “장관으로서 X파일 수사 결과를 납득하기 힘든 국민의 법 감정도 엄연히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금 검사는 사시 34회로, 서울 동부지검과 인천지검 등을 거쳐 대검 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다.
소위 X 파일 수사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발언에 대한 단상
검사 금 태 섭
1. 들어가는 말
1월 13일자 언론에는 법무부장관께서 전날 밤 법무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위 X 파일 수사와 관련하여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수사결과가 나왔지만 국민들의 99.9%는 검사들이 떡값을 먹은 것으로 다 알고 있지 않느냐”,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검사들에 대해) “두 사람이 대화한 것을 녹음했는데 그것보다 정확한 증거가 어디 있겠느냐”, “그러나 준 사람도 아니라고 하고 받은 사람도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200~300만원이 현금으로 오간 것을 어떻게 밝혀내서 처벌할 수 있느냐”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위와 같은 말씀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법률가로서의 의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위의 발언은 두 가지 점에서 중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첫째는 위 발언이 어떠한 사건에 대해 권한을 가진 법률가는 그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을 외부에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법조윤리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것이다. 흔히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이 윤리 규범을 가리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위 발언은 국가기관이 불법적인 도청을 통해서 수집한 정보의 내용을 공공연하게 전파하는(따라서 이를 확인해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차례로 본다.
2. 사건에 관한 법무부장관의 개인적 의견표명에 대한 문제제기
지금은 세간의 기억에서 많이 잊혀졌지만, 1967년 발생했던 김근하군 유괴살인사건은 그 사건 자체는 물론 이후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많은 화제를 낳았던 유명한 사건이다. 사건 당일에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자를 주범으로 기소하여 무죄판결을 받은, 가히 검찰의 수치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 사건의 내용과 문제점은 조갑제의 역저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조갑제씨는 자신의 저서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에 대하여 “재판 결과야 어떻든 피고인들이 진범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전수사력을 동원한다 해도 다른 진범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피고인들의 진술이 번복되어 신빙성이 없다고 하나 그것 말고도 범행을 증명할 증거는 충분할 것이며 지금 마음 같아서는 모든 기록을 법조계에 공개하여 의견을 묻고 싶다.”고 말한 주임 검사의 발언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강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이 발언은 당시 전국 신문에 일제히 보도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진범일지 모른다’는 의심은 유죄 확정보다도 더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검사의 위와 같은 발언은 440여일 만에 감옥에서 풀려난 여덟 명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의혹의 꼬리표를 선물하는 것으로서 법조인의 직업윤리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로서는 검사의 사건에 대한 집념의 표출로나 받아들였을 발언에 대해서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에게 미칠 피해를 지적해낸 저자의 분석에 감탄한 기억이 있다.
검사에 의해 기소된 피고인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공소사실을 다툴 수 있다. 판사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에게는 상소의 권한이 보장된다. 그러나 검사나 판사가 사건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하면 그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관계인들이 현실적으로 그 영향력을 상쇄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 판사가 무죄판결을 선고한 이후에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실은 피고인의 유죄가 확실하지만 검찰의 입증 실패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거나 검사가 무혐의 처분을 한 다음에 자신은 피의자의 혐의를 확신하지만 증거가 부족해서 기소하지는 않았다고 발언한다면 이로 인해 관계인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은 다언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김근하군 유괴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피고인들은 검사의 발언에 의해서 큰 상처를 입고도 속수무책이었다. 마찬가지로 기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무부장관에 의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도 이로 인해 입은 피해를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소위 X 파일 사건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건이다.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이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국정감사 때는 많은 정치인들이 이 사건 수사에 관해 다양한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건의 수사에 관한 권한이 있는 법무부장관이나 검사가 그 결론에 대해 공식적인 처리결과와 다른 개인적인 견해를, 그것도 언론인들에게 표명하는 것은 일반인들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게 보아야 한다. 그러한 공직자는 사건에 관한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 견해를 사실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법무부장관은 구체적인 사건에 관하여 검찰총장을 지휘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이 권한이 그저 교과서에만 적혀있는 권한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것보다 정확한 증거가 어디 있겠느냐”고 판단했다면 사건을 기소하라는 지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소를 하지 않으면서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의 유무죄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적어도 검사인 나로서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다.
최근 국민의 관심은 단연 황우석 교수 사건에 쏠려있다. 내가 검찰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황우석 교수 사건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묻는다. 어찌 나라고 의견이 없겠는가? 이 사건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면서 전에 대학원에 제출했던 의료윤리와 관련된 리포트를 다시 꺼내 읽기도 하고 줄기세포 연구와 관한 글도 찾아보면서 나름대로 진실을 추측해보려는 노력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으면(가족이나 법률가가 아닌 한) 절대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표정에라도 드러나지 않도록 애를 썼다. 비록 나는 황우석 교수 사건 수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내 의견을 듣는 사람들은 그것을 검찰의 시각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고 나아가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도 선입견을 갖게 됨으로써 결국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의견 표현을 조심해야 하는 또 다른 근거로는 진실 발견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수사를 하다보면 많은 경우에 ‘틀림없이 진실인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사실은 사건의 실체와 동떨어진 것이며 또한 ‘절대 사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일’이 실제 일어난 일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왜 우리나라의 법률가들이 지금으로부터 80년이나 전에 미국 보스턴의 이탈리아 이민 사회에서 벌어진 사코와 반제티 사건에 관심을 갖는가? 왜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의 진상을 궁금해 하고 알저 히스 사건이나 로젠버그 재판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는가? 이 사건들은 모두 진실이 얼마나 사람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례이기 때문이다. 로젠버그 부부는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시대에 소련의 간첩으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들의 무죄를 확신했고 이 판결을 미국 사법의 수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련 패망 후 공개된 소련 정보기관의 자료는 로젠버그가 소련의 지시를 받아 미국의 기밀을 빼돌린 사실을 움직일 수 없는 정도로 확인시켜 주었다(물론 절차의 적정성 등에 대한 논란은 남아있다). 이러한 사건들을 연구하면서 진실 발견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실패나 성공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역시 실체적 진실을 찾으려는 것은 맨손으로 물을 움켜쥐려는 노력처럼 어렵게만 느껴진다.
지청에 근무하던 시절 처음 만난 남자로부터 히로뽕 주사를 맞고 3일 밤낮을 끌려 다니면서 강간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사건을 수사한 일이 있다. 범인이 피해자에게 알려준 핸드폰 번호를 토대로 인적사항을 확인하여 수배를 하였다가 사건 발생 1년 만에 검거하게 되었다. 검거된 피의자는 고소인을 본적도 없다고 부인을 하였지만 고소인은 대질을 통해서 피의자로부터 강간당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였다(1년이 경과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범인이 살도 좀 빠지고 인상은 변했지만, 목소리가 확실하다고 하면서 수차례의 대질에서 망설임 없이 범인이라고 진술했다). 그대로 기소하면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생각을 품고 구속 연장만기까지 온갖 노력을 다한 끝에 피의자에 대한 소재수사 보고서에 적힌 한 줄의 글을 단서로 진범을 검거하게 되었다(진범은 검거된 피의자의 동생이었는데 형의 이름으로 지방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피의자에 대해 아무런 개인적인 사감(私感)도, 금전적 이해관계도 없이 진짜 자신을 강간한 범인으로 믿고 진술을 해오던 고소인이 검찰에서 찾아낸 진범을 보고 경악하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3일을 같이 생활하면서 수차례 범인과 성교까지 했던 피해자의 진술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는 판에 “두 사람이 대화한 것을 녹음”했다고 해서 “그것보다 정확한 증거가 어디 있겠느냐”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건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권한이 있는 사람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진실이 밝혀진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진실이 영원히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김근하군 유괴사건의 피고인들이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진범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무고함을 완벽히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루즈벨트 행정부에서 유엔 설립에 관한 일을 하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기소되었던 알저 히스는(실제로 기소된 죄명은 위증죄였다) 유죄판결을 받은 지 42년 후인 1996년 92세로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가 정말 간첩행위를 했는지 여부는 오늘날까지도 논쟁의 대상이다. 법무부장관께서는 “준 사람도 아니라고 하고 받은 사람도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200~300만원이 현금으로 오간 것을 어떻게 밝혀내서 처벌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입증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반대로 해석해보면 실제로 검사들이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능히 알 수 있다. 검사에 대해서 기업체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공격이다. 당사자들로서는 평생 살아온 과정을 부정당하는 것 같은 심정이 들 것이다. 이렇게 중대한 문제제기를 하려면 기소를 하거나 징계소추를 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언론을 상대로 혐의를 암시하는 말을 하는 것은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해야 한다는 표현이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난 것은 아닌 것이다.
3.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도청으로 얻은 정보의 이용에 대한 문제제기
X 파일이 화제가 되었을 때 그 내용의 수사와 관련해서 언론에서 문제되었던 것이 ‘독수의 과실 원칙’이었다. 미국에서 발전한 이 이론은 수사과정에서 절차적 위법이 있었던 때에는 그에 의해서 수집된 증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검토를 지시받았던 나는 ‘독수의 과실 원칙’은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만 적용되는 것으로서 정보기관이 행한 불법 도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실제 보고를 할 때에는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으로 알게 된 사실에 대한 수사는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강하게 개진하였다. 이 문제는 단순히 미국에서 생겨난 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를 뛰어넘는 중요한 원칙에 관한 것이고 검찰에서 이에 관한 명확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적법절차의 확립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면 소위 X 파일에 담긴 내용은 충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재벌과 정관계, 언론기관이 야합하여 불법행위를 저지른 전형적인 구조적 비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라면 누구나 수사하고 싶어할만한 사건이다. 만일 이러한 내용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밝혀진 것이라면 나도 당연히 수사팀에 포함되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X 파일은 더 이상 불법적인 방법을 생각하기 쉽지 않을 만큼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집된 정보이다.
하버드 로스쿨의 교수이자 저명한 형사 변호사인 앨런 더쇼위츠 교수는 “정부가 저지르는 심각한 위법행위는 대부분 유죄임이 확실하고 경멸받을 만한 범죄자가 관련된 사건에서 일어난다.”고 말하면서 헌법상의 기본권은 무고한 사람들뿐 아니라 혐의가 확실한 사람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X 파일의 내용이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국가기관이 도청을 통해서 획득한 정보를 토대로 수사를 해야 하는지는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 사건의 수사를 통해서 구조적 비리의 실체를 밝혀내고 부정에 관계된 사람들을 처벌하면 물론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일정한 정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얻게 되는 것과 국가기관의 도청 결과는 절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확히 수립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저울추는 후자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쇄 성폭행범인 어네스트 미란다에 대한 처벌을 포기한 것과 그로 인해서 확립된 미란다 원칙의 중요성을 생각해보더라도 이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라가 망할 것처럼 시끄럽던 ‘게이트 사건’들도 6개월만 지나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설사 사건 수사 한건을 포기하더라도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을 근절시킬 수 있다면 검찰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공헌한 가장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기소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서 불법도청으로 획득한 증거의 증거가치를(증명력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얻는 것도 없이 원칙만을 훼손하는 일이 될 우려가 크다.
정보기관에서 과거에 불법도청을 해온 것이 이를 이용해서 구조적 비리를 척결하고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약점을 잡아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정치적 반대세력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저열한 행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행위의 결과물에 대해서 그것이 사실인 듯한 인상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은 애초에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들의 목적 달성을 도와주는 것이 될 위험성이 있다. 다음에 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을 할 수 있겠는가?
설사 불법적인 도청으로 획득된 정보가 외견상 ‘틀림없이 진실인 것처럼’ 보이고 또한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서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법무부나 검찰의 입장은 그 진실성이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내용 그 자체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이 정부기관의 불법도청을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는 이미 민주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법질서의 확립을 책임지고 있는 법무부와 검찰은 국가기관의 도청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고 그러한 행위로는 아무런 이익도 얻을 수 없다는 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4. 마치는 말
X 파일에 검찰과 관계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더욱 부담스럽다. 자칫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해 강변을 하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과 이에 대한 평가가 법무부장관의 언급을 통해서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 현직 검사들을 포함하여 X 파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권은 이미 심각하게 침해되었고 더 이상의 침해는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설사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더욱이 그 중 1명이라도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입을 피해는 무엇으로도 복구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침해를 막는 것, 그것이야말로 “헌법학의 기본”이고 법무부와 검찰의 존재이유가 아니겠는가.
이길성기자 atticus@chosun.com
최경운기자 codel@chosun.com
입력 : 2006.01.18 04:23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