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代가 된 4·19 세대, 재평가 세미나
"분단의 원흉… 6·25 주범? 냉전사에 뿌리둔 틀린 평가
한반도 공산화 막아내고 대한민국 초석 세운 공로, 장기집권 욕망에 빛 바래"
1960년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4·19혁명의 주역이 이승만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데서 벗어나 공과(功過)를 공정하게 자리매김해야 한다며 재평가를 시도하고 나섰다. 미래정책연구소(이사장 박범진)가 14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개최하는 '4·19혁명과 이승만' 세미나에서 이영일(71) 한중문화협회 총재는 '4·19세대가 본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功)과 과(過)'를 발표한다. 이씨는 4·19혁명 당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3학년생으로 문리대 학생 데모를 이끈 주역이었다."1960년에 20대였던 4·19세대들은 이제 70대에 이르렀다. 청춘에 생각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고희에 바라보는 그가 같을 수는 없다. 정의감은 20대처럼 간직해야겠지만 사물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안목은 70대 수준에 걸맞아야 한다."
- ▲ 1960년 4·19 직후 시위대들이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리고 있다. 4·19 혁명 50주년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이씨는 총괄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안목에서 평가하면 대한민국의 초석을 세우고, 한반도의 공산화 책동을 막아낸 공로는 큰 방점을 찍을 수 있으나 장기 집권 욕망에 사로잡혀 과오를 범한 것은 업적의 액면 가치를 크게 감소시켰다'고 정리한다. 그는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한반도 영구분단의 원흉이라거나 6·25를 초래한 주범이라는 평가는 공산권 자료들이 공개되기 이전의 자료 부족에 기인하거나 냉전사에 뿌리를 둔 잘못된 평가였다"면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이어가고 우리가 대비해야 할 통일을 위해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치적을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철순 부산대 교수는 발표문 '미국, 이승만, 그리고 4·19'에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보통 친미파로 불리지만 맹목적 친미주의자이거나 대미 사대주의자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공식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키려다 미국과 수차례 갈등을 빚은 것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이승만은 1945년 광복 직후 미국과 약간의 밀월관계를 가졌으나 신탁통치 파동으로 미국과 대립하고 이어서 미국이 주도하는 여운형·김규식 중심의 좌우 합작정책에도 반대했다. 미국은 이승만을 견제하려고 했으나 정세 변화로 이승만의 단정(單政) 노선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1950년대에도 미국은 보다 순응적인 지도자를 원했고 장면을 대안으로 생각했으나 이승만이 부산 정치 파동을 일으키며 미국에 대항했다는 것이다. 이승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내기 위해 단독 북진정책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마련했다.
이철순 교수는 "이승만은 미국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강대국을 상대하면서도 당당하게 국익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14일 세미나에는 김도종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우대형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조사연구관 등이 토론에 나선다. (02)736-4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