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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강도 높은 부채감축 방안을 마련한 것은 빚과 이자가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불어날 경우 신용도가 떨어져 보금자리주택을 비롯한 각종 국책사업을 진행하는 데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LH의 부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퍼진 지난해 말부터 기관투자가들이 LH 채권 매입을 꺼리는 등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문제가 제기됐고, 신도시 개발 같은 해외사업에도 악영향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정부는 공기업 부채가 공식적인 국가채무가 아니고 부채에 상응하는 자산이 있다는 점을 들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지만 재정위기에 빠진 남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공기업 부채 같은 숨겨진 빚이 국가 재정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한 것이다.
올해 초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이지송 사장 직속으로 신설된 LH 재무개선특별위원회는 두 달여에 걸쳐 부채의 실태와 원인을 분석해 부채감축 방안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단기간에 국책사업이 집중되는 반면 투자금 회수가 늦어지면서 2014년까지 심각한 단기 유동성 위기가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LH의 부채는 2000년 21조 원에서 2003년 20조 원으로 소폭 줄었지만 2004년 28조 원, 2007년 67조 원, 2009년 109조 원 등으로 2년마다 거의 두 배씩 급격하게 늘어났다. 2000년만 해도 5조 원가량에 불과했던 연간 사업비가 2006년엔 30조 원 안팎으로 급증하면서 덩치만큼 빚도 불어난 것이다.
‘발등의 불’은 75조 원이나 되는 금융부채다. 분양중도금과 임대보증금 등 회계상으로만 잡히는 비(非)금융부채와 달리 금융부채는 채권, 기업어음, 국민주택기금으로 구성돼 있어 꼬박꼬박 이자가 나간다. LH는 별다른 자구노력이 없을 경우 이 금융부채가 2012년에는 136조 원까지 불어나 하루에 내야 할 이자만 100억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일부 자산을 헐값에 처분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섭게 불어나는 금융부채의 증가세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LH 관계자는 “부채 감축에 실패하면 최악의 경우 토지보상금을 지급하지 못하거나 건설 노동자에게 임금을 체불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며 “그런 사태를 피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금융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LH는 재무구조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로 채권 발행에 실패했고 공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기업설명회(IR)를 개최하기도 했다.
다만 LH 측은 2013년까지는 부채가 계속 쌓이더라도 2014년부터는 과거에 투자했던 사업이 수익으로 속속 회수되면서 현금흐름이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LH의 보유자산 가치가 153조 원으로 장기 부채상환능력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2014년 이전에 닥칠 크고 작은 유동성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또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재고자산을 얼마나 털어낼 수 있을지가 숙제다. 특히 한 채를 지을 때마다 5000만 원씩 부채로 쌓이는 임대주택의 경우 대부분 30년씩 장기임대로 묶여 있어 매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편 LH 보고서는 부채가 급증한 원인으로 △지난 정부의 과도한 국책사업과 임대주택 건설 △재무역량을 넘어선 무리한 사업 확장 △공공택지의 지나친 저가 공급 등을 꼽았다. 이 가운데 세종시 혁신도시 등 신도시와 각종 산업단지, 택지 개발 때문에 추가로 쌓인 부채만 37조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다른 공기업들도 몸집을 줄이거나 사업의 효율성을 높여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재무건전성을 높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해 부채가 8조7000억 원으로 1년 사이에 2조 원이나 늘어남에 따라 고강도 인력 감축에 나섰다. 지난해 1212명의 인력을 감축한 데 올해 명예퇴직 등을 통해 1560명을 추가로 줄일 예정이다. 코레일은 2008년부터 시작한 인력 구조조정으로 2012년까지 정원을 2950명으로 줄여 830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서울 영등포의 롯데민자역사, 경기 부천민자역사 등에 출자한 지분을 매각해 부채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전력은 갖고 있는 토지를 개발해 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대로 부동산 개발에 착수해 부채비율을 낮출 계획이다. 현재 보유한 1650만 m²의 토지 중 9만 m²에 대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발전 자회사들이 각각 연료를 매입해온 관행을 통합 구매방식으로 바꾸는 등 자구노력을 통해 연내 1조 원 규모의 비용절감 효과를 내기로 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자산 재평가를 실시해 장부상의 자산 가격을 현실화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재무제표에 자본이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나 재무건전성이 높아진다. 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 등 요금체계 현실화를 통해 부채 규모를 감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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