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주둔군 사령관 "싸움은 충분히 했다"
終戰수순 밟기 가능성
미국의 탈레반 전략이 유화정책으로 크게 선회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의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탈레반을 척결(剔抉)대상으로 보고 적대시해왔다.
그러나 스탠리 매크리스털(McChrystal)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2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을 포함해) 아프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거가 아닌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제하에 정치적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 지도자들이 아프간 정부의 요직을 맡는 것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미군 사령관이 탈레반에 '(아프간의) 카르자이 정부와 권력을 나누는(power-sharing) 것에 동의할 테니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고 공개 제의한 것이다. 그의 이날 발언은 지난주 파키스탄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Gates) 미 국방장관이 "탈레반은 아프간 정치를 구성하는 한 축"이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매크리스털은 또 "군인으로서 내 개인적인 느낌은 이미 싸움은 충분히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에 증파되는 미군 병력 3만명의 역할을 "탈레반 지도자들이 카르자이 정부와 협상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군 최고위층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의 아프간 전쟁 목표가 2001년 개전 당시와 달라졌음을 뜻한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간 침공 당시 뉴욕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bin Laden)을 체포하고, 그를 후원한 탈레반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전쟁이 8년 이상 계속된 지금 '종전(終戰)' 자체가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이다.
미국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탈레반과 막후 협상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둘 바싯(Basit) 파키스탄 외교부 대변인은 게이츠 장관이 파키스탄 방문을 마친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최고위급부터 실무급까지) 모든 탈레반 지도자와 (평화 협상을 위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성사 여부를 예측할 수 없지만 일정한 성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아프간 탈레반을 후원한 파키스탄 정부는 지금도 파키스탄 남서부 퀘타에 있는 탈레반 지도자들의 은신처를 묵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탈레반과의 협상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지난 18일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동시다발 폭탄 테러는 미국과 카르자이 정부의 회유책에 대한 탈레반의 답변이었다. 자비울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사건 직후 기자회견에서 "국제 사회와 다국적군이 탈레반을 돈으로 매수하려 하고 있다"며 "이번 공격은 우리가 판매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