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해 재판부마다 판사마다 결론이 다른 판결들이 잇따르고 있다. 비슷한 사안인데도 어제는 무죄, 오늘은 유죄로 판결이 엇갈리고 있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무원이 기소된 쟁점이 동일한 사안에서도 판결이 다르게 나왔다. 부산지법 형사2단독 이동훈 판사는 지난 5일 시국선언 집회에 참가한 혐의로 기소된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 부산지역 본부장 김모씨에게 유죄를 인정하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그러나 전주지법 형사4단독 김균태 판사는 19일 시국선언을 주도한 전교조 전북지부장 노모씨 등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한 사람은 지방공무원이고 다른 사람은 교육공무원이지만 기소된 혐의는 똑같이 공무원에게 금지된 정치활동을 했다는 혐의였다. 이처럼 같은 사안이지만 판사에 따라 판결은 달라졌다. 한 판사는 정치성향의 시국선언에 가담한 것은 지방공무원법 위반이라고 판결했으나 다른 판사는 공무원의 정부 비판도 '표현의 자유'에 따라 허용할 수 있다고 정반대의 판단을 했다. 같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재판에서 같은 법을 놓고 판사에 따라 그 해석과 적용이 달라진 것이다.
법원은 독립적인 재판을 하는 하급심 판사들이 엇갈린 판결을 내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재판부와 판사마다 다른 유·무죄 판단과 양형(量刑) 적용이 계속될 경우 재판 당사자인 국민은 결국 재판을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번 PD수첩 판결은 서울고법 판결을 깡그리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며 "이렇게 판사별로 큰 시각차를 드러내면 어느 국민이 법원을 믿겠느냐"고 했다. 하급 법원의 신뢰도가 떨어지면 앞으로 누구든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보겠다고 나서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고법의 다른 부장판사는 "PD수첩측이 오류를 인정해 사과 방송한 부분까지 전부 허위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한쪽에 지나치게 쏠린 판결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중견 변호사는 "일부 판사들이 사회적으로 찬·반이 갈린 사안에 대해 한쪽 편을 드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을 판사 경력 10년차의 형사단독 판사가 내렸다는 점에서 앞으로 중요 판결은 경력 있는 판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판사 1명이 재판을 맡는 형사단독은 통상 경력 5~15년차 정도의 법관이 배치된다.
서울중앙지법의 부장판사는 "최근 젊은 단독 판사들은 선배인 부장판사들과 논의하지 않고 대부분 자기들끼리만 얘기를 하다 보니 그들의 생각이 전체의 의견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민감한 사건에서 돌출 판결이 많아진다"고 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요즘 들어 일부 단독 판사들이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돌출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이는 법원 수뇌부가 합리적인 틀 안에서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판결을 내리도록 젊은 판사들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흐트러진 탓이 크다"고 말했다.
단독 판사들을 부장판사급으로 바꾸거나 적어도 민감한 사건은 어느 정도 연륜이 된 판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기갑 민노당 의원의 '공중부양' 무죄 판결, 국회에서 농성한 민노당 당직자들에 대한 공소 기각 판결 등 최근 문제가 된 판결을 내린 판사는 모두 형사단독 판사들이다.
한편 이용훈 대법원장은 20일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사법부 독립을 굳건히 지키겠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강기갑 의원의 '공중부양 무죄' 판결 다음 날인 지난 15일 '(검찰의) 비판 성명이나 언론 보도가 그 한계를 넘어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고 있다'는 성명을 낸 데 대해 비난이 거세지자 이후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