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폭격 맞은 듯
12일(현지 시간)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시내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빌딩 옆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시민들이 대거 몰려나왔다. 현지 언론들은 “생지옥”이라고 전했다. 포르토프랭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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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발생한 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흙과 건물이 무너지면서 분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다.”(마이크 고프리 미국 국제개발청 아이티 현지 직원)
“먼지로 꽉 차 온통 회색빛이 되어 버린 도시 곳곳에서 울부짖음만이 가득했다. 무너진 건물 속에 파묻힌 가족들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은 공포와 비탄에 젖어 있었다.(이언 로저스 세이브더칠드런 포르토프랭스 지부 직원)
중남미 카리브 해 쿠바 인근에 있는 인구 892만여 명의 서반구 최빈국 아이티가 240년 만의 최대 강진으로 생지옥으로 변했다.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이 아이티를 덮친 것은 12일 오후 4시 53분(현지 시간). 아이티에서 활동 중인 구호단체인 가톨릭 릴리프 서비스 현지 직원인 캐럴 젤린카 씨는 “한마디로 대참사(disaster)였고 현장의 모습은 카오스 그 자체”라고 설명했다.》
수천채 붕괴… 통신 두절… 시신 즐비
240년만의 강진에 도시전체가 폐허로
美 “인도적 지원”… 각국 구호팀 급파
AFP통신은 현지발 기사에서 포르토프랭스 거리 곳곳에 시신이 널려 있고 먼지를 뒤집어쓴 부상자와 난민들이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다고 전했다. 추가 붕괴를 우려한 구호단체 직원들은 대부분 건물 밖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시시각각으로 현지 상황을 전하면서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에서 나온 분진 등이 버섯구름처럼 뒤덮고 있다”며 “거리에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저앉은 대통령궁 12일 강진으로 무너져 내린 아이티 대통령궁. 포르토프랭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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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프랭스에 상주해 온 AP 기자는 “지진 발생 이후 포르토프랭스를 돌아본 결과 수천 동의 건물이 붕괴되거나 손상됐고 수만 명이 집을 잃었다”고 전했다. 이곳의 한 주민은 미국 보스턴에 사는 친척과의 통화에서 “여기는 지금 완전한 혼란 상태다. 집 근처 작은 호텔이 무너진 것을 봤고, 많은 것이 파괴됐다”며 생지옥으로 변한 현지의 모습을 전했다. 통화 중에도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이 들렸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알랭 주아양데 프랑스 협력부 장관은 라디오방송에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포르토프랭스의 몬타나 호텔이 무너졌다”며 “300여 명의 투숙객 중 100명가량만 빠져나오고 약 200명이 매몰됐다”고 말했다.
전화 등 통신시설도 대부분 파괴되어 주민들은 현장 사진과 메시지를 e메일로 전송하고 있다. 단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트위터로 구호를 요청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의 한 트위터 사용자는 “어둠이 깔리면서 (밖에서 들렸던) 노래와 기도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있다. 헬리콥터나 구급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비교적 견고한 건물들인 대통령궁과 재무부, 공공사업부, 문화통신부 등 주요 정부기관 건물도 붕괴됐다. 의회와 성당, 병원 등 도시 내 주요 기반시설도 무너졌다.
유엔 아이티 안정화지원단 사령부 건물도 상당 부분 파손돼 최소 11명이 숨지고 많은 수의 요원이 실종됐다. 브라질군 관계자도 자국 출신 유엔평화유지군 4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아이티에는 현재 20개국에서 파견한 7000명 규모의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다. 또 산비탈에 위치한 건물과 가옥이 한꺼번에 붕괴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잔해 속에 파묻혀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파괴된 슈퍼마켓 등지에서 생필품을 훔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미 아이티대사는 방송에서 “아이티는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재건될 수 없다”며 즉각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지난밤에 대통령 부인과 통화했다”며 “그는 ‘대통령과 자신은 무사하며 대부분의 정부 당국자도 지진이 근무시간 직후에 발생해 변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날이 밝으면서 참혹했던 현장의 모습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둠이 내리면서 구조작업을 중단했던 아이티인들은 가족과 친지, 친구들을 찾아내기 위해 건물 사이를 오가며 분주한 구조 활동을 벌였다. 아이티 경찰, 유엔과 적십자 구호차량도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지만 도로가 파괴되거나 뒤틀린 상태여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비롯한 국제구호단체들은 자원봉사요원과 생수, 음식 등을 통한 긴급구호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또 국제적십자연맹(IFRC)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담요와 취사장비, 식수통, 위생용품 등 긴급 구호물품을 지진 피해자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국도 즉각 인도적 지원을 다짐하고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국은 아이티와 주변 지역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개발청(USAID)은 아이티 재난피해 구조지원 활동과 관련해 72명의 구조요원과 6명의 탐지 구조견으로 구성된 재난대응팀을 48t의 구조장비와 함께 재난 현장에 급파했다. 아이티 유엔특사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유엔과 더불어 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아이티 주민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영국 프랑스 멕시코 베네수엘라 대만 등이 구호팀 파견을 약속했고 유엔의 반기문 사무총장도 전 세계가 구호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태평양쓰나미센터는 지진이 발생한 아이티와 인근 쿠바, 바하마, 도미니카공화국 등 카리브 해 지역에 지진해일(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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