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주당 정세균 대표./뉴시스
개입 정황 드러나는데 "난 문제없다"만 되풀이
적극 해명땐 韓에 타격… 소극적일땐 본인 치명상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23일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구속기소)이 2006년 12월 총리 공관에서 오찬을 한 자리에 자신이 동석(同席)했고, 산자부 장관 재임 때 곽 전 사장을 석탄공사 사장으로 검토해볼 것을 부하 관료에게 지시했다는 의혹 등이 부각됐지만 정 대표는 본인이 직접 나서는 해명을 주저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정 대표가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것 같다"고 했다.
◆"직무범위 벗어난 적 없다"
의혹 해명 요구에 대해 이날 오전 "조금만 기다려달라"던 정 대표는 오후 들어 노영민 대변인의 입을 빌려 "총리 공관 오찬에서 문제가 될 발언은 없었다. 산자부 장관으로서 직무 범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만 했다. 산자부 장관은 석탄공사 사장 추천 권한이 있기 때문에, 정 대표가 장관 시절 곽 전 사장측에 석탄공사 사장 응모를 권유했다는 사실만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검찰 수사에 대해선 "내년 지방선거를 고려한 정치공작"이라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총리 공관 오찬에 참석한 배경과 당시 산자부 차관을 통해 "석탄공사 사장에 응모해보라"는 메시지를 곽 전 사장에게 보냈는지 등 핵심적인 의혹들은 풀리지 않았다.
금품 수수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난 이런 이유로 곽 전 사장을 석탄공사 사장으로 검토해보라고 차관에게 지시했다"고만 밝히면 정 대표는 사법적으로 처리될 근거가 없다는 것이 민주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도 "문제 될 것이 없다면 대표가 더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하지 않느냐. 당의 얼굴인 대표가 정치적인 상처를 계속 받으면 당에도 문제가 된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 대표의 해명이 재판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며, 무대응을 주장한 지도부도 있었다. 정 대표는 "나에게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곳이 몇 군데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 대표는 이날 핵심 참모들과의 대책 회의를 통해 무대응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한 핵심 측근은 "당시 정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들었고 모두 정 대표의 결백함을 수긍했다"면서도, "그러나 해명은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정 대표의 해명 과정에서 사실 관계가 한 군데라도 틀리면 한 전 총리 진술의 일관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했다. 결국 해명 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한 사실이 드러날 우려가 있어 정 대표가 자신의 해명에 소극적이라는 것이 당 안팎의 관측이다.
◆한 전 총리 보호냐, 정치적 상처 감수냐
정 대표측 관계자는 "개인 정세균이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해명을 통해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야당 대표는 다양한 관계와 정치적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한 전 총리를 거론하진 않았지만, 정 대표가 곽 전 사장 인사에 개입하게 된 요인 중 하나가 한 전 총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했다.
노영민 대변인은 정 대표의 인사 추천 경위에 대해 ▲석탄공사가 매우 부실한 상황에서 경영능력이 검증된 사람이 필요했고 ▲곽 전 사장이 대한통운 사장 시절 경영 능력이 검증됐고 ▲같은 전북 출신인 곽 전 사장을 조금 알고 있었다는 점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가 석탄공사 사장으로 밀고 있던 인물이 따로 있었음에도(민주당 관계자 주장) 정 대표가 산자부 실무진에 "곽 전 사장이 사장에 적합한지 검토해보라"고 지시한 명확한 이유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검찰이 공소장에 밝힌 것처럼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에게 "정(세균) 장관이 오니 공관 오찬에 참석하라"고 하고, 정 대표에게 "곽 전 사장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면, 결국 당시 정 장관의 인사 개입에는 한 전 총리 변수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결국 한 전 총리를 보호하기 위해 정 대표가 '정치적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 대표가 의혹 해명에 소극적이면 정 대표를 둘러싼 의문이 커져 정치적 상처를 입게 되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이것이 민주당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우세하다. 이 때문에 정 대표가 전격적으로 사건의 전모를 밝힐 가능성도 있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