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기 조종사 진술
무기 실은 그들은, 대체 어딜 가려고 했나
"스리랑카·중동에서도 화물 하역하려 했었다"
NYT "수단일 가능성"
북한제(製) 무기 35~40t을 수송하다 지난 12일 태국 당국에 억류된 그루지야 국적 Il(일류신)-76 화물기는 과거에도 3~4차례 이번과 비슷한 북한 화물을 수송했으며, 이번에 적발된 무기의 목적지에는 스리랑카와 중동 지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의 일간지 더 네이션(The Nation)은 14일 "Il-76기 조종사인 미하일 페투호프(Petukhov)가 경찰 조사에서 과거에도 이번과 같은 화물을 3∼4차례 수송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북한제 무기가 화물기를 통해 여러 차례 북한 영토 밖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태국의 다른 일간지 방콕포스트는 "태국 정부가 방콕 돈므앙 공항에서 북한제 무기를 압류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정보기관의 귀띔(tip)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승무원들은 13일부터 계속된 경찰 조사에서 비행경로에 대해서는 언급했지만, 처음에는 Il-76기에 실린 화물이 무기가 아닌 '석유시추 장비(oil rig)'로 알고 있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 ▲ 14일 태국 방콕의 형사 법원에서 북한제 무기를 운반하다 억류된 수송기 승무원들이 현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수송기에는 벨라루스 출신 조종사 1명과 카자흐스탄 출신 승무원 4명 등 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날 태국 법원은 승무원들에 대한 구금 기간을 12일 연장했다./AFP연합뉴스
또한 이들의 구금(拘禁)기간을 12일 연장해, 26일까지 이들을 상대로 북한제 무기의 최종 목적지와 중간 기착지 등에 대해 추가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승무원들은 변호사를 통해 보석(保釋)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태국 외무부는 압류한 북한 무기와 관련한 보고서를 45일 이내에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타니 통팍데(Thongphakdee) 외무부 부(副)대변인은 “유엔 안보리 1874호 결의에 따라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하겠다”고 14일 밝혔다. 지난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채택된 1874호는 북한의 무기 수출입을 금지한다.
태국 당국의 조사가 초기 단계이고, 관련 당사국들도 의견도 엇갈린 탓에 북한제 무기의 수송은 의문투성이다. 우선 무기 규모와 종류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RIA) 통신은 Il-76기에 실린 북한제 무기가 35t보다 많은 “40t 정도이며, 수류탄과 이동식 대공(對空) 미사일, 대전차 로켓포 등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전문가들이 Il-76기 화물칸 사진을 살펴본 결과 ‘조기경보기 킬러’로 불리는, 사거리 300㎞의 K100 공대공(空對空) 미사일도 있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이 미사일이 북한제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제 무기의 최종 수요국도 혼선이다. 시리아·이란·파키스탄·스리랑카 외에도, NYT는 이 Il-76기를 보유한 회사가 아프리카 수단항공사와 연계가 있다는 점을 들어 무기가 수단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애초 예정된 이 화물기의 우크라이나 복귀 항로와 태국 기착 경위도 의문이다. 화물기는 북한에 갈 때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재급유했다. NYT는 “이 화물기는 귀항 시에도 원래 스리랑카와 UAE· 아제르바이잔에서 급유하는 경로였는데, 왜 승무원들이 방콕에 비상착륙해 재급유와 화물기 바퀴 점검을 요구했는지 태국 경찰도 의아해한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화물기 출발국)와 그루지야(화물기 국적국)가 북한제 무기 불법 거래 사건에 개입된 이유와 과정도 불확실한 게 많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 외무부는 각각 “북한제 무기 수송은 우리 정부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했다.
한편 스티븐 보즈워스(Bosworth) 미국 대북특사는 14일 모스크바에서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러시아 외무차관과 만나 “북한무기 수송기 억류에서 볼 수 있듯이, 유엔 결의 1874호가 정상 작동하고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