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올해 세계 주요 자동차회사의 구매담당자들은 거의 대부분 한국을 한 번씩 찾았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푸조시트로앵(PSA), 볼보 등은 경기와 경남에서 열린 자동차부품 전시회에 참여했으며 폴크스바겐과 포드는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자사(自社)의 구매정책 설명회를 겸한 상담회를 열었다. 제너럴모터스(GM)와 도요타는 각각 미국과 일본에서 한국 부품업체를 초청해 상담회를 가졌다.
○ 한국 자동차업체 성장과 함께 ‘쑥쑥’
이들 상담회는 모두 성황리에 개최됐다. 특히 참여 바이어의 수가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 분위기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평가다. 폴크스바겐의 경우 독일 본사에 한국 기업을 초청해 상담하던 관례를 깨고 파워트레인, 메탈, 전기, 인테리어, 외장 등 5개 핵심 부품 구매 담당자를 서울로 직접 보냈다. KOTRA 관계자는 “한국 부품기업의 기술력과 품질을 그만큼 높이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부품업체 스스로도 외부의 시각이 달라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 자동차 범퍼빔과 시트프레임을 만드는 한화L&C의 신동운 소재사업부장은 “예전에는 계열사를 통해 겨우 접촉할 수 있었던 일본 완성차업체들이 요즘에는 먼저 연락을 해온다”며 “일본 회사들과 설계 회의를 함께 열기도 한다”고 놀라워했다.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의 선전(善戰)은 올해 초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당시에는 자동차 경기가 나빠지면서 자동차 부품업체에 한파가 닥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반대로 세계 경제위기가 한국 차 부품업체 도약의 발판이 됐다. 선진국 소비자의 취향과 생산의 편리함을 이유로 자국산 부품을 선호하던 미국과 유럽 완성차업체가 가격 인하의 압박을 받게 되자 대거 한국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 것.
현대·기아자동차 등 한국의 완성차업체가 선전한 것도 부품업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기아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인 동희산업 관계자는 “완성차업체가 신차를 내놓으면 부품업체의 기술력도 한 단계 올라간다”며 “최근 국내 자동차업체가 공격적으로 신차 출시에 나선 것이 부품업체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 자동차와 정보통신의 융합·자유무역협정이 ‘기회’
현대·기아차의 공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은 부품업체의 해외 진출을 도왔다. 현대차 터키공장 근처에 올해 3월 현지 공장을 세운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는 유럽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르노닛산과 연간 100억 원 규모의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고문수 전무는 “국내 자동차업체가 해외 생산을 지속적으로 늘린 것이 부품업체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도 확대하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보기술(IT)과 2차전지 분야 등 앞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은 전장품(電裝品)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뛰어나 앞으로도 한국 부품업체의 약진이 예상된다. 르노삼성자동차 크리스토프 드샤랑트네 구매본부장은 “한국 부품업체는 특히 내비게이션, 멀티미디어 등 각종 IT제품군에서 세계 정상급 품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LG화학 등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GM은 LG화학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BMW는 삼성SDI와 독일 보쉬사(社)가 함께 세운 배터리업체 SB리모티브의 제품을 공급받기로 한 상태다. 폴크스바겐도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에서 LG화학과 SB리모티브는 폴크스바겐의 파트너가 될 유력한 후보”라고 밝힌 바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미국, 유럽연합(EU)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부품업계가 자동차업체 이상의 득을 볼 것”이라고 진단했다. 해당 국가의 자동차업체가 좀 더 손쉽게 한국 부품을 조달할 수 있게 될 뿐더러 한국 차의 수출이 늘어날수록 애프터서비스용 부품 수출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부품업체는 모두 6000여 개로 이 가운데 국내 자동차업체에 직접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는 889개에 이른다. 전체 부품업체의 생산액은 2007년 약 49조 원으로 전체 제조업 생산액의 5.5%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용인원은 17만 명으로 제조업 전체 고용 규모의 6%에 달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