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Obama)
미국 대통령은 1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병력 증강을 요구하는 미국 내 세력에는 '3만명 증파'를, 반전(反戰)세력에는 '18개월 후 철군 시작'이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부터 소련에 이르기까지 2500년간 모든 외부 세력의 점령을 거부했던 '제국의 무덤'에서, 미국 내 정반대의 두 세력을 모두 달래려는 오바마의 '도박'이 성공해 계획대로 2011년 하반기 철수를 시작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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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에다는 분쇄, 탈레반은 약화"오바마는 전쟁 목표를 구체화했다. 아프가니스탄을 온상(溫床)으로 해 9·11테러를 일으켰던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집단인 알 카에다는 "분쇄하고, 해체하고, 패퇴시켜 아프가니스탄에 돌아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알 카에다를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이슬람 반군 집단인 탈레반에 대해선 "기세를 꺾어 정부 전복 능력을 없애야(deny) 한다"고 말했다. 목표를 탈레반의 '근절'에서 '약화'로 현실화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약화(degrade)란 탈레반이 다시는 정권 탈취나 수도 카불의 탈환 시도를 못하게 한다는 의미"라고 보도했다.
- ▲ 1일 미국의 새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발표하기 위해 뉴욕 주 웨스트포인트의 육군사관학교를 찾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육사 생도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아프가니스탄에 내년 여름까지 3만명을 추가 파병하고, 18개월 후부터 철군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로이터 연합뉴스
오바마는 "증파된 3만 병력은 반군을 타격하고 인구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의 치안을 먼저 양호하게 해, 미군과 다국적군이 맡은 안정화 임무를 현지 정부군과 경찰에게 신속하게 넘기겠다는 것이다.
또 지역 무장세력의 투항을 유도해, 이들에게도 치안을 맡기겠다는 뜻도 밝혔다. 나토군은 이미 현지에서 현금 지급 등 여러 수단을 통해 지역 무장세력을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치안 구조에 흡수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2007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증파하고, 반군세력을 매수했던 정책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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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철수 시작 가능할까미국 내 반전 세력과 증파 지지 세력은 1일 오바마의 발표에 모두 불만을 표했다. 반전 단체인 '코드 핑크' 회원들은 이날 백악관 앞에서 전사자를 기리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 관을 들고 행진했다. 증파를 지지한 존 매케인(McCain) 공화당 상원의원도 "전쟁에 이기려면 떠날 때를 미리 밝히는 게 아니라, 적의 의지를 꺾어야 한다"며 철군 시기 발표를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가 주전(主戰)과 반전(反戰)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이라크식(式) 증파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효과를 거둘지도 불분명하다. 게릴라전 성격이 강했던
이라크와 달리,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중대 규모 이상의 병력으로 독자적 재래전을 수행한다. 미국의 사설 안보 문제 분석기관인 스트래트포는 "거점 도시 중심의 주둔·방어 전략은 오히려 민간인 거주지를 전쟁터로 만들 우려가 크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암(癌)'으로 표현하면서도, "암의 뿌리가 있다"고 밝힌 파키스탄과의 접경 지역에 대한 전략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밝힌 '2011년 7월'이라는 철수 시작 시점에 대해서도, 미셸 플러노이(Flournoy) 미국 국방차관은 NYT에 "치안 수행 임무를 얼마나 신속하게 현지 정부에 이양하느냐 등의 현지 사정에 따라, 철수 시점은 대통령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수 시점은 새 전략의 발표 첫날부터 '유동적'임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