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얇은 책자 두 권을 보여주면서 “(과거 정권이) 43조 원, 87조 원을 들여 해야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이 들고 나온 책자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수해방지 대책 요약본이었다.
○43조 원, 87조 원 사업이란
29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과거 정부의 수해방지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는 2007년 7월 ‘신(新)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을 마련했다. 2006년 태풍 ‘에위니아’와 집중호우로 63명의 인명피해와 1조9000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방안은 10년(2007∼2016년)간 87조4000억 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당시 나온 백서를 보면 그 이전 4년간 지방관리 하천 등에 들어간 재해 복구비는 12조7300억 원으로 재해 예방용으로 투자한 돈(6조2500억 원)의 2배에 달했다. 국가가 관리하는 하천 등의 경우에도 사후 복구비가 4조1100억 원으로 예방용 투자비 8조9000억 원의 절반에 해당했다. 이처럼 재해 복구에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건설교통부 등 7개 부처가 공동으로 87조4000억 원을 미리 투입해 수해를 예방하자는 게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 방안의 핵심이었다.
항목별로는 △국가하천 정비, 유역종합치수계획, 산사태 위험지구 정비 등에 24조6000억 원 △소하천 재해예방 등에 34조6000억 원 △저수지 등 농업용 노후 수리시설 개·보수 등에 17조7000억 원 △기상관측 고도화 및 해양관측망 강화 등에 10조5000억 원을 책정했다. 이 방안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쳤지만 그 후 일부 대책이 흐지부지되는 등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4월에도 42조8000억 원 규모의 ‘수해방지대책’을 만들었다. 이 대책은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했던 방안을 노무현 정부에서 보완, 발전시켜 종합 보고서로 만든 것이다. 2002년 집중호우와 태풍 ‘람마순’, ‘루사’ 등으로 270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6조10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자 국무조정실 주도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하천정비사업에 10조1000억 원, 하천제방 보강이나 소하천 정비에 9조3000억 원, 농경지 배수시설 개선과 저수지 기능 강화 등에 5조6000억 원, 재해위험지구 정비 및 사방댐 건설에 5조5000억 원, 홍수예보능력 강화 등에 4조9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돼 있었다.
이에 앞서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12월에는 대통령비서실 주관으로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꾸려 수해방지종합대책을 만들었다. 국가하천 정비 등 세부 내용은 이후 나온 대책과 비슷하며 총사업비는 24조 원이었다.
○4대강 사업과 비교하면
최근 10년간 나온 수해방지대책은 ‘4대강 살리기’ 사업처럼 사전 예방을 통해 사후 복구비를 줄이자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낙동강 등 국가하천을 정비해야 한다는 점도 4대강 사업과 맥락이 닿는다. 2007년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 방안은 국가하천 정비에 14조7878억 원, 하천유지비용으로 1조1405억 원 등을 책정했다.
물론 과거 대책은 국가하천뿐 아니라 지방하천, 홍수경보시스템 개선, 산사태 방지 등 다른 부문에 대한 자금 투입 계획도 담고 있어 4대강 사업처럼 국가하천 정비에만 22조 원을 쓰는 건 아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 수해방지대책에는 대규모 댐 건설이나 댐 정비 방안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번에는 발상을 바꿔 강에 물을 담아놓을 수 있도록 했다. 댐 건설 비용과 비교하면 4대강 사업의 예산이 과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신국가방재시스템에 나온 댐 관련 비용은 약 7조 원으로 국가하천 정비 예산과 합치면 23조 원 정도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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