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美·中 정상회담 들여다봤더니
● 무역마찰 해법- 美, 위안화 절상 거론하자 胡주석 "보호무역에 반대"
● 기후변화협약 대응- 美 '양국 적극 동참' 강조에 中 "서로 다른 책임 져야"
17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기자회견장에 선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두 정상은 각자 20분간 발표문을 읽은 뒤, 질문도 받지 않고 곧바로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발표문은 모두 말의 성찬(盛饌)으로 시작했다. 후 주석은 "정말 좋은 회담이었다. 솔직하고 건설적이며 성과가 많았다"며 말을 꺼냈고, 오바마 대통령도 "양국의 현재, 미래와 관련해 미·중 관계가 지금처럼 중요한 적은 없었을 것"이라고 화답(和答)했다.
하지만 주요 대목마다 두 정상의 말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무역 마찰 문제에 대해 양 정상은 모두 "협상과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후 주석은 보호주의 반대, 국제금융체제의 개혁에 강조점을 뒀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이 시장지향적인 환율 시스템으로 나아가겠다고 거듭 약속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간접적으로 위안화의 평가 절상을 압박하자, 후 주석은 "나는 현재 환경하에서 모든 종류의 무역보호주의에 반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더욱 강경하게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후 주석의 발언은 미국의 각종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겨냥한 것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발언에서도 두 정상의 방점(傍點)은 서로 다른 곳에 찍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너지 최대 소비자와 최대 생산자로서 양국의 노력이 없으면 해결이 어렵다. 양국은 이 분야에서 일련의 중요하고 새로운 능동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해, 중국도 적극 동참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후진타오 주석은 "(선진국과 개도국이) 서로 다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하에, 각자 능력의 기초하에서 코펜하겐 회의가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해 현재의 기후 위기를 초래한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더 큰' 책임을 부각시켰다.
- ▲ 1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6자회담의 지속과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신화뉴시스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분명한 어조로 양국을 경고했지만, 후 주석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티베트 문제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라고 인식하는 동시에, 중국 정부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간에 이른 시일 내에 대화를 재개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말했을 때와 중국의 인권 문제를 거론한 순간에는 회견장에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6500자 분량(중국어 기준)의 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합의 내용 중에 G2(주요 2개국) 정상회담의 결과로 볼만한 '비중 있는'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은 양국 간 교류 확대였다. 양국은 연례 외무장관 회담 개최에 합의했고, 내년에는 베이징에서 2차 미·중 경제전략대화를 열기로 합의했다.
또 로버트 게이츠(Gates) 미국 국방장관과 천빙더(陳炳德)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이 내년 상호 방문해 군사 교류를 확대하고, 양국 유학생 교류를 늘리는 방안도 결정됐다. 이 외에 농업·민간 항공·청정 에너지·환경 등의 분야에서 5개의 협정 또는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반면 핵확산 방지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의 비준, 기후 변화 공동 대응 등 굵직한 글로벌 현안은 "서로 노력한다"는 정도의 선언적 문구로 처리됐다.
두 나라의 정상회담이 이처럼 '알맹이' 없이 겉돈 것은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중국은 G2라는 '틀'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경제적 지위에 걸맞게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지만, 후 주석은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실제로 중국 안에선 중국이 G2라는 시각에 대해 "성급하다"는 입장이 다수다. 국제적 현안에 개입하기보다 '내실'을 키워야 할 때라는 것이다.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G2라는 말은 반(半)은 맞지만, 반은 틀린다"며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긴 하지만, 미국과 같은 등급의 국가가 아니다"고 말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 전문가인 데이비드 샴보(Shambaugh) 교수도 뉴스위크지에 "중국은 '세계의 리더'는커녕 '개도국의 리더'로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국은 오바마 대통령의 방중(訪中) 일정을 둘러싸고도 적잖은 불협화음을 노출하며 신뢰 부족을 드러냈다. 지난 16일 상하이에서 열린 청년 대학생과의 타운홀 미팅만 해도 생중계 여부와 대화 형식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이번 아시아 순방의 첫 방문국인 일본을 방문하면서 백악관 참모들과 중국측 사이에 계속 중국 일정 협의가 진행되기도 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전문가는 "이번 방중은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는 것 말고는 크게 의미를 두기 어렵다"며 "두 나라가 진정한 G2로 가기까지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