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주류·청와대, 박근혜 발언에 당혹
親李·親朴 갈등 재연될까 대응은 자제하는 분위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3일 세종시 문제에 대해 "선거 때마다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한 사안"이라며 '원안 고수'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청와대와 여권 주류는 일단 "원론적 언급 아니겠느냐"며 반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국회의원 재·보선을 불과 5일 앞두고 여권 내부의 친이·친박 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표가 말한 것은 한나라당의 기본 당론이기 때문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다만 정부에서 수정안이 나온다면 신중히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역시 논란 확산을 꺼리는 분위기다. 박선규 대변인은 박 전 대표 발언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세종시 문제는 총리실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가질 것이고 그에 따라 합리적 해법이 도출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정무라인쪽 관계자도 "정책을 집행하다 보면 정부와 국회 사이에서 늘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의 하나로 본다"고 했다.
-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왼쪽)가 23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장에서 강명순 의원 과 얘기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 회의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에게“세종시 백지화 는 말이 안 된다”며 주류측의 세종시 수정론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연합뉴스
이런 '공식 반응'과 달리 여권 주류는 내심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세종시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청와대 한 참모는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며 "분명 넘어야 할 산(박 전 대표측)이 앞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드디어 그 산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했다. 친박 의원들이 모두 반대할 경우 수정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이제 세종시 수정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한 주류 의원)는 말까지 나왔다.
여권 주류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박 전 대표 발언의 강도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세종시 문제를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로 규정했다. 사실 주류 내부에선 "박 전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 전에) 당을 깨겠다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이 문제에 세게 태클을 걸 수 있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따라서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은 주류들의 '허를 찌른' 셈이 됐다. 여권 관계자는 "박 전 대표 발언의 강도가 예상보다 훨씬 세다"면서 "앞으로 당이 복잡하게 돌아갈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박 전 대표에 대한 성토 분위기도 있었다. 친이 직계의 한 초선의원은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던 법안에 대해 '약속했으니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금과옥조로 삼아 고수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한나라당 차기 경쟁 구도와 관련짓는 얘기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세종시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정운찬 총리와 원안 고수를 밝힌 박 전 대표 사이에 '일합(一合)'이 불가피해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박 전 대표측과 소통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반성의 목소리도 있다. 한 주류측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박 전 대표측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세종시 관련 계획을 설명하려 했는데 루트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