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무대서 북핵문제 본격 논의
李대통령, 中-日 정상에 ‘그랜드 바겐’ 협조 요청
캠벨 차관보 “내용 몰라”… 韓-美 온도차 논란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미국은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평소 ‘핵 없는 세상’을 외쳐온 오바마 대통령이지만 이날 발언은 이례적으로 강경한 메시지였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에서 한중,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해법을 논의했다.
○ 미국 중국 일본의 북핵 해법 찾기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북한에 강경한 경고를 한 것은 최근 북한이 북-미 관계 유화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 없이는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이 조만간 양자대화를 갖는다 해도 북한이 핵을 폐기하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는 한 북-미 관계의 진전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또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 역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단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북한이 핵문제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과 선택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자신이 최근 주창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구상과 관련해 “피스 바이 피스(piece by piece)가 아니라 일괄적으로 북한을 안정시키고 핵을 포기시키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후 주석은 이에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종 경청하는 자세였다고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전했다. 이 수석은 “비핵화라는 목표는 한 가지다. 거기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긴밀히 협력하고 소통함으로써 공조를 통해 목표를 달성해 가는 지혜를 발휘하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기존의 주요 8개국(G8) 체제로는 부족하며 G14보다는 G20 체제가 유용하다는 점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G20 정상회의는 한국 유치가 유력하며 이번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결정된다. 이날 오후(한국 시간 24일 새벽) 열리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도 큰 의미가 있다. 첫 만남에서 북핵 문제와 같은 주요 이슈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재임 기간 내내 북핵 공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미 ‘그랜드 바겐’ 시각차 논란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구상과 관련해 미국 당국자들이 그리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는 것처럼 외부에 비치면서 ‘엇박자’ 논란이 제기됐다.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그랜드 바겐은) 이 대통령의 정책이고 그의 연설이기 때문에 내가 코멘트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전날 뉴욕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 직후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 “회담에서 ‘그랜드 바겐’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고 내용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22일자 기사에서 “이 대통령의 연설은 미국을 놀라게 만들었다”면서 익명의 행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북핵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far-fetched)’인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에 김성한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23일 직접 브리핑을 갖고 “그랜드 바겐 구상은 이번에 공식 론칭한 것이지만 그동안 5자 협의를 해 왔고 현재도 협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다. 다만 제재 국면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각국 내부적으로도 (관련 부서 간) 비공개로 논의가 진행되면서 커뮤니케이션 갭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성 김 6자회담 수석대표와 주로 대화를 해 왔는데 캠벨 차관보와 미 국무부 대변인에게 전해지는 데까지 일종의 ‘타임 갭’이 있었다는 것이다.
○ 유엔 총회 연설서 물 관리 체제 제안
이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화석 에너지는 대체가 가능하지만 물은 대체가 불가능하다”며 물 관리 문제를 화두로 제시했다. 그는 “이제 국제사회는 물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거버넌스(관리)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좀 더 효과적인 국제협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특화되고 통합된 물 관리 협력 방안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청계천 복원과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언급하며 한국의 물 관리 정책을 소개했다. 현재 25개 유엔기구와 12개 국제단체가 물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물 관련 국제기구는 없는 상태다. 우리 정부는 내부적으로 물 관리 국제기구를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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