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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제목 고문기술자 유시민의 대학생활 (미래한국신문)
글쓴이 헌변 등록일 2006-01-06
출처 조회수 1129

다음은 미래한국신문  http://www.futurekorea.co.kr  에 있는 기사임.          2006.01.06     독자님 안녕하세요      고문기술자 유시민의 대학생활 대학시절 임신현, 손영구, 정용범, 전기동씨 감금 폭행 가담       유시민 의원은 1984년 9월 17일부터 9월 27일까지 서울대학 구내에서 잇달아 발생한 4건의 시민불법 감금폭행 사건의 주동자 였다. 당시 경찰 발표문은 아래와 같으며 기사의 출처는 84년도 조선일보이다. 사건의 피해자명은 임신현, 손영구, 정용범, 전기동씨이다.   유시민 -수사착수경위- 1984년 9월23일 관악경찰서는 서울대학구내에서 일부학생들이 외부인을 불법감금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9월27일 밤 10시쯤 서울대학 구내로부터 실신 상태에 빠진 청년1명이 들것에 실려 나와 앰블런스에 실려 관악구봉천4동 관악병원에 입원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9월27일 재수생 손영구군, 9월28일 방송통신대학생 전기동씨 및 독학중이라는 정용범씨로부터 서울대생불법감금 폭행사건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었고 9월29일에는 서울대 총장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고발장이 접수돼 본격수사에 착수했다. ■감금 폭행사건의 실상 1.임신현씨 사건 임씨는 9월17일 오후 경영대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에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때마침 대강당앞 감골잔디밭에서 열리고 있던 복학생들의 막걸리 파티에 어울렸다. 같은 자리의 복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순서가 되자 임씨는 "나는 78년 법대 공법학과 3학년 재학중 입대하였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이번학기에 복학했다."고 엉겁결에 거짓 소개를 하게됐다. 이때 옆자리의 복학생들로부터 "78년에는 공법학과가 없었는데 당신 가짜가 아니냐"고 추궁당했고 동석했던 유시민군은 그의 친구들에게 임씨가 기관의 정보원인지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유시민군의 친구 세 사람은 임씨를 학생회관 3층 복학생협의회 임시사무실로 끌고가 감금했다. 학생들은 "기관원이라고 자백하라. 만약 자백하지 않으면 몇 달이고 자백할 때까지 감금해 죽게될 지도 모른다."고 협박했고 임씨가 거부하자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히고 주먹과 발길질로 가슴, 다리등을 무차별 구타하며 교대로 철야 심문했다. 유시민군은 다음날인 18일 오전 7시쯤 백수택 군으로부터 철야 조사한 내용과 학생들이 작성한 임씨의 진술서등을 검토하고 정보원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확실히 정보원이라고 밝혀질때까지 계속 조사하라"고 송원봉  백수택 군에게 지시했다. 이날 오후 8시까지 임씨를 조사하여도 정보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중에 학교직원의 연락을 받은 임씨의 형이 달려와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하자 임군은 사과하고 26시간만에 임씨를 풀어주었다.   2.손영구군 사건 손군은 9월21일 오후 1시쯤 법대 사무실앞 의자에 앉아있다가 김진욱군등 2~3명으로부터 신분을 조사당하고 학생이 아님이 드러나자 학도호국단 사무실로 끌려가 감금당했다. 유시민, 백태웅, 백기영, 윤오중, 오재영, 김도인군등이 "절도범이냐, 기관정보원이냐" "학원내 학생활동 상황을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 탐지하러 왔느냐"고 추궁받았다. 김도인군등은 다음날인 22일 오후 2시까지 "사실대로 자백하라"며 주먹과 발길질로 손군의 가슴등 옆구리 다리를 무수히 구타하고 정종주군은 엎드려 뻗친 상태에서 거의 실신상태에 빠트렸다. 백태웅군은 이처럼 가혹행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21일 오후 1시30분부터 22일 오후 2시사이 [가짜학생 손영구 진술서]란 제목으로 성명, 생년월일, 본적, 주소, 출신고등 인적사항과 잡히게된 경위, 법대 출입시기, 정보활동상황, 배후조정자 활동등을 허위 자백받고 매장마다 무인을 찍게 했다. 손군은 이때 매에 못이겨 다음과 같은 내용의 허위자술서를 썼다. "나는 D중 2학년때부터 다니고 있는 신당성당의 주일학교중등부 교사 윤요한(세례명)으로부터 83년 12월말부터 84년 1학기 개학전까지 프락치 교육을 받고 그가 제공한 적외선 망원렌즈 무비 카메라와 고성능 도청 녹음 통신 무전기등이 종합된 가로 세로 3, 4 cm크기의 장비를 사용하여 서울대를 비롯 성대, 서강대 등의 학내상황과 명동성당, 카톨릭대 학생 연합회 등의 단체 활동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윤요한과 기관원 정원재에게 제공하고 한번에 5만~10만원씩 10여차례 돈을 받았다." 유시민군이 22일 오후 5시쯤  백태웅군으로부터 조사기록을 넘겨받아 오후 7시까지 "사실대로 정보수집한 내용을 자백하라"고  협박하며 직접조사하였다.   김도인, 정종주, 오재영군등이 교대로 손군을 계속감시감금하다 23일밤 12시쯤 총학생회장실로 옮겼고, 백태웅군은 이곳에서 24일 오전 5시까지 유시민군이 조사한 내용에 따라 진술조서를 다시 작성하고, 매장마다 무인을 찍게한 후 진술내용을 녹음했다. 총학생회장실에서는 오재영, 김도인, 정종주군 등이 교대로 손군을 감시했다. 25밤 11시쯤에 백기영, 윤오중군등 3명은 경찰이 손군을 구출하러 올 것을 우려, 손군을 데리고 대학뒷산 철조망으로 빠져 나가 관악구 신림8동소재 구로장여관 2층 216호실에 감금했다가 26일 오전 10시쯤에 낙성대옆 산을 넘어 학교로 들어가 다시 총학생회장실에 감금했다. 이곳에서 오재영군은 "오늘(26일) 오후 2시에 학생들이 많이 모인 가운데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니 이제까지의 진술내용이 사실이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다. 이런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학교직원 임선웅씨의 연락을 받고 달련온 손군의 어머니와 산촌 손호식씨가 연3일간에 거쳐 손군이 기관의 정보원이 아니라고 호소하면서 풀어줄 것을 애원하였으나 학생들은 끝내 불응했고 26일 오후 1시 30분쯤 감시가 소홀해 진틈을 타서 어머니와 삼촌이 총 학생회장실에 들어가 5박 6일만에 손군을 구출해 데리고 나왔다. 손군은 귀가한후 중구 중림동 덕수 의원에서 전치 10일간의 상해 진단을 받고 통원치료를 받다가 증세가 악화되어 10월 1일 관악구 봉천4동 관악병원에 입원가료중이다. 주치의 서종국씨는 손군이 심한 강박관념으로 정신분열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3.정용범씨 사건 9월26일 오후 3시 30분쯤 정씨가 서울대 연못앞 벤치에서 시험준비서를 보고 있는데 학생2명이 다가와 "여기 어떻게 왔느냐, 잠깐 좀 가자"면서 학생회관 3층에 있는 복학생협의회 사무실로 끌고 갔다. 이곳에서 유시민, 백태웅군등 학생 5~6명은 플래카드에 사용했던 광목천으로 눈을 가리고  팬티만 남긴채 옷을 벗기고 "관악서에서 오지않았느냐, 무슨 임무를 띠고 왔느냐"고 추궁했다. 학생들은 그후 정씨에게 학생훈련복을 입혀 손을 뒤로 묶어 사무실 바닥에 꿇어 앉히고 "정보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자백하라."며 주먹과 발길질로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가슴 등 다르를 구타하였다. 유시민군은 이곳에서 폭행을 지시한 후 27일 오전 5시30분쯤 철야 조사한 것을 확인하는등 감금폭행을 주도했으나 정보원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자 27일 낮 12시30분쯤 정씨를 버스정류장까지 안내해 풀어주게했다. 정씨는 28일 관악병원에서 전치 2주의 상해진단을 받고 입원중이다. 4.전기동씨 사건 전씨는 26일 오후 4시30분쯤 국제법 리포트를 작성하기위해 서울대에 잠시 들어갔다가 "잠깐볼일있다."는 학생 7~8명에 의해 학생회관 3층 총학생회장실로 끌려갔다. 이곳에서 유시민, 백태웅, 윤오중 군등이 전씨의 소지품을 뒤져 주민등록증과 방송통신대학증을 확인했다. 학생들은 "너 소속이 어디냐, 기관원이지"하며 추궁 전씨가 계속 "방송통신대학생"이라고 하자 "안되겠다" 면서 오후 5시쯤 총학생회장실과 같은층에 있는 서클 연합회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이곳에서 4~6명의 학생이 플래카드로 사용했던 나일론천을 찢어 전씨의 눈을 가리고 의자에 앉혀 양손을 의자뒤로 묶은 다음 주먹과 발길질로 무수히 구타하면서 자백을 강요했다. 전씨가 완강히 거부하자 학생들은 다시 전씨를 화장실로 끌고가 자갈과 숟가락으로 입을 벌려 주전자로 입과 코에 물을 퍼붓고 세면대 물통에 얼굴을 쳐박아 숨을 못쉬게 하는등 고문을 계속하였다. 그래도 자백을 하지 않자 복도로 끌어내어 시멘트 바닥에 꿇어 앉힌 뒤 양무릎 안쪽에 각목을 끼워놓고 위에서 밝는등 고문을 계속했다. 다음날안 27일 밤 10시까지 29시간 반동안 이같은 감금 폭행을 해 전씨가 실신상태에 빠지자 학생들은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학교직원들에게 연락, 직원3명이 들것으로 전씨를 앰뷸런스에 실어 관악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병원측은 혈변증세로 전씨의 상태가 악화되자 28일 오후 서울대 병원으로 옮겼다 ■당시 피해자들의 서울대 출입동기(본인진술) ▶임신현씨는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끝내고 84년도 대입학력고사에서 총점 2백92점을 얻어 서울대 경영대에 지원했다가 불합격된후 서울법대를 목표로 재수중이다. 임씨는 늘 서울대를 선망하여 금년들어 3~4회 서울대 캠퍼스를 드나들었으며 사건당일인 9월17일 오후에는 경영대에 재학중인 친구를 만날겸 서울대에 갔었다. ▶손영구군은 서울D공고를 졸업, 학력고사성적 1배45점을 얻어 진학을 포기했으나 중학 2학년때부터 다시 다니는 신당성당 교유들에게 서울대 법대에 입학 하겠다고 속였다가 돌이키지 못하고 가짜 서울대생 행세를 했다. 손군은 금년들어 40여차례나 서울대에 출입했고 사건당일에도 서울법대 앞에서 배회했다. ▶정용범씨는 7급행정직 공무원시험준비를 위해 서울대에 출입하면서 공기좋고 조용한 연못앞에서 수험공부를 했으며, 지난7월부터 3차례정도 서울대에 출입했다. ▶전기동씨는씨는 82년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서울법대에 지원했다가 불합격한 후 방통대에 입학, 그해부터 사법고시 준비를 위해 지면이 있는 교수로부터 고시공부에 필요한 참고도서를 추천받고자 서울대에 가끔 출입해오고 있었다. 미래한국  2006-01-06 오전 9: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