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복합소재 세계 최강 '데크'
국내·국제 특허 69건 부품 기술개발 '한우물' 파
올 매출 300억대 '흑자행진'
☞ 탄소복합소재
탄소섬유를 이용한 만든 각종 소재를 총칭하는 말로 강도가 강철보다 5배 강하면서 무게는 30% 이상 가벼워 항공기 기체, 전차, 풍력발전기 날개 등에 쓰인다. 섭씨 3000도 이상의 고온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엔진 부품·브레이크 디스크·연료탱크 등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최신예 전투기 F-16, 미국 보잉의 초대형 여객기 보잉787, 독일 수퍼카 제작업체 루프사의 400마력급 최고급 스포츠카….
현존하는 이런 '최고의 기계들'에 종업원 160명인 한국 업체 데크의 부품이 들어 있다.
데크는 탄소복합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제품을 가진 강소(强小)기업이다. 이 회사가 탄소복합소재로 만드는 항공기 브레이크 디스크는 전 세계적으로 5개 회사만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중형차 200대 무게인 F-16의 경우 시속 300㎞로 착륙할 때 브레이크 온도가 섭씨 2000도까지 올라간다. 이 온도를 견디는 소재는 탄소복합소재가 유일하다. 2008년에는 최고급 자동차에 들어가는 탄소세라믹 브레이크를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했다. 이런 공로로 데크는 지난 5월 발명의 날에 지식경제부장관상을 받았다.
지난 10일 창원시 성주동 데크 본사로 들어서자 '국내 특허 52건, 국제 특허 17건'이라고 쓰인 '특허 전광판'이 눈에 띄었다. 안내를 맡은 이 회사 신현규(37) 부장은 "보험회사가 판매실적 기록하듯 특허 보유 상황을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 ▲ 10일 경남 창원 데크 본사에서 김광수 사장(왼쪽에서 네 번째)과 직원들이 F-16 전투기에 들어가는 탄소 브레이크 디스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데크는 2001년 11월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일하던 김광수(51) 사장이 직원 20명과 함께 차린 회사다. 김 사장은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대우중공업 항공연구소에서 근무한 연구원 출신. 1988년부터 10년간 국방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탄소복합재 연구개발을 주도했다.
그가 창업한 이유는 "한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다. 김 사장은 "탄소복합소재는 강철보다 강하면서도 무게가 가벼워 전방위로 활용할 수 있는 미래 소재"라며 "하지만 한국항공우주산업은 비행기를 조립 생산하는 회사라 탄소복합소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회사를 설득해 첨단복합재센터를 별도 회사로 분사시켰다. 처음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일부 지분을 갖고 있었으나, 나중에는 김 사장과 임직원들이 그 지분을 모두 인수해 완전 독립했다.
김 사장과 창업 동지들은 퇴직금을 회사 설립 자금으로 털어 넣고, 아파트를 은행 담보로 내놓을 만큼 창업에 모든 것을 걸었다. 데크 창립 멤버인 신현규 부장은 "퇴직금은 모두 회사에 털어 넣고 월급도 한국항공우주산업 때보다 20% 이상 줄어 월급날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데크가 창업 초기 5년간 매년 사원 부인들을 상대로 사업 설명회를 연 것도 그런 불만을 덜기 위해서였다.
◆성공방정식=기술 투자+제품 다변화
기술은 있지만 돈이 없는 데크는 '포도송이 전략'을 택했다. 포도송이 전략은 김 사장이 만든 말이다. "줄기 격인 탄소 소재 기술 개발에 연 매출의 15~20%를 투자하고 이를 바탕으로 응용제품을 포도송이처럼 다양화하는 겁니다."
원래 이 회사의 '주 종목'은 전투기 바퀴에 들어가는 브레이크 디스크. 하지만 데크는 탄소복합소재 기술을 응용해 제품을 비행기 날개, 자동차 브레이크 등 20여종으로 늘렸다.
2006년 데크는 또 한 번의 모험을 감행했다. 보잉787 여객기의 날개에 들어가는 탄소 소재 부품 제작에 뛰어들었다. 설비 투자만 최소 100억~150억원이 드는 사업이지만 당시 데크의 매출은 100억원에 불과했고 땅도 돈도 없었다. 김 사장은 "잘못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회사 안팎의 우려에도 참여를 결정했다.
"유가가 오르고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가 확대되면 앞으로 비행기는 금속 부품 대신 탄소 소재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큰 시장을 열 사업인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결국 2006년말 산업은행에서 투자금을 유치해 보잉787 사업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올 3월에는 미국 항공기 부품공급업체인 SIA와 1000만달러(약 128억원)어치 납품 계약도 맺었다. 김 사장은 "일반적으로 3~4개월 걸리던 공정기간을 절반으로 줄여 외국의 대기업들과 승부하고 있다"며 "에어버스와도 납품 협상이 마무리 단계"라고 말했다.
데크는 창업 이래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첫해 50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300억원대를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임원들의 아파트는 은행 담보에서 빠졌지만 김 사장의 아파트만 여전히 담보로 잡혀 있다. "연봉 1억원 이상을 받는 직원들이 나오고, 세계 최고의 탄소 소재 부품 기업이 될 때까지는 계속 투자를 유치해야 하니 그전에는 어렵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