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연평해전은 우리 함정의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도 북한 해군에 일방적으로 승리한 해전이었습니다.”
박정성(61) 전 2함대사령관이 15일 제1연평해전 10주년을 맞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1차 연평해전 당시 2함대 사령관으로 북한 해군과의 전투를 총지휘했던 박 전 사령관은 “우리 장병들이 북한의 도발에 피 흘려 싸워 이겼지만 햇볕정책 때문에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 해군의 도발로 시작됐으나 우리 해군이 14분 만에 일방적으로 승리했었다.
그는 “당시 북한의 도발은 몇 달 전부터 예상된 상황이었다”면서 “그러나 해군은 ‘선제사격 절대 금지, 확전 금지, 서해 북방한계선(NLL) 고수, 슬기롭게 대처’라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작전 지침에 따라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였다”고 말했다.
이 지침으로 우리 함정이 북한의 해안포와 대함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가 있어 피격될 상황이 발생할 뻔했다고 그는 말했다. 박 전 사령관은 “당시 교전 후 우리 함정을 안전한 해역으로 피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상급지휘관은 함정을 NLL 부근으로 재배치하라고 해 다투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모호하기만 한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현장 지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지침이었다”고 그는 토로했다.
전투 직전 청와대·합동참모본부·해군본부·작전사령부 등에서 2함대사령부를 순시하고 갔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네 가지 작전지침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고위층은 ‘사령관이 알아서 하라’며 상황을 회피하는 분위기였다고 그는 밝혔다. 단지 국방장관(조성태)만 박 전 사령관에게 매일 저녁 전화를 걸어 조언해 주었다고 한다.
1차 연평해전서 이기고도 2차 때 6명 희생된 건
이제 전쟁은 없다는 당시 정부의 안이함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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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연평해전 승전 10주년 기념행사가 15일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렸다. 해군은 최근 서해상의 긴장과 관련해 “적 도발 장소가 침몰장소가 되도록 현장에서 격멸할 것”을 다짐했다. 기념식 뒤 서해 NLL 남방 110km 해역에서 참수리호들이 항해하고 있다.[평택=김경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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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제1연평해전은 50년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최대 규모의 정규전이었다. 당시 북한은 김윤심 서해함대 사령관이 연평도 북쪽 전투부대인 8전대로 내려와 직접 지휘를 했다. 북측은 1차 선제 공격에 이어 2, 3차의 공격을 위해 80여 척의 함정을 대기시켰지만 1차전에서 완패하는 바람에 확전을 하지 못했다. 우리 2함대도 당시 소속된 20여 척의 함정을 모두 동원했다고 박정성 전 2함대 사령관은 기억했다.
당시 박 전 사령관은 “북한이 96(강릉 무장공비 침투)∼98년(동해안 잠수정 침투)까지 연속적으로 동해에서 도발해온 만큼 99년엔 서해에서 다시 도발할 것”이라는 분석을 했다 한다. “그러나 98년 김대중 정부의 집권과 함께 강조된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군이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6월 9일 북한 해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10㎞ 이상 내려와 450t급 함정으로 190t인 우리 고속정을 들이받아도 2함대로선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박 전 사령관은 “군으로선 북한의 예상 도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장병들에게 야간까지 교육과 훈련을 실시하며 조용히 대책을 마련하는 것 외엔 다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투가 발생한 15일 오전 6시부터 북한 함정들이 신속하게 내려오자 ‘올 것이 왔다’고 판단했다”면서 “모든 함정에 대해 록온(lock on) 상태를 유지하고 북한 함정이 한 척이라도 우리에게 공격하면 즉각 격파사격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록온은 함정의 포신이 적을 향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함포가 발사되는 상태다. 북한이 먼저 사격해 오자 우리 함정들은 포신이 레이더 지시에 따라 북한 함정을 자동으로 겨냥해 사격하는 사격통제 시스템을 활용,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 박 전 사령관은 “이렇게 1차 연평해전에 이기고도 3년 뒤 2차 연평해전에서 북한 함정의 공격에 우리 장병 6명이 희생된 것은 ‘이제 전쟁은 없다’는 당시 정부의 북한에 대한 안이한 판단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박정성(61) 전 2함대 사령관=해사 25기 출신으로 전형적인 군인이다. 해군 주력부대 중 하나인 작전사령부 소속 5전단장을 지내 해군 작전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서해안에서의 오랜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2함대 사령관이 됐다. 1차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뒤 주변의 견제가 심해 사령부 내에서 관사와 테니스코트·목욕탕만 맴돌았다고 한다. 2함대 사령관을 마친 뒤 해군본부 정보작전 참모부장과 군수사령관을 마지막으로 2004년 전역했다. 전역 후 참여정부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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