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시스템클럽홈피 http://www.systemclub.co.kr 에 있는 글임.
Name
지만원
Subject
문제는 유시민이 아니라 이종석!
이종석과 임동원은 단짝
앞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종석이 좌우할 모양입니다. 48세에 불과한 그가 드디어 전면에 나타나 통일원 장관직과 NSC위원장 직을 거머쥐고 반미-친북을 넘어 소위 '반미-자주 통일'의 종착역을 향해 질주할 모양입니다.
국방장관이나 국정원장의 처지가 애처롭다는 정서가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존망이 그의 손에 좌우된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납니다.
유시민은 그냥 애송이일 뿐입니다.
저는 이종석씨를 여러 차례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세미나에서 만났고, 그리고 북경에서 열린 3박4일 단체 세미나에 가서도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저와는 나이 차이가 워낙 많았고, 그가 그다지 마음에 와 닿는 발표를 한 것 같지도 않아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강원용 목사님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발표자로 갔습니다. 제가 임동원의 햇볕정책의 위선을 열거하면서 임동원은 북한과 한편인 사람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좌중의 모두가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종석이 얼굴이 붉어질만큼 화를 내면서 어떻게 통일원 장관을 좌익이라 하느냐며 제게 대들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그 때 눈치를 챘습니다. 그 후 그는 언론에 의해 극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조선, 동아, 중앙이 그에게 무한한 지면을 주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방송도 그의 독무대를 만들어 주는 듯 했습니다. 이래서 조선-동아-중앙 일보도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전격적으로 NSC에 들어가 대북문제, 대미 문제를 좌지우지했습니다. 대통령을 이끌고 가는 것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종석이 실세, 김정일은 그를 중용할 것같다
송두율의 내재적 접근론의 수 제자, 국보법 철폐, 대미 적개심, 주적표현 사용금지, 장병에게 대북적개심 주입금지, 군사분쟁시 북한편들기, 휴전선 선전도구 철거, NLL근방에 공동어로 설치 등의 행적에서 그는 반미-친북 노선을 분명히 했습니다.
옛날 방정희 시절, 대통령이 알아주는 대령에겐 장군들도 잘 보이려 했습니다. 이는 박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 세태의 문제입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종석은 좌익계에서 서열이 꽤 높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파워는 청와대를 능가할 것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정동영을 보십시오. 김정일을 만나고 온 것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겼습니까? 김정일이 남한을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김정일의 눈에 드는 사람이 실세가 되는 것입니다.
사례 1: 2004년 7월 이종석은 대통령을 움직였다. 인민군 말은 믿겠는데, 한국군 말은 믿을 수 없다
2004. 7.14. 16:12분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가 북한 서해의 돌출부인 등산곶을 출발하여 남하했다. 우리 해군은 즉시 1,200톤급 초계함(구축함의 축소판), 성남호를 보내 대응케 했다. 우리해군은 오후 4시 35-36간 핫라인을 통해 북한 경비정을 3회에 걸쳐 호출했고, 다시 4시40-50분간 4회에 걸쳐 호출-메시지를 보냈지만 응답이 없었다. 우리 해군이 송신한 내용은 “귀측은 해상분계선 1.2마일 전이다"(1차 무전). "0.3마일전이다, 북상하지 않을 시 발포할 것이다"(2차 무전).
이런 통신을 받으면서도 북한 경비정은 4시47분에 NLL을 넘었다. NLL을 넘으면서 북 경비정이 처음으로 남측에 무전을 쳤다. ”지금 내려가는 것은 우리 어선이 아니고 중국어선이다“.
4시52분, 우리 해군이 또 무전을 쳤다. ”귀측은 이미 NLL을 침범중이다. 방향을 바꿔 북상하지 않으면 발포한다”.
4시54분, 북 경비정이 NLL 이남 0,7마일(1.2km) 지점을 통과하자 우리해군이 2발의 경고 사격을 가했다. 이와 동시에 북한 경비정은 뱃머리를 북으로 돌려 달아나며 무전을 쳤다.
“지금 남하하는 선박은 중국어선이다. 남측이 NLL을 넘었으니 빨리 남하하라”.
4시56분, 북 경비정이 또 다시 무전을 쳤다.
“남측이 군사분계선을 1마일 침범했다. 빨리 내려가라”.
이상이 해군 작전 일지다. 이 상황일지를 군은 다음과 같이 축약하여 발표했다.
<군의 발표>
“7.14일 북한 경비정이 NLL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고, 함정 간 무선통신망을 통해 모두 네 차례 경고방송을 했으나 북측이 응답하지 않고 NLL을 넘어 0.7마일 남하하자 경고용으로 두 발의 함포를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측 전화통지문>
이러한 군의 발표에 대해 7.15. 북측은 한국군의 발표가 허위라는 취지의 전화통지문을 남북장성급회단의 북측 단장 안익산 소장(준장급) 명의로 보냈다.
첫째, 우리 측 상황일지에는 북 경비정이 처음으로 우리 초계함에 무전을 친 시각이 4시51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화통지문에는 4시41-45간 3회에 걸쳐 남측을 호출했는데도 불구하고 남측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호출시각도 허위이고, 남측이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도 허위다. 응답하지 않은 쪽은 북한이다.
둘째 북측 전화통지문에는 “남북이 제3국 선박을 우리 측 어선이라고 하면서 우리 수역에 남측 함정을 침입시켜 경고 사격하는 도발을 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는 무략전이다.
남북한 해군들간의 진실게임식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건수 잡은 NSC와 대통령, 한국군 매도>
북으로부터 전화통지문을 받은 NSC는 7.15. 오전, 대통령에게 북 경비정이 “지금 내려가고 있는 선박이 우리(북) 어선이 아니고 중국 어선이다”라는 무선 응답을 3차례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취지의 내용을 마치 새로운 사실이라도 밝혀낸 것처럼 보고를 했고, 대통령은 마치 건수 잡은 사람처럼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NSC와 대통령이 북한의 주장에 비중을 두고 한국군에게 공개적으로 매를 든 것이다.
조사가 필요하면 은밀히 조사를 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공개적인 조사지시로 인해 언론들은 마치 한국군이 북한에 대해 몹쓸 짓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매도했다. 공개적으로 코너에 몰린 군은 진상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밖에 없었다. 상황일지와 무전 내용들이 공개돼야만 70만 한국군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이 상황일지가 공개되자 한국해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북한이 장난질을 치고 허위사실로 한국해군을 모함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군의 바지자락 물고 안 놔주는 대통령>
조사결과와 확인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면 대통령은 우리 해군의 등을 두드려 주고, 북한에 대해 엄중 경고를 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모든 게 기분 나쁘다는 듯이 더 한층 분노하여 또 다른 트집을 잡아 군을 괴롭히고 있다.
“대통령이 대통령 같지 않아 보고를 누락한 것이 아니냐”,
”군이 고의적으로 언론에 비밀에 해당하는 교신내용을 흘려 청와대를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상황자료는 비밀분류 원칙에 비추어 절대로 비밀일 수 없다. 무엇이 무엇 대문에 비밀이란 말인가? 그런데도 대통령 측은 비밀이라며 억지를 부린다.
이상의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NSC와 대통령은 두 가지 사실에 기분 상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NSC가 북한 전화통지문 내용을 보고했을 때만 해도 군을 조사해보면 한국군의 잘못이 드러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조사결과 북한의 거짓말만 백일하에 드러나고 해군측엔 잘못이 없자 저들의 기분이 몹시 상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저들에겐 북한 경비정에 경고사격을 가하여 퇴각시킨 해군이 얄밉고, 북한의 거짓말들을 생생하게 밝혀낸 장군들이 얄미운 모양이다. 이번 사건에서 대통령은 한국군에 무언의 메시지를 각인시키려 하는 것 같다.
2004.6월 초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확성기 등 선전물을 제거키로 합의할 때도 사단장급 등 일선 지휘관은 물론 군 수뇌부도 “우리측의 유리한 ‘무기’를 일방적으로 양보한다”며 반대했으나 국가안보회의(NSC) 등 정권 수뇌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보여진 것은 이종석이 움직이는 NSC의 색깔이었다.
사례2: 병사들에게 적개심 고취 말라
2004년7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종석 사무처장이 최근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된 ‘2004년 무궁화회의’ 초청강연에서 각군 장성 70∼80명을 상대로 안보 관련 현안을 설명하면서 “병사들이 적개심을 갖고 철책선 근무에 임하는 것보다는 조국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 높은 시민의식을 갖고 근무에 임하는 것이 보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다.
사례3: 이종석의 어록
▲“북침인가 남침인가의 문제는 한국전쟁을 살펴보는 데 무의하다고 할 수 있다”
<90년 3월5일 한국정치연구회가 펴낸 북한정치론에서 이종석씨가 집필한 부분>
▲“북한의 거주이전*여행자유제한은 사회주의 특성과 남북군사 대치 하에서 택한 방어적 조치이다”
<90년 2월 사상문화운동>
▲“통일의 제1요건은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는 자주성확립과 평등의 존중이다”
<90년 3월 성균관대 학보>
▲“문민정부는 반공반북에 의존했던 수구냉전세력과 결별해야 하며 정권안보수단으로 이용돼 온 국가보안법 등 구시대적 반공반북관계법안은 폐기돼야 한다”
<94년 실천문학 봄호>
▲“김정일은 오케스트라 연주 중 특정 연주자의 반음착오까지 알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으며 종자론이라는 영화예술론까지 내놓을 정도로 문예이론도 상당한 수준이다.”
<94년 7월12일자 한겨레신문. 이 부분은 이후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 등에서 다시 반복된다.>
▲“휴전 이후 반세기 간 계속되는 긴장과 대립, 그리고 사건의 연속 속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한국정부나 미국이 잘해서가 아니다. 그 해답의 반은 김일성과 북한사회가 가지고 있다. 즉 그는 우리에게 무모하리만치 음모적이고 저돌적이며 강경해 보이지만 실은 전쟁을 두려워하며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분명한 것은 김일성에게는 상당한 외교적 수완과 역량이 있었다는 점이다.”
▲“광폭정치는 인민을 위한 정치는 그릇이 커야 하며 그릇이 크지 못하면 대중을 다 담아내지 못하며 대중이 정치를 외면하게 된다거나 로동계급의 당의 정치는 전체인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되게 하여야 하는 것인 만큼 어디까지나 정치의 폭이 넓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오늘날 김정일의 광폭정치는 대내적으로 주민단결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경제위기 속에서 북한이 남한기업인들은 물론 교포실업가들과 종교인 등을 북한으로 불러들이는 논리적 발판이 되고 있다.”
▲“김정일이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 권력핵심부 내에서 누구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인사정책을 써왔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러한 안정성은 그의 조직관리능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 미래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