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朴) 사업마다 천(千)의 그림자
박연차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규명하는 전(前) 단계로서 검찰이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박 회장 간의 '동업자'관계를 밝혀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전·현 정권의 유력 인사인 두 사람은 평소 경제적으로 상부상조하면서 위기에 처했을 때 상대방의 영향력을 십분 활용했고, 세무조사 무마 로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박 회장 부동산 거래마다 천 회장 개입 의혹
박 회장은 지난 정권에서 손대는 사업마다 승승장구했고 그때마다 천 회장의 그림자는 어른거렸다.
박 회장이 지난 2004년 경남 진해의 옛 동방유량 부지(13만여㎡)를 아파트로 개발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원래 그 부지의 주인이었던 사조산업은 아파트 개발을 시도했으나 고도 제한 때문에 사업을 포기했다. 박 회장은 그러나 이 땅을 562억원에 선뜻 사들였고, 천 회장이 이를 주선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다. 박 회장이 이후 고도 제한 완화를 성사시켜 수백억원대의 개발 이익을 얻었고, 천 회장도 모종의 대가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또한 박 회장은 2005년 정산골프장을 조성하면서 천 회장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조경석과 석재료를 구입했다고 한다. 박 회장이 운영하는 김해의 대형 음식점 진입로에도 대형 조경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검찰은 박 회장이 천 회장 소유의 돌박물관에서 구입한 조경석의 가격이 적정했는지, 이를 통해 천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이뿐 아니라 박 회장이 부산 경남 일대의 부동산에 투자할 때마다 천 회장이 그 과정에 개입해 경제적 이득을 봤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천·박 회장, 후계구도 확립 과정도 닮은꼴
두 사람 간의 석연치 않은 주식 거래도 그들의 '동업자'관계를 뒷받침한다. 천 회장은 2006년 이후 후계구도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자녀들의 계열사 지분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증여세 탈루를 위해 차명으로 계열사 주식을 보관하다가 다시 자녀들에게 넘겼고, 박 회장이 이를 지원했다는 단서가 검찰에 확보돼 있다. 박 회장뿐 아니라 박 회장 아들이 대주주로 있던 업체가 천 회장 계열사에 투자한 사실도 드러났다.
박 회장 역시 최근 2~3년 동안 자녀들에게 회사 이익을 편법으로 증여하려 한 정황이 이번 수사에 드러났다. 아들이 대주주로 있는 중국 현지 법인과의 정상적인 거래관계를 가장해 태광실업의 이익을 이전시키는 방법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또한 박 회장은 지난 2006년 로비를 통해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를 인수한 뒤 다른 사외이사를 해임하고 천 회장을 그 자리에 선임하기도 했다. 당시 천 회장은 휴켐스 주식 1만470주를 보유하다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4000여주를 매각하면서 이득을 챙겼다.
지난 2006년 천 회장이 국세청 세무조사 대상이 됐다가 박 회장의 도움으로 '선처'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로서 영향력이 막강했던 박 회장이 천 회장을 적극 도왔으며, 두 사람 처지가 뒤바뀐 지난해에는 현 정권의 '실세'인 천 회장이 박 회장 구명에 나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