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채진 검찰총장/연합뉴스
노(盧) 신병처리 차일피일
노(盧) 조사 중에도 전화 돌려 "차라리 투표하자" 반발
임채진 검찰총장이 검찰 안팎의 여론을 수렴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노무현 전 대통령 신병처리(구속·불구속)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등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모습을 보이자 일선 검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일부 검사들은 "임 총장이 검찰청법에도 없는 여론수렴이라는 형식에 기대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시키려 한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조사받던 그 시간에도 '여론 수렴'
임 총장의 이른바 '여론 수렴'은 노 전 대통령이 대검 청사에 소환된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수부 수사팀이 대검 청사 11층 특별조사실에서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피를 말리는 조사를 벌이는 바로 그 시간에, 임 총장은 일선 간부들에게 전화를 걸어 "노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피의자 소환 조사도 끝나기 전에 수사팀을 지휘하는 최고 간부가 수사진행 상황을 모르는 일선 간부들에게 수사절차상 가장 중요한 신병처리 문제를 상의한 셈이다.
그날 이후에도 임 총장은 고검장과 지검장은 물론, 평소 친분이 있는 지청장급 중간 간부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검찰 내부가 분열되고 큰일 난다"면서 자신의 심중을 드러내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차라리 투표로 결정하자" 반발
임 총장이 내부여론을 수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결정을 미룬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최근 상황에 대한 검사들의 불만은 어느 때보다 거세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검찰이 무슨 위원회 조직이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이유가 합당한지 법률적인 판단만 내리면 되는 것이지 검찰이 언제부터 여론을 수렴해서 결론을 내렸느냐"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청법에는 엄연히 총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도록 돼 있다"면서 "그토록 여론이 중요하다면 차라리 전국 검사들을 상대로 투표로 구속·불구속을 결정하자"며 반발했다. 또 다른 검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는 중수부 수사팀을 포위하고 압박하려는 의도마저 읽힌다. 지난 10년간 검찰 상층부가 뼛속까지 정치검찰이 된 것 같다"며 개탄했다.
임 총장의 전화를 받은 검찰 간부들 중 절반 이상은 임 총장의 불구속 기소 의견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과 신상규 광주고검장은 원칙에 따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불구속 수사를 의중에 둔 검찰총장이 OX로 묻는데 누가 구속영장을 청구하자고 주장하겠느냐"고 했다.
◆"임 총장이 검찰 분열시켜"
검찰 안팎에서는 임 총장이 검찰 지휘부와 일선 검사들의 '균열'을 자초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지방검찰청의 한 간부는 "임 총장이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의중을 드러내는 바람에 노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문제를 둘러싸고 검찰 조직이 쪼개지는 조짐마저 나타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는 "총장은 침묵을 지키다가 결단을 내리고 검사들에게 그 결정을 명령하는 자리인데…."라며 임 총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일부 검찰 출신 법조인들은 평검사들의 집단적 반발을 의미하는 '검난(檢亂)'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앞으로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