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지기(知己)' 특별조사실서 1~2분 짧은 만남
검(檢), 100만달러 사용처 묻자
노(盧) "집에 물어봐야 한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3번째 재직 중 비리혐의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10시간의 조사시간 동안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혐의를 계속 부인했다고 한다.
대검 청사에 출두할 때와 귀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은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취임 초인 2003년 3월 검사들과 벌인 '검사와의 대화'에서 임기응변과 능수능란한 화술로 검사들을 압도하던 '토론의 달인'을 연상했던 검찰관계자들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1120호 특별조사실의 '노무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도 곧 '파란 옷' 입지 않겠느냐"
노 전 대통령은 30일 밤 11시20분, '둘도 없는 후원자'에서 '비극적인 운명의 상대'로 변해버린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만났다. 1~2분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파란색 수의(囚衣) 차림으로 조사실에 들어온 박 회장을 보자, 의자에서 일어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라며 악수를 청했다. 두 사람은 각각 뒷짐을 지고 선 채로 대화를 나눴다.
박 회장이 먼저 "우리가 20년 넘는 지기(知己)인데 대질까지 해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사실을 말할 용의가 있으니, 대통령께서도 사실대로 털어놓으시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대질신문은 내가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라고 말을 받으면서, "저도 곧 박 회장님처럼 '파란 옷'을 입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인 박 회장이 입고 있던 수의를 지칭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에게 "자유로워지면 만납시다"라고,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건강 유의하십시오"라는 안부인사도 서로 교환했다고 한다.
◆"집에 물어봐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모른다"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검사의 신문에 혐의를 부인하는 취지에서 나온 답변들이다.
노 전 대통령이 가끔 사용한 말이 또 있었는데, 바로 "집(권양숙 여사)에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박 회장이 2007년 6월 말 건넨 100만달러의 사용처 및 돈 전달 경위, 노 전 대통령 부부가 하나에 1억원짜리 명품 피아제(Piaget) 시계 세트를 회갑선물로 받은 경위 등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은 답변이 나왔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100만달러'에 대해, 검찰 출두 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저의 집(권 여사 지칭)이 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인규 중수부장 "고생하셨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기 직전, 노 전 대통령과 녹차를 나누며 조사에 성실히 임해달라고 부탁했던 이인규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이 귀가하기 직전인 1일 오전 2시10분쯤 1120호 특별조사실로 올라와,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고생하셨다"고 응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 도중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검사 앞에서 조사받을 때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고개를 아래로 숙이는 일이 없었다고 검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가 80여쪽에 달하고, 노 전 대통령과 변호인들이 자구(字句) 하나하나씩 꼼꼼히 검토를 하면서, '조서 검토'에만 무려 3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