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서 보고 검(檢) '부글부글' "노(盧)체면 봐주려다 농락당해"
'피의자 노무현'으로 규정 부족한 조사시간이 문제
오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앞둔 검찰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방어논리'를 깨뜨릴 수 있는 '무기'를 점검하느라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26일 브리핑 첫머리부터 노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했다. 홍 기획관은 맨 처음 소환 일정(30일 오후 1시30분)을 발표한 뒤, 노 전 대통령이 제출한 답변서를 거론하면서 "답변의 취지는 '피의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는…"이라고 했고, 이어 재차 "노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이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답변서에 관한 홍 기획관의 언급에서도 검찰의 불만이 가득 묻어났다. 홍 기획관은 "해명이 포괄적으로 와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답변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저희가 맨 마지막에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을 기재하라고 했더니 '피의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부분에 상당부분(전체 A4용지 16장 중 5장)을 할애했다"고 하기도 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의 예우와 시간 단축 차원에서 '서면 조사'를 진행했는데, 노 전 대통령의 답변내용이 무성의하거나 자기 하고 싶은 주장만 늘어놓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소환조사라는 본게임에 들어가면 노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에 걸맞게 대우할 것으로 보인다.
- ▲ 입 꽉 다문 검찰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 일시가 결정된 26일, 홍만표 대검찰청 수사 기획관이 이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검찰 일각에선 이 때문에 "괜히 서면 조사 카드를 꺼냈다가 노 전 대통령에게 '농락'만 당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페이스에 말려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체면 봐주려다가 검찰이 망신을 당할 판이라는 것이다.
이날 수사팀은 휴일임에도 전원 출근, 노 전 대통령의 답변서를 검토하는 등 긴박하게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자택에서 수시로 수사팀의 전화 보고를 받았으며, 소환 일정과 관련해선 수사팀의 건의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한달 가까이 계속된 '노무현·박연차 커넥션' 수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할 카드를 축적해 왔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상식이라는 기초 위에 수사팀이 확보한 정황증거들로 단단한 벽을 만들어 노 전 대통령이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자백(自白)까지 기대할 수 없더라도, 노 전 대통령 진술의 허점을 하나씩 파고들어 각개격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사시간이 한정돼 있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기소가 유력해진 상황에서 조사가 검찰 페이스대로만 흘러가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게 적용할 '포괄적 뇌물죄'와 관련한 혐의를 크게 3가지로 추려 놓고 있다. 이 3가지는 ▲2007년 6월 말 박 회장이 준 100만달러 ▲2008년 2월 박 회장이 건넨 500만달러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2005~2007년 빼돌린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 등이다.
'600만달러'에 대한 수사결과는 "노 전 대통령 요구로 준 돈"이라는 박 회장의 진술 등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 요구→박 회장 전달→노 전 대통령 가족 사용'이라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국고 횡령 12억5000만원은 정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진술하지 않는 이상 노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에, 박 회장이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 회갑선물로 줬다는 1억원짜리 피아제(Piaget) 시계 2개를 뇌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