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문씨 혼자 했는지도 의문 결국 노(盧) 전(前)대통령에게
갈 돈
노(盧)측 "모르는 일"… 납득 안돼
기업인(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한 '권력형 비리' 수사에서 시작된 이번 사건은 지난 정권 책임자들의 부도덕성과 파렴치함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제 관심은 지난 정권 청와대에서 벌어진 국고 횡령 행위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단독 플레이냐 아니냐로 모이고 있다.
◆정상문 단독 플레이?
지난 정권에서 4년 넘게 청와대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역할인 총무비서관을 지낸 정상문씨는 대통령의 국정 활동에 들어가는 예산인 특수활동비를 빼냈고, 이 돈을 무기명 채권인 양도성예금증서(CD)로 바꿨다가 다시 현금화해서 차명계좌에 넣는 수법으로 치밀하게 세탁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씨는 특수활동비에서 고정경비로 지출되는 비용을 빼고, 대통령만 사용할 수 있는 부분에 손을 댔다"고 말했다.
때문에 정씨가 과연 혼자서 일을 저질렀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씨가 비록 대통령 비서실의 돈 관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일을 독자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했을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검찰 조사결과 정씨는 세탁을 거친 특수활동비를 차명계좌에 집어넣은 뒤 몇 년간 사실상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었다. 정씨는 왜 그랬는지에 대해,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 주려고 했다"고 검찰에 말했다고 한다.
- ▲ 21일 밤 11시30분 대검청사에서 나온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구속 수감되기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대통 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횡령하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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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노 전 대통령 또는 노 전 대통령의 가족이 이 돈의 주인이며, 정씨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자금 조달책이었다는 말이 된다.
정씨는 "노 전 대통령은 모르는 일"이었다고 버티고 있지만, 돈의 주인이 자기 돈이 어디에 어떻게 보관돼 있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막후 통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12억5000만원이 전부일까
검찰은 정씨의 구속영장에서 정씨가 대통령 특수활동비에서 빼내간 돈이 2005~2007년 3년간 12억5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금액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씨가 총무비서관으로 재직한 4년여 동안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로 배당된 액수는 800억원이 넘고, 대통령 몫으로 배정된 것만 따져도 그 절반가량인 400억원 이상이다. 정씨가 관리한 2~3개 차명계좌에서 12억5000만원을 찾아낸 검찰은, 또 다른 차명계좌에 은닉한 돈이 더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영수증도 필요 없는 돈인 특수활동비의 성격상, 전체적으로 얼마가 지출됐는지는 오직 정씨와 극소수의 청와대 경리직원들만이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시 청와대 경리직원들을 잇달아 소환 조사 중이다.
◆盧측,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국고 횡령죄는 일반 회사직원에게 적용되는 업무상 횡령죄보다 훨씬 처벌이 무거운 범죄로, 횡령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엔 법정형량이 '무기(無期)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한다.
노 전 대통령측은 정씨의 국고 횡령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느냐"며 노 전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차단하고 나섰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 전 비서관의 변호인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하더라"라면서 "사실이라면 대단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얘기지만 아직은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