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檢) "짜맞추기 각본 진술"
500만달러 실제 주인도 건호씨로 드러나는 등
노(盧)의 '프레임' 계속 무너져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조사라는 이번 수사의 정점(頂點)을 코앞에 두고, 권양숙 여사가 거짓말 진술을 한 사실을 공개하고 나섰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집사' 격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20일 청구키로 하는 등 9부 능선에서의 마지막 총공격 카드로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압박 전략을 선택했다.
박연차 회장이 연철호(36)씨에게 송금했던 500만달러의 실제 주인이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36)씨로 밝혀지는 등 처벌을 면하기 위한 노 전 대통령의 '프레임(frame·틀)'은 검찰의 고강도 수사로 잇따라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권양숙 여사의 거짓말
권양숙 여사는 지난 12일 부산지검에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2006년 8월 정상문 전 비서관으로부터 현금 3억원을 받았고, 2007년 6월 말엔 100달러짜리 1만장으로 된 100만달러도 받아서 내가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3억원은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 관용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박연차 회장에게 받은 뒤,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었다. 그러나 현금 3억원은 정 전 비서관이 차명 계좌에 넣어서 양도성 예금증서(CD) 같은 무기명 채권으로 바꿔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검찰의 자금 추적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당초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 처음 체포됐을 때 "100만달러와 3억원 모두 내가 쓴 것"이라고 했다가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을 통해 '저의 집(권 여사)에서 받은 것'이라고 하자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고 진술을 바꿀 때부터 의심을 가져왔다.
그러다 정 전 비서관이 1억5000만원씩이 든 돈 가방 2개로 3억원을 받을 때 관용차를 운전했다고 지목한 청와대 운전기사에 대한 조사에서 "그날 정 전 비서관 차를 운전한 적이 없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계좌들에서 뭉칫돈을 발견했다.
박연차 회장도 "100만달러는 노 전 대통령이 요구해서 준 것이지만 현금 3억원은 정 전 비서관에게 준 것"이라고 진술했었다.
이에 대해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19일 "권 여사가 허위 진술을 했으며, 외국이라면 전형적인 사법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측이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기획한 '각본'에 따라 권 여사와 정 전 비서관이 짜맞추기식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선 100만달러와 3억원 모두 권 여사가 받아 썼다고 하면 자신이 사법 처리를 피할 수 있고, 자신과 박 회장 사이에서 벌어진 '비밀들'을 모두 알고 있는 정 전 비서관 역시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윈-윈(win-win) 카드로 생각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무너지는 盧 전 대통령의 '프레임'… 정상문 입 열릴까?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계속 코너로 몰아붙이고 있다.
검찰이 권 여사의 거짓말을 전격적으로 공개한 것은 노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위한 준비 수순의 일환이다.
진술 짜맞추기는 법원이 구속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하는 이른바 '증거인멸 우려'의 전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 소환을 앞두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노 전 대통령이 그간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했던 해명과 주장들이 잇따라 깨져나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아들 건호(36)씨와는 전혀 상관없는 돈"이라고 했던 박 회장 돈 500만달러 중 300만달러는 건호씨가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엘리쉬&파트너스'사로 넘기는 등 건호씨가 500만달러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검찰이 한 차례 기각됐던 정상문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20일 재청구키로 한 것은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조사가 노 전 대통령 본인 소환조사로 이어지는 징검다리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받아 개인적으로 쓴 3억원 이외에도 10억원 정도를 기업인들에게 더 받은 부분을 집중 추궁해서,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규명할 방침이다.
정 전 비서관의 진술에 따라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몫으로 건넸다고 진술한 600만달러의 대가성 문제 등이 규명되면,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 입증이 보다 명확해질 수 있다.
정 전 비서관은 여전히 "돈 문제는 노 전 대통령과 상관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이 "내 친구"라고 했던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정 전 비서관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