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대통령부인 예우…서울로 소환 않

고 검사 2명 부산 보내

11시간 동안 조사…權여사 “힘들다” 토로

“100만 달러와 3억 원은 내가 남편 모르게 빌린 돈이다.”

토요일이라 적막감만 감돌던 11일 부산지검 10층의 특별조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사진)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에게 2006년 8월과 2007년 6월 말 각각 건넨 3억 원과 100만 달러에 대한 검사의 신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권 여사는 원금과 이자, 상환 기간이 적힌 차용증은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그 돈을 누구에게 빌려서, 누구에게 갚았는지에 대한 검찰의 신문에도 권 여사는 “밝힐 수 없다”며 버텼다. 검찰은 권 여사가 ‘미처 갚지 못한 빚’을 갚기 위해 박 회장에게서 돈을 빌렸다고 하면서도 돈을 빌린 경위와 원래 채권자 등에 대해 함구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견해다.

▽권 여사, 다 뒤집어쓰나=권 여사는 이날 오전 10시 반경 부산지검에 나와 지하주차장을 통해 승강기를 타고 곧장 특별조사실로 향했다. 8m² 크기의 특별조사실은 폐쇄회로(CC)TV 등 조사 내용을 녹음 녹화할 수 있는 장비가 갖춰져 있으며, 자체 보안장치가 설치돼 외부인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된다. 이 조사실은 2006년 노 전 대통령의 386 측근인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 전군표 전 국세청장 등이 조사를 받았던 곳이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 부인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권 여사를 서울로 부르지 않고, 사저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약 1시간 거리인 부산지검으로 소환했다. 권 여사에 대한 조사는 대검 중수부에서 파견된 검사 2명이 맡았다. 권 여사의 변호인으로는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입회했다.

권 여사는 자책감 등으로 검찰 조사 내내 몹시 힘들어했으며, 검찰은 권 여사가 조사 도중 간간이 휴식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권 여사는 조사가 시작된 지 11시간 10분 만인 오후 9시 40분경 집으로 돌아갔다.

▽권 여사의 석연찮은 해명=권 여사는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 7일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권 여사를 상대로 최초로 돈을 빌린 경위와 박 회장에게서 받은 돈을 누구에게 갚았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권 여사는 “밝힐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왜 달러로 돈을 받았는지도 물었지만 권 여사는 답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권 여사의 이날 진술은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 체포된 7일 오후 노 전 대통령 측이 “권 여사가 빚이 있어 박 회장에게서 부탁해 받은 돈”이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은 9일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도 ‘권 여사가 채무 변제에 돈을 썼다’는 내용만 간략히 적어 법원에 팩스로 제출했다.

▽남은 조사대상은 노 전 대통령뿐=검찰은 11일 권 여사를 조사한 데 이어 12일에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를 조사했다. 노건호 씨가 검찰 청사에 출석한 직후 10일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48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는 풀려났다.

이에 앞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막역한 고향친구이자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4년 넘게 대통령총무비서관을 지낸 정상문 씨를 7일 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지난해 12월에는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수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은 물론 부인, 아들, 형, 조카사위 등 일가가 박 회장과 관련된 사건으로 검찰의 줄 소환을 받은 셈이다. 단일 사건으로 전직 대통령과 그 부인, 아들이 한꺼번에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그 자체로 드문 일이다.

검찰로서는 ‘600만 달러 의혹’을 풀기 위한 마지막 절차만 남은 셈이다.

 앞으로 노건호 씨나 연 씨가 한두 차례 더 소환조사를 받더라도 마지막 남은 조사 대상자는 노 전 대통령밖에 없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 시기, 방법에 대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이르면 이번 주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할 방침이다.

그러면서 검찰은 “권 여사와 노건호 씨는 참고인 신분”이라고 했다. 사실상 600만 달러에 대한 책임 소재가 노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동영상 보러가기>

동아논평, ’가슴에 대못박은 노무현 전 대통령’

폭풍전야,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동아논평, ‘노무현 정권의 도덕적 파탄’

이광재, “식당에 간 적 없다” 혐의 부인

4월은 더 춥다는데…여의도 ‘박연차 한파’에 덜덜

검찰, “박연차, 정대근에게 250만 달러 추가 전달”

대검 ‘세종증권 비리’ 노건평·박연차 등 12명 기소

박연차 구속, 조세포탈 - 뇌물공여 혐의

노건평 씨가 박연차 돈 이정욱에게 직접 전달

‘세종證 비리’ 노건평 구속영장 발부

- ‘풀린 돈’ 힘으로 끓어오른 주가… 개미들 ‘화상 주의

- “중국의 엘리트 관리 무섭다… 존경스럽다”

- “장자연 문건 언론사 대표 2명 주내 조사”

- 동창회 때 친구들 못 알아보는 이유는?

- 자폐 딛고 선 ‘16세 베토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