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보도자료

제목 충격공개!! 김정일의 ‘對美 선제공격 시나리오’ (KONAS)
글쓴이 헌변 등록일 2006-01-02
출처 조회수 1114

다음은  KONAS    http://www.konas.net  에 있는 기사임. 입력 | 2006-01-02 오전 11:02:31   충격공개!! 김정일의 ‘對美 선제공격 시나리오’ written by. 김필재   美 본토 공격 목표, 수천 명의 정예 요원 중앙아메리카서 활동 중   한민련 등 美 본토 내 親北단체 北 해외 공작 팀과 직·간접적 연계 韓美日, 김정일 제거 실패하면 상상할 수 없는 재앙 맞이할 것 기자는 최근 前 북한 노동당 연락부 공작(工作) 조장 출신(차관급 대우)으로 70년대 말 귀순한 박 모씨와 접촉했다. 박 씨는 귀순 후 최근까지 국내의 모 공안기관에서 대북(對北) 방첩·보안 활동에 종사해왔다. 박 씨는 본지에 북한이 미국 본토 침공을 목표로 60년대부터 수백 명의 정예화 된 자폭 특공대와 외국인 용병(게릴라)들을 중남미에 집결시켜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북한의 對美 선제공격 시나리오'를 제공했다. 현재 이 문건은 美 정보기관이 입수해 분석과정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본지는 '북한의 對美 선제공격 시나리오'를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편집자주>   ▲북한은 미국 본토 침공을 목표로 60년대부터 수백 명의 정예화 된 자폭 특공대와 외국인 용병(게릴라)들을 중남미에 집결시켜온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북한의 군사과학기술 교육기관인 인민군 자동화대학(현재 김일군사대학)을 방문, 전투기술기재를 둘러보고 있는 김정일의 모습 “미국에는 102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일본에는 51기가 가동되고 있고, 한국에는 12기가 있다. 원자력발전소 1기가 공격을 받아 폭발하면 수소폭탄 105~180개분의 죽음의 재가 발생한다. 미국도 일본도 한국도 원자력발전소는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다. 조선에서 일어나는 다음 전쟁에서는 한국과 일본 미국이 전쟁터가 되어 원자력발전소와 주변 도시가 무차별 공격대상이 될 것이다”(김정일 장군의 통치전략, 통일여명 편집국, 2003, 63p) 북한의 ‘노동당 연락부’와 ‘통일전선부’, ‘작전부’에는 각각 해외공작 전담 부서들이 편성돼 있고 각 공작 부서들은 세계 각 국에 수많은 공작 거점을 확보하고 공작팀 단위로 거미줄 같은 공작망을 형성해 놓고 있다. 또한 미국 본토에는 조총련에 버금가는 親北 결사체로 ‘범민련 해외지역 본부’와 ‘한민련’ (민주민족통일한국인연합)이라는 거대조직이 결성되어 있으며 이들 단체들은 북한의 해외공작 팀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北, 60년대부터 제3세계 국가 좌익혁명 게릴라 교육·훈련 지원해와 미국 본토 침투를 목적으로 북한은 1960년대부터 수백 명의 정예화 된 자폭 특공대와 외국인 게릴라들을 미국 접경지역에 결집시켜왔다. 실제로 북한은 1960년대 중반 국제테러 주도국으로 등장하면서부터 제3세계 나라들의 좌익혁명 조직들과 연계 하에 수만 명의 외국인 게릴라들을 교육·훈련·지원해왔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 좌익 혁명조직과 북한과의 연계관계이다. -“파브리시오 고메즈는 1963년 소련 KGB가 패트리스 루뭄바 대학 장학금을 제공하면서 공작원으로 양성하고 훈련시켰던 강인하고 헌신적인 멕시코 인이었다…….(중략) 고메즈는 68년 평양으로 들어가 조선노동당 연락부와 인민군 국사정보 장교들과 협의했다. 군사정보 장교들은 고메즈가 몇 명의 다른 학생들과 함께 멕시코로 돌아가 총 50명에 이르는 혁명가들을 추가로 모집하도록 종용했다. 이러한 50명의 혁명운동 신병(新兵)들은 북한 내의 3개 단체들에서 훈련을 받았다. 각 신병들은 멕시코로 돌아가 새로운 신병들을 가르칠 지도자와 교관으로써 훈련되었으며 이 기구는 급속하게 확대되었다”(출처: 조셉 S. 버뮤데즈, Jr. 북한과 테러리즘, 1991년 150p)- ▲북한은 중남미 각국의 극좌 테러조직과 연계해 혁명수출 공작을 벌여왔다. 사진은 막스와 레닌의 사진을 들고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트민족해방전선'(FSLN)의 모습 북한의 이 같은 혁명수출(輸出) 공작은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과테말라, 니카라과, 우루과이, 파나마 등 기타 나라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 국가들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되는 나라는 코스타리카이다.  코스타리카 혁명가들에 대한 북한의 관여는 코스타리카 공산당-'인민 전위당'(PVP)에 대한 재정적 지원가 함께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다. 北, 니카라과-코스타리카 등 南美 각국 공산혁명 배후 조종 일례로 PVP 소속의 헤르난데즈는 71년 북한에서 혹독한 장교 교육 과정에 참가했으며 그곳에서 김일성을 만났다. 북한에서 고급훈련 과정을 마친 후 그는 니카라과에서 고참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 軍 교관이 되기 위해 중앙아메리카로 돌아왔다. 북한은 PVP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코스타리카 내에서 혁명을 고취하고자 했다. 1974년 6명의 북한 외교관들이 반정부 학생데모를 지도했다는 이유로 추방된 데 이어 75년 5월에 또 외교관 4명(김동은, 차평국, 박해부, 김희선 등 연락부 공작원들)이 추방된 사실도 있다. 코스타리카에서의 북한공작은 80년대를 통해 계속되었다. 1980년 그 수를 확인할 수 없는 코스타리카 인들이 북한에서 게릴라 훈련을 받았다. 94년 12월 대중세력(勢力) 총 서기(현재 인민역량당 총비서)이며 ‘라틴아메리카주체사상연구소’ 소장 호세 프란시스코 아길라르 불가렐리가 평양으로 대표단을 데려갔다. 그 후 87년 7월 북한 무기가 코스타리카에서 발견됐다. 한편 북한의 이 같은 혁명수출(輸出) 공작은 니카라과에서도 발생했다. 북한은 70년대 중반부터 니카라과 문제에 관여해왔다. 1979년 8월 '산디니스트민족해방전선'(FSLN)이 혁명을 일으켜 소모사 親美독재정권을 전복한 지 몇 주 만에 니카라과와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실제로 1970년대 말 북한에서 훈련된 기간요원들은 FSLN에 들어가 소모사(Somoza) 독재정권을 전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北 정권, 'PLO'-'ETA'-'붉은 여단' 등 각 국의 極左 테러조직과 연계 그 후 8월 21일 북한과 니카라과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80년 4월 내무장관 보르그가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하고 군사지원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장래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그리고 온두라스에서 니카라과가 지원하게 될 공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북한은 니카라과 정부에 군사적·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지원을 계속 제공했다. 군사적 지원은 무기에서 초계정, 군사고문 팀에서 조종사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대해 미군 위컴 참모장 위컴(John A. Wickham) 장군은 1984년 2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북한은 공산주의 블록에서 최고의 무기수출국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은 니카라과에 무기를 팔고 있다. 우리는 흉기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으며 포에 대해서 로켓 발사대를 가진 트럭에 관해서 초계정, 휴대용 무기, 군수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북한과 니카라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가장 불길한 양상은 니카라과 내에 수많은 국제 테러리스트 단체들이 존재하는데 있다. 이 단체들에 포함되는 것으로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단원들, 바스크 ETA(Euskadi Ta Askatasuna·자유조국바스크), 그리고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이탈리아의 극좌 테러단체) 등이다. 이러한 부대(部隊)들의 집결은 북한과 다른 단체들에게 새로운 접촉을 확립하고 장래 공작을 조종하는 전대미문의 기회를 제공했다. 1만 명의 '총폭탄특공대', 유사시 對美 침공 목표로 南美서 활동 중   이들 단체의 단원들은 니카라과를 통해 북한을 오갔을 뿐만 아니라 '산디니스트민족해방전선'(FSLN)이 주도하는 혁명과 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한 북한의 지원은 상당했다. 이 같은 사실은 1989년 7월 20일 니카라과 혁명승리 10주년 기념일을 축하하는 조선노동당의 성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겸 조선인민군 총 참모장 최광(1997년 2월 사망)은 "산디니스트 혁명의 승리는 니카라과 인민들의 유혈무력투쟁의 귀중한 성과였으며 라틴아메리카 인민들에게 왕성한 힘을 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중국 공안원 손 모씨는 북한이 1만 명의 '총폭탄특공대'를 중앙아메리카 지역으로 집결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사진은 훈련중인 북한군 특수부대의 모습   북한-니카라과 관계가 계속 확대되어 간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두 나라가 국제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그러한 지원에 기꺼이 협력했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처럼 멕시코,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는 북한이 양성한 수백 수천 명의 정예화 된 특공요원들과 외국인 게릴라(고용병)들이 활동하고 있다. 2002년 6월 1만 명의 '총폭탄특공대'를 중앙아메리카 지역으로 집결시키고 있다는 중국 공안원 손 모씨의 제보도 있었듯이 북한이 유사시에 대비, 미국 본토 공격을 위해 중남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특공요원들을 미국 접경지역으로 집결시키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기정사실이다.   美 국방정보센터(CDI), 北 10여 종 화학무기 5천 톤 보유 추정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역은 한반도 휴전선과는 달리 철책장애물, 지뢰밭도 없고 경계(警戒)밀도도 희박한 무풍지대나 다름없다는 것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비합법 특수전 전문가들이 미국 본토로 침공하는데는 문제 될 것이 없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과 '아웅산 사건', 'KAL858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못하는 짓이 없는 지구촌의 무법자들이다. 이들 자폭 결사대가 일정량(1Kg 정도)의 생화학 무기(탄저균 또는 살인가스)를 소지하고 미국 본토에 침투하게 될 때 엄청난 재앙이 뒤따르게 되리라는 것은 의문(疑問)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북한군이 신경성, 질식성, 구토성, 수포성, 최루성, 혈액성 등 10여 종의 화학무기를 5천 톤 규모로 보유하고 있다는 워싱턴의 한 연구기관(국방정보센터·CDI)의 발표 자료는 미국 국민들을 각성시키는 좋은 약제로 된다. 김정일은 핵미사일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법은 오직 김정일을 제거하는 수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남북경협(南北經協)등 김정일 독재를 부추기는 일체 외부 지원통로를 차단하고 김정일 독재체제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기 위한 對北 공작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 기회에 김정일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도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konas)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climb1@hanmail.net ▲북한의 훈련교관 해외파견 현황 -66년: 시리아 3차 중동전에 1500명(조종사 25명 포함), 가나 군사쿠데타 시 다수 파견 -67년: 월남 2개 비행연대 -70년: 시리아 전차병 200명, 조종사, 정비사, 53명, 미사일 요원 140명 -71년: 브라질 포르또 알레그레 게릴라 기지 설치, 교관 13명, 칠레 산디에고에 게릴라 훈련소 설치, 교관 다수 -72년: 월남 심리전 방송요원 다수, 남 예멘 게릴라교관 20명 -73년 팔레스타인 게릴라교관 70명, 캄보디아 군사교관 50명, 이집트 미사일 요원 30명, 조종사 50명, 아르헨티나 사파에 게릴라기지 설치, 교관 다수 파견 -74년: 이집트 격술교관 5명 -75년: 자이레 군사교관 125명, 시리아 공군교관 75명 -76년: 알제리아 게릴라 교관 다수, 레바논 내전 당시 특공대 투입, 가이아나 게릴라 교관 파견, 800명 양성(볼리비아, 우루과이, 콜롬비아로 침투), 로디지아 흑인 게릴라 훈련지도 -77년: 토고 게릴라 교관 50명, 라오스 게릴라 특공대 파견, 페루 소요사태 지도조종, 이디오피아 군사교관 파견, 민병훈련 지도, 리비아 군사교관 다수 파견 -78년 : 탄자니아 타보라에 혁명학교 설립, 게릴라 양성, 페루 게릴라 교관 파견지도 -79년: 스리랑카 게릴라 교관 파견, 4명 체포 -80년: 이란 군사교관 파견, 알제리아 게릴라 교관 파견, 인민해방전선 훈련지도, 파키스탄 군사교관(전차병과) 15명 -81년 니카라과 게릴라 교관 50명 -82년 레바논 게릴라 교관 300명(PLO 및 모슬렘지역에서 12000명 게릴라 양성), 이란 군사교관 90명 -83년 짐바브웨 게릴라 교관 130명 -84년~89년 볼리비아 게릴라 격술교관 40명 -89년~91년 기네비싸우 군사교관 48명, 수단 군사교관 60명, 베닌 군사교관 30명 -92년 시리아 군사교관 30명 ▲각 국의 게릴라 위탁교육훈련 현황 -66년~71년(중남미): 멕시코, 브라질, 페루, 칠레, 볼리비아, 우루과이, 과테말라 등 중남미 9개국 좌익 게릴라 1300여명 -66년~71년(중동): 이라크, 이집트, 시리아, 알제리, 수단, 리비아, 남예멘, 케냐, 콩고, 차드, 우간다, 중앙아프리카 기니아, 앙골라,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지역 17개국 좌익 게릴라 700여명 -69년: 케냐 인민동맹 게릴라 16명, 이디오피아 ELF 청년 게릴라 다수 -71년~74년: 소말리아 좌익게릴라 1500명 -72년: 팔레스타인 아랍게릴라 100명 -75년: 팔레스타인 아랍게릴라 25명, 자이레 현역군인 33명, 월남 공산게릴라 다수 -76년~77년: 태국 공산게릴라 55명 -77년: 페루 좌익게릴라 30명 -77년~79년: 폴리사리오 좌익게릴라 500여 명 -78년: 쿠바 군 고문단 다수, 과테말라 인민해방군 100명 -80년: 과테말라 인민해방군 다수, 엘살바도르 좌익게릴라 다수 -79년~80년: 팔레스타인 게릴라 70명 -83년: 그라나다 게릴라 45명 -86년~88년: 이라크 게릴라 120명, 우간다 게릴라 40명 -90년~92년: 팔레스타인 게릴라 240명 등 ▲자금지원 실태 -66년 베네주엘라 테러조직 FALN에 공작금 5만달러 -69년 케냐 정부전복 활동자금지원(게릴라 조직책 오티노에) -70년 브라질 해방혁명투쟁대에 5만 달러 -71년 인도 공산당 총선자금 150만 달러, 스리랑카 반정부게릴라에 자금지원(북한대사관 강제철수) -73년 볼리비아 좌파단체에 28만 달러, 파라과이 적색 혁명분자 로하스에게 18만 달러, 우루과이 사회당 좌익단체 34만 달러 -73년 아르헨티나 인민해방군(ERP) 등 2개 좌익단체에 70만달러 -77년 아르헨티나 중남미 과격단체에 160만 달러 -79년 팔레스타인 PLO 게릴라에 10만 달러   ▲무기지원 실태 -1969년도 。차드 : 반란군 지도자 알바시·타쿠에 다량의 무기 제공. 。이집트 : 대공포 100문 제공. -1970년도 。파키스탄 : 소총, 탄약 3500만 달러 지원. -1971년도 。파키스탄 : 중포 30문, 포탄 3500만 톤 지원. 。에티오피아 : 엔토리아게리라(분리 독립파)에 무기 제공. 。스리랑카 : 반정부 게릴라에게 무기 제공. -1973년도 。쿠멜 : 크메르 루주군에 75mm포100문 지원. -1975년도 。자이레 : 콩고 내란의 때, 어뢰정3 척, 소총 280정, 탄약, 고사포 지원. T72형 탱크 30대 제공. 。나미비아 : 인민 단결 기구에 무기 지원. -1976년 。시리아 : 미그 조종사 40명 파견. 。북 예멘 : 대전차포 50문, 자동 소총 2000정 지원. -1977년도 。가봉 : AK소총 60정, 경기관총 52정, 대공기관총 2500정, 박격포8문 제공. -1978년도 。시리아 : 무반동 총포, 대공포 300문 지원. -1979년도 。파키스탄 : 130mm포 20문, 포탄 15,000발 제공. -1980년도 。이란 : 전차, 대전차 유도탄 제공. -1983년도 。기아나 : 무기 및 탄약 6,000 톤 제공. 。이란 : 이란-이라크전쟁 발발시, 8억 달러 상당 무기 지원. 이때 북한군의 곡산포와 장사정포탄의 위력이 파악됨 -1984년∼87년도 。팔레스타인 : AK자동 소총 3,200정, 탄약 20톤 。이라크 : 고사 기관총 800 문, 방사 포200 문. 。가나 : AK 자동 소총 1000정, 탄약 4톤 -1988년∼92년 。파키스탄 : 고사 기관포 450문, 포탄 30톤. 。시리아 : 각종 폭탄 20톤. -2000년도 。필리핀 : 대공 병기와 포탄 제공. ▲북한의 親美정부전복 음모 개입사례 -1966년: 우루과이에서 북한의 통상대표부가 반정부 쿠데타를 조종한 혐의로 추방 -1969년 9월: 북한 해외공작원 케냐에서 인민동맹을 사주해 반정부투쟁을 배후 조종혐의로 추방 -1970년 9월: 콩고 주재 북한 대사 외 3명, 반정부 파괴활동에 가담하 혐의로 재판에 회부, 외교관계 단절 -1970년 11월: 우루과이 사회당과 그 산하 좌익 단체들에 무기 자금 지원, 게릴라 단체 통합 획책 -1972년 6월: 북한 대사 김영순, 카이로에서 반정부 데모 선동 혐의로 추방 -1973년 6월: 북한 공작원 김창본 외 3명, 칠레 반정부 게릴라 단체인 좌익 혁명운동(MIR)에 가담한 혐의로 추방 -1973년 5월: 북하 해외 공작원 4명, 코스타리카에서 반정부 학생시위 배후 선동혐의로 체포 -1975년 9월: 이집트 주재 외교관으로 가장한 북한 군사교관 한주경 반정부스파이단 '소크리사건'관련 혐의로 추방 -1979년 10월: 인도의 앗삼주 나가란드 지방 반정부 폭동사건 진압 시 북한 군사요원 4명 구속 -1982년 6월: 파나마 반정부 파괴활동 혐의로 북한 요원 5명 추방 -1982년 6월: 인도 내무성 북한 외교관 1명 대학생을 포섭공작 혐의로 추방 -1982년 7월: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의해 레바논에서 체포된 80여 명의 국제테러리스트 중 북한 공작원 24명 적발 2006-01-02 오전 11:02:3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