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일자 200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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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씨가 12년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 가족을 만나는 자리에서다. 1990년 사형 판결이 확정된 후 보름만에 특별사면된 김현희씨는 한때 책 집필이나 강연 등의 활동을 했으나 자신의 경호를 맡았던 전직 안전기획부(현재는 국가정보원) 직원과 결혼한 1997년부터 공식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특히 KAL기 폭파사건 조작설을 담은 소설이 출간된 2003년 말부터는 철저한 은둔생활을 해왔다. 김씨는 면담장 도착에서부터 출발까지 특급경호를 받았다. 오전 10시50분쯤 스타렉스 승합차를 타고 벡스코에 도착하자 건물 외곽에 대기하고 있던 사복차림의 경찰기동대 100여명이 2열로 도열했고, 승합차에 함께 타고 있던 경찰특공대원 3명의 근접호위를 받으며 면담장으로 들어섰다. 다구치씨의 장남 이즈카 고이치로(飯塚耕一郞·32)씨를 만날 때는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아들을 대하듯 애틋한 감정을 표시했고, 연방 손과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등 정이 많은 아줌마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김씨는 KAL기 폭파사건 조작설과 북한의 납치문제 등을 거론한 기자회견에서는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97년 결혼이후 공식활동을 중단한 이유에 대해 김씨는 “사회와 거리를 둔 채(KAL기 폭파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 유가족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조용히 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KAL기 폭파사건에 대해 “북한이 한 테러고, 저는 가짜가 아니다”고 말할 때는 목소리를 한층 높이기도 했다.
부산=김기현기자 ant735@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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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일자 200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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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고생 많았나…” 18년만에 모습 드러낸 김현희 |
김씨, 다구치 가족 만나 ‘北에서의 기억’ 등 전해 |
▲ 대한항공기 폭파범인 김현희씨가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씨 가족을 만나기 위해 부산 벡스코로 들어서고 있다. 김씨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것은 18년만이다. 부산 = 사진공동취재단 | | |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씨가 18년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이날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 한국이름 이은혜)씨 가족과 면담했다. 김씨는 이날 검은색 바지와 회색 스웨터, 검은색 니트 차림에 커트한 머리로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미모는 여전했다.
김씨는 이날 다구치씨의 오빠 이즈카 시게오(70·飯塚繁雄)씨와 장남인 이즈카 고이치로(32·飯塚耕一郞)씨를 만나 위로하고 지난 1980년대 당시 북한에서 다구치씨에게서 일어를 배웠던 기억과 추억을 이들에게 전했다. 김씨는 먼저 시게오씨와 악수를 나눈 뒤 시게오씨 소개로 고이치로씨를 만나 포옹을 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양손을 부여잡고 몇번씩 포옹을 했고 눈시울을 붉히며 일본어로 “만나서 반갑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등의 대화를 나누고 비공개로 1시간가량 다구치씨 얘기를 자세히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시게오씨는 김씨에게 이날 다구치씨가 납치될 시기인 1977년 일본에서 유행했던 인기음악CD와 손수건, 일본과자, 다구치씨의 가족사진, 북한피납자 가족자료, 고이치로씨를 주인공으로 다구치씨 납치사건을 다룬 만화 등 10여가지를 선물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특히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가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북한측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안내책자를 배포해 눈길을 끌었다. 납치문제대책본부는 ‘모든 납치 피해자들의 귀국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홍보물에서 “일본정부는 17명을 공식 납치피해자로 인정하고 있는데 북한은 12명 중 다구치씨 등 8명은 이미 사망했고 나머지는 납치한 사실이 없거나 이미 송환했다는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며 “향후 이번의 만남이 향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관심고조 등의 단초가 되길 빈다”고 말했다.
다구치씨는 지난 1978년 일본 도쿄에서 북한에 납치된 뒤 일어교사 등으로 북한에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즈카씨는 1세의 유아 때 어머니와 헤어졌으며 이후 외삼촌인 이즈카 시게오씨의 양자로 입적됐다. 그동안 이즈카 씨는 일본 외무성에 김씨를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부치는 등 면담성사를 희망해왔고 김씨도 다구치씨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왔다.
김씨는 일본언론사 기자에게 쓴 편지에서 “나도 북한에 그리운 부모님과 동생들이 있는데 다구치씨 아들이 유아때 어머니와 헤어져 그어머니와 아들이 얼마나 그리워 할지 눈물이 난다. 그 아들을 만나 내가 만났던 어머니 모습에 대해 얘기해 주고 싶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1987년 칼기 폭파사건이후 체포돼 국내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1990년 사면된뒤 1997년 결혼때 잠시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대중앞에 서는 것은 1991년 기자회견이후 18년만이다. 부산 = 김기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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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진상대책위 “김현희, 유족에 더이상 상처주지 마라” |
20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김현희 씨에 대해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는 “더 이상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주지 마라”며 강하게 경고했다.
이들은 12일 성명을 내고, 김 씨의 이번 기자회견이 북한과의 외교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에 불과하고 김 씨는 여기에 활용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속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살고싶다”며 과거사 규명을 위한 조사요구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던 김 씨가 갑자기 공개활동을 시작한 것이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민대책위는 김 씨에게 과거사 조사에 성실히 임해 유족들과 시민사회가 제기해 왔던 의혹들에 성실히 답할 것을 요구했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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