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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제목 '클린턴'으로 와서 '힐러리'로 떠나다 (조선일보)
글쓴이 조선일보 등록일 2009-02-21
출처 조선일보 조회수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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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으로 와서 '힐러리'로 떠나다
本紙 강인선 기자 1박 2일 동행취재
北 향해선 거침없는 발언 "역시 센 장관" 평가…
여대생들엔 꿈의 메시지 "도전을 두려워 말라"
"이루지 못한 일 후회하느니 그 시간에 할일 생각"
강인선 기자 insu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서울을 떠나기 직전 국내 여성언론인들 과 간담회를 마친 후 카메라 앞에 선 클 린턴 장관과 강인선 기자. /주한미대사관 제공
힐러리 클린턴(Clinton) 미 국무장관은 서울에 머무는 약 21시간 동안 두 가지 거센 바람을 일으켜 놓고 떠났다. 서울 땅을 밟기도 전에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후계자 문제를 언급해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더니, 도착 후엔 "꿈을 좇아 살라"는 메시지로 한국민, 특히 여성들의 마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필자는 클린턴 장관이 19일 오후 10시20분 방한해 20일 오후 6시45분 중국으로 떠날 때까지 모든 일정을 국내 기자로선 유일하게 동행 취재했다.

서울공항에서 클린턴 장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을 때 동승했던 국무부 기자 일행이 비행기에서 먼저 내렸다. 한 기자가 "정치인은 역시 다르다"며 혀를 내둘렀다. 라이스 전 장관이라면 '북한 내부 문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딱 잘랐을 후계자 문제에 대해 "북한이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거침없이 언급하더라는 것이다. 기자들은 클린턴 장관의 이 '놀라운 발언'을 전화로 송고했고, '서울발(發) 클린턴 뉴스'는 공식 일정이 시작도 되기 전에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북한의 리더십 혼란에 관한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키자 클린턴 장관은 외교부 기자회견에서 "이제까지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른 정보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다"라는 말로 일단 호흡을 조절했다. 그러나 클린턴 장관이 의도했든 안 했든 그의 '북(北) 후계 발언'은 한반도 정세를 크게 출렁거리게 만들었다. 그에게 얹혀 있는 정치적 무게 때문이다.

클린턴 장관은 20일 11시간 동안 한미연합사와 청와대, 외교부 방문 등 열 가지가 넘는 행사를 소화해냈다. 보좌진들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1년 넘게 미국 전역을 돌며 선거유세를 했던 초인적인 체력이라 그런지 힘들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오전 한미연합사에 도착한 클린턴 장관은 검은 코트에 빨간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한껏 부풀린 헤어스타일에 가지런한 이를 드러낸 환한 웃음은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본 그 미소였다. 주변에서 누군가 "오, 세상에 얼굴에 주름지는 모양도 늘 똑같아"라고 중얼거렸다.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나, 외교부에서 유명환 장관을 만났을 때도 그 미소는 변함없었다. 클린턴은 빨간색 재킷에 검은 바지 차림이었다. 2~3㎝ 높이의 굽 낮은 검은 구두를 신었는데 이 대통령과 나란히 서니 키가 비슷했다.

클린턴 장관은 훈련받은 외교관이 아니다. 라이스나 키신저 같은 국제정치학자 출신도 아니고 파월 같은 군 출신도 아니다. 그러나 8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시절 80여 개국을 방문하며 어깨너머로 외교의 감을 익혔다. 작년 민주당 경선 때는 '힐러리표 외교정책'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체험을 통해 쌓은 여유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학자이면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라이스 전 장관은 개념을 정확하게 짚어가며 강의하듯 말했다. 클린턴 장관은 큰 그림과 방향을 말한다. '검증 가능하고 완전한 비핵화'란 말을 할 땐 어쩐지 그 표현이 아직 자기 것이 안 된 듯 어색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듣는 사람을 바짝 긴장시키는 라이스와는 달리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대중과 호흡을 맞출 줄 아는 정치인의 태도다.

딱딱한 공식행사에선 드러나지 않았던 클린턴 장관의 재능은 이날 오후 2000여명의 여학생이 모인 이화여대 강당 무대에 올랐을 때 폭발했다. 무대 뒤에서 여성지도자들과 만날 때도 이미 드러났던 특유의 친화력은 방청석의 떠나갈 듯한 함성에 힘을 얻어 열강이 됐다. 그는 학생들을 향해 "21세기 초에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아느냐"고 했다.

클린턴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국무장관직 제의를 받고 처음엔 놀랐지만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해보고 싶어 결심했고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국무장관이 될지 몰랐다. 인생은 출발한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니 꿈을 좇아 나아가라"고 했다.

'마담 프레지던트(President·여성대통령)'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마담 세크러터리(Secretary·여성 장관)'가 된 클린턴은 "이루지 못한 일을 후회하느니 그 시간에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한다"고 했다. 인생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왔느냐는 질문엔 "중요한 건 그 어려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라면서, "과감하게 경쟁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라"고 격려했다. "임신한 모습을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바라보는 남자변호사들로부터 '출산휴가가 뭐냐'는 질문을 들어가며 일했던 젊은 시절"도 털어놓았다.

클린턴 장관은 취임 후 첫 해외순방으로 아시아를 택하고 공관에 창의적인 행사 아이디어를 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주한미대사관은 이화여대가 클린턴 장관이 졸업한 웰즐리대와 자매학교인 데 착안해 '여성'을 방한의 부(副)주제로 삼았다.

서울을 떠나기 전 조선, 중앙, 문화일보, KBS, 연합뉴스 여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선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호감을 느껴서인지 이번 아시아 순방 중 한 번도 반미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을 환영하는 '데모'를 보면서 기뻤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에 대해선 "상황에 대해 사려 깊게 분석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서울서 참석한 모든 행사를 다 취재했다"고 하자, 클린턴 장관은 "고맙다"면서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입력 : 2009.02.21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