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김영춘, 북(北) 군부 '원톱' 부상 /김정일의 次·三男 생모인 '고영희 라인' 소문(조선일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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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선일보 | 등록일 | 2009-02-16 |
출처 | 조선일보 | 조회수 | 1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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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에 따르면 원래 북한은 1995년 오진우(원수) 인민무력부장이 사망하기 전까지 군부 권력이 인민무력부 한곳에 집중되는 시스템이었다. 오진우는 6·25 때 김일성의 경호대장 출신이다. 그러나 1998년 김정일 위원장은 '선군(先軍·군을 우선하는) 정치'를 내세워 군을 직접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군부 권력을 인민무력부·총참모부·총정치국에 쪼개 나눠 주는, 일종의 '디바이드 앤 룰(divide & rule)' 방식을 택했다는 관측이다. 인민무력부는 군 행정만 담당하며 김일철 차수(대장과 원수 사이 계급)가 1998~2009년까지, 총참모부는 군 작전을 수행하며 김영춘 차수가 1995년~2007년까지 이끌었다. 군 인사와 감독권을 갖고 있는 총정치국은 조명록 차수가 1995년~현재까지 맡고 있다.
또 다른 축인 조명록 총정치국장은 오랜 기간 병을 앓고 있어 김정각(대장)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자 최측근인 김영춘 부장을 '원 톱'으로 앞세워 군부를 확실히 장악하고 안정화하려는 포석인 것 같다"(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는 분석이 우세하다. 문제는 김영춘이 1995년 이후 북한의 각종 도발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강경파라는 점이다. 동해 앞바다 잠수정 침투 사건(1998년), 대포동 1호 발사(1998년), 제1차 연평해전(1999년), 제2차 연평해전(2002년), 대포동 2호 발사 및 핵 실험(2006년) 등이 모두 그가 총참모장을 맡고 있을 때 일어났다. "김영춘은 평소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작전 구상이 취미인 스타일"(대북 소식통)이라는 소문까지 있다. 그는 야전사령관인 제6군단장과 총참모부 작전국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우리 군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가뜩이나 북한이 잇단 대남 협박과 미사일 발사 움직임 등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강경파 김영춘'의 등장이 북의 '모험' 가능성을 높여주는 또 하나의 징조가 아니냐고 우려하는 것이다. 김영춘이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그의 뛰어난 '정치적 처세술'도 한 몫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영춘은 김 위원장의 차남 정철과 3남 정운의 생모인 고영희(2004년 사망)가 살아있을 때는 '고영희 라인'이었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군 부대 내에서 고영희를 '평양 어머니'로 부르며 떠받들게 한 사람이 김영춘"(정부 소식통)이라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일부 전문가들과 언론은 "김 위원장이 이번에 김영춘을 발탁한 것은 고영희의 아들, 특히 3남 김정운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김영춘은 김 위원장 장남 정남의 후견인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급부상하던 90년대 중반에 같이 떴던 인물"(백승주 국방연구원 박사)이라며 '3남 후견인설'을 반박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어떻든 김영춘의 인민무력부장 취임을 계기로 북한 군부의 대남·대미 현안 개입은 앞으로 빈도도 잦아지고 강도도 더욱 세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입력 : 2009.02.13 02:44 / 수정 : 2009.02.13 07: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