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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제목 손잡은 노사 '불황(不況)속 평화' (조선일보)
글쓴이 조선일보 등록일 2009-02-06
출처 조선일보 조회수 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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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은 노사 '불황(不況)속 평화'
감원 안하고 투쟁 자제… 勞使문화 변해
구조조정 홍역 치렀던 'IMF 학습효과'도
'머리띠' 풀고 '허리띠' 졸라맸다
감원하는 글로벌 기업과 달라
최현묵 기자 seanch@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자동차 부품업체 ECS코리아의 임직원 120명에게 올겨울은 힘들지만 따뜻했다. 대구 달성공단에 있는 이 회사는 지난 연말 흑자 부도 위기에 처했다. 탄탄한 회사였으나 금융위기 여파로 일시적인 자금 부족에 빠진 것이다. 만기가 된 어음 4억원을 막을 수가 없었다.

위기 상황에서 임직원들이 사재(私財)를 털어 3억8000만원을 만들었다. 모자라는 금액은 2000만원. 이 돈을 메워준 것은 노조였다. 노조가 조합비 2000만원을 회사에 내놓은 것이다. 박응규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 노조가 돕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노(勞)도, 사(社)도 달라지고 있다. 노조는 투쟁 대신 협력 자세를 보이고, 사측은 감원 자제로 화답하는 분위기가 노동 현장 곳곳에서 형성되고 있다.

10여 년 전 IMF 사태 때 기업들은 대규모 감원에 나서 노사관계 악화의 홍역을 치렀다. 그 학습효과일까. 이번 위기에선 아직 기업의 대량해고도, 노조의 강경투쟁·파업도 없는 예상 밖의 노사 평화가 펼쳐지고 있다.
노사갈등의 '뇌관'인 현대자동차 노조는 3일 집행부 회의에서 파업 수순 돌입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1월 19일 파업 전 단계인 쟁의 발생을 결의했지만, 이날 회의에선 일단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사측은 고용유지로 응답하고 있다. 현대차는 극심한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으나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임원 임금을 10% 삭감하는 등의 노력으로 고용을 유지해 경기 회복기에 경쟁력 강화로 연결시킨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대량해고 사태가 빚어지는 미국·일본 등의 글로벌 기업과 차이가 크다. 현대차의 경쟁자인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3000명을 줄이기로 했고, 미국의 자동차 '빅3'도 대량 감원에 나서고 있다.

전자업계에서도 일본 소니가 일본 내 정사원의 3%인 2000명 이상을 감원키로 했지만, 작년 4분기에 9400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한 삼성전자는 감원 계획이 없다.

기업의 고용 유지 전략은 경쟁력 차원의 계산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때의 대량 감원이 이후 경기 회복기에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고 노사 대립의 원인이 됐다는 반성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지난 1월 파업 발생이 제로를 기록했다. 극심한 경제 위기 앞에서 노조와 회사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여기에 불법 파업은 용인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합쳐졌다. 노와 사와 사회인식의 변화가 노사평화 국면을 펼쳐낸 것이다.

"직원이 보물인데 어떻게 주차비를 받습니까? 반월공단에서 전 직원이 공장 부지 내에 주차를 맘껏 할 수 있게 하는 곳은 우리 회사뿐일 겁니다."(박모 이사)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S전기는 8년 전만 해도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정치파업에 참여하면서 투쟁 구호가 난무했다. 그러나 3일 찾아간 이 회사는 종업원들을 위한 경영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었다. 8년 전 홍역을 겪은 뒤 회사측은 이후 1년에 두번씩 사장이 직접 전 직원을 모아놓고 경영 상황을 설명했고. 이익금도 종업원·주주(배당)·투자 자금으로 정확하게 3등분해 나눠 가졌다. 덕분에 불황이 깊어진 지난달 노사는 임금동결에 합의했다. 불황 속에서 회사가 살아야 근로자도 산다는 위기 의식의 결과였다.

노사관계 변화는 노조의 변화뿐 아니라 경영진의 인식 전환이 큰 역할을 했다. 10여년 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했던 기업체들도 당시의 대량 감원이 회사의 경쟁력을 저해하고 이후 10년간의 노사 대립의 원인이 됐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일종의 학습효과로 인해 현 경제위기에도 대규모 구조조정보다는 무급휴업 등을 이용해 숙련 노동자들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도 "외환위기 당시 무분별한 감원으로 이후 경기 회복기에 회사의 생산성 저하, 노사갈등을 겪었던 기업들이 이번 경제 위기 들어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본 인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사의 변화에 가속제가 된 것이 사회 여론의 변화였다. 국민 여론에 밀린 서울메트로, 철도공사 노조는 지난해 결국 파업을 철회했다. 노동부 권혁태 노사갈등대책과장은 "국민 여론이 노조의 강경 투쟁을 억제하는 효과가 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낙관하기는 이르다. 이인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직까지는 불황의 충격파가 100% 반영되지 않아서 대기업들이 고용 유지에 여력이 있는 단계"라며 "하지만 하반기 경제 상황에 따라 구조조정이 확산되면 노사 평화 기조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 취재에는 송원형 인턴기자(서울대 국사학과 4학년)가 참여했습니다.
입력 : 2009.02.05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