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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여당이 민생 운운하다니 얼굴에 어떤 철판을 깔았나"
▲ 한나라당 의총에서 박근혜대표가 사학법 장외투쟁방법에 대한 의원들의 갑론을박을 심각하게 듣고 있다. /임현찬 기자
때로는 목젖을 울리는 강한 웅변보다 침묵의 호소가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28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그랬다.
사학법 투쟁대책이 주제였던 이날 한나라당 의원총회장은 크게 혼란스러웠다. 장외투쟁 계속론, 병행투쟁론, 국회등원론이 뒤섞였다. 일부 소장파들의 조직적인 박근혜 흔들기까지 끼어들면서 박 대표를 지원사격하는 의원들과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근 한차례 박 대표를 정면비판한 바 있는 고진화 의원은 “사학법 투쟁은 국민의 지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치고 나왔고, 전재희·김명주·박형준 의원은 병행투쟁을 주장했다. 예산안 등 주요사안을 위해 한나라당이 등원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소장파 리더격인 원희룡 의원은 의원총회에 앞서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 “박 대표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박 대표는 의원들의 장외투쟁 찬반토론을 끝까지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일어섰다. 마이크를 잡자마자 곧장 김명주 의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정면으로 반박하기 시작했다. 김 의원이 “영남권에서 폭설이 내렸더라도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등원을 거부했겠느냐. 하루라도 빨리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 발언대목을 문제삼은 것이다.
박 대표는 “얼마 전 언론에 ‘영남이라도 이럴거냐’라고 한 기사를 보고 내가 엄청나게 분노했다. ‘정치권에 대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니’하는 식의 말이야 말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전형적인 발언이다. 그런 얘기가 의총에서 나왔다는 것은 유감”이라고 싸늘하게 지적했다. 이 때 소장파 의원들은 찔끔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잠시 쉬었다가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으며 그의 연설은 시작됐다.
“나는 극한투쟁을 벌이지 않는 정치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야당은 극렬하고 선명하게 싸워야 야당이지 이게 무슨 야당이냐고 엄청나게 욕을 먹었지만 그것(상생의 정치)를 지켜왔다. 참을 만큼 참았다. 저쪽에서 뺨을 때리고 발길질을 하고 너 죽어라 식으로 때렸다. 그러나 우리가 맞아죽을 때까지 참아야 하느냐. 자유민주주의의 뿌리까지 뽑아버릴 엄청난 중대한 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정권에 대해 여기까지 와서 맞아주겠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이 과연 박 대표의 어법이었나 싶을 정도로 톤은 강했다. 노 정권과는 더 이상 상생의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박 대표는 “(정부·여당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지금 들어가자고 할거면 처음부터 (장외투쟁을) 시작할 필요가 없었다”며 “지금 들어가는 것은 완전히 항복하는 것이고 날치기를 인정하는 것이고 이 법이 시행되도 상관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여태껏 고수했던 장외투쟁을 뒤집어 엎어야 하느냐. 이렇게 까지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으로 이어졌다.
박 대표는 “국가보안법을 직권상정하고 날치기 처리한다면 그 때 다시 날치기를 당한 다음 장외투쟁을 한다고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묻고 “이번 사학법 문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만일 여기서 버텨내지 못한다면 국보법을 비롯한 모든 법안을 날치기 처리할 때 우리를 만만히 보고 나갈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까지 (장외투쟁을)하는 데 대해 이미 비난받을 각오도 하고 나왔다”고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민생을 외면한다’는 지적에 대해 “정권을 잡은 열린당이야말로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너무 돌보지 않았다”며 “이 정권이 무슨 민생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 얼굴에 어떤 철판을 깔았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박 대표는 사학법 투쟁을 이념투쟁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특정이념을 가르치는 것을 참고 넘어가야 하느냐. 이것이 쓸데없는 이념문제라고 생각하느냐”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정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원들이 박 대표의 호소에 빨려드는 분위기 속에 박 대표는 고 육영수 여사를 언급했다. “나는 남북 문제에 상당히 넓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까지 북한에 의해서 잃었지만 그대로 북한에 가서 김정일을 만나고 왔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이념문제를 이것이…”
박 대표가 10여초간 말문을 잇지 못하자 의총장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고개 숙인 박 대표의 눈에 이슬이 맺힌듯 아닌듯 보이기도 했다. 잠시 후 소속의원들은 박 대표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고, 박 대표는 다시 고개를 들며 “이렇게 지금 가는 길이 옳은 길이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힘을 합치면 나중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고 역사에 옳은 평가도 받을 것이다. 반드시 이길 수 있다”며 연설을 끝냈다. 한나라당이 박 대표 특유의 ‘여성적 카리스마’에 굴복하는 순간이었다.
의총에선 의원들의 다양한 말들도 쏟아져 나왔다. 강경투쟁을 주장하는 의원들은 “하이에나 기질을 가져야 한다”(이진구) “종교계는 순교라는 단어 사용하고 사학계는 정권퇴진 운동하는데 한나라당은 ‘탄핵의 추억’에 짓눌려 있다”(주성영) “무식하게 나가야 한다”(한선교 의원)고 했다. 김광원 의원은 여야 영수회담을 주장했다.
홍석준기자 udo@chosun.com
입력 : 2005.12.28 17:33 34' / 수정 : 2005.12.28 17:38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