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조선일보 http://www.chosun.com 에 있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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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위기는 대한민국의 저력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일컬어진다. 대표 기업들의 경쟁력은 경쟁자를 앞서고 있고, 인재 경쟁력과 공동체 에너지는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저력,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잠재력은 무엇인가.태안 바닷가가 기름 범벅이 된 지 16일 만인 2007년 12월 22일. 기름을 닦기 위해 모여든 자원봉사자가 30만명을 넘어섰다. 일본이 자랑하던 후쿠이현 미쿠니(三國) 유조선 사고 때의 '3개월간 자원봉사자 30만명'(1997년) 기록은 그렇게 깨졌다.태안에선 3개월 동안 미쿠니의 4배인 123만명이 모여들었다. 울릉도에서 온 부녀회 회원이며 시각장애인, 그리고 48일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으며 묵묵히 기름을 닦은 탈북자 등이 함께 '태안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기적은 자주 있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강릉을 강타한 날, 전국에선 3187명이 복구를 위해 모여들었다. 복구 3개월 동안 100만명 이상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했고, 800여만명의 국민이 1300억원의 성금을 모았다.10년 전 외환위기 때는 2개월 동안 349만명이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 225t(21억7000만달러 상당)을 모았다. 전체 가구 중 23%가 동참한 것이었다. 1년 뒤 신용평가회사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올리며 '금 모으기 운동'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대한민국 국민들의 잠재 의식 속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렬한 운명 공동체 의식이 깔려 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예외 없이 공동체를 생각하는 집단 에너지가 분출됐고, 그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1973년 오일쇼크, 기름값이 5개월 사이 네 배까지 뛰었다. 사람들은 기름값 시위를 벌이는 대신 악착같이 기름 소비를 졸라 맸다. 그 이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73년(6.4%)의 5분의 1 수준(1.3%)으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7.2%의 성장률을 유지했고, 수출은 무려 38%나 늘렸다.한 발 더 나갔다. 기름 살 때 쓸 돈을 기름 파는 나라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1978년 한 해만 해도 14만명의 건설 노동자가 중동에서 땀을 흘렸다. 이렇게 해서 5년간 중동에서 205억달러를 빨아들였다. 수출의 40%를 담당한 셈이다.1960~70년대 경제개발에 필요한 달러가 필요하자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가서 달러를 벌어 보냈다. 독일로 파견된 광부들은 지하 1000m 막장에서 탄가루 묻은 검은 빵을 먹었고, 광부·간호사 1만8659명이 연간 1000만달러를 한국에 부쳤다. 1964년 12월, 독일 함보른 탄광을 방문한 모국의 대통령 앞에서 이들은 참고 참았던 눈물을 한없이 뿌렸다.
입력 : 2009.01.01 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