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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Weekly BIZ] 폐허로 변한 '세계의 공장' 중국을 가다 (조선닷컴)
글쓴이 조선닷컴 등록일 2008-12-27
출처 조선닷컴 조회수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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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폐허로 변한 '세계의 공장' 중국을 가다
 
 
신음하는 '세계의 공장' 중국 - 광둥성 선전·둥관·광저우

르포

 
3개월새 6만 7000개 도산… '세 놓는다' 광고판만 즐비

 

 

둥관·광저우=이항수 특파원 hangs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베이징=이명진 특파원 mjle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유하룡 산업부 기자 you11@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지난 18일 오후 2시쯤 중국 광둥(廣東)성 둥관(東莞)시 장무터우(樟木頭)진 푸주(富竹) 1번지.

한때 6000여 명의 일터였던 세계 최대 완구회사 허쥔(合俊) 공장은 도산한 지 약 두 달 만에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공장 정문은 굳게 닫힌 채 법원에서 보낸 10여 건의 경매 처분 통고서만 철문 곳곳에 덕지덕지 붙었다. 어느 건물 몇 호실에 있는 기계와 설비 등을 언제 경매에 부친다는 내용들이었다. 철문 안쪽엔 작업대와 자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너덜너덜한 천 조각 사이로 잡초가 무성했다.

대로변에서 공장 문까지 500m의 길 양 옆엔 40여 개 상점과 식당들이 들어섰지만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문을 연 가게 5곳에도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문 닫힌 가게마다 '세 놓습니다(有房招租·유팡자오쭈)'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하루 6000명이 드나들던 번잡함이나, 10월 15일 갑자기 문을 닫은 뒤 쫓겨난 종업원 수천 명이 연일 시위를 벌이던 소란스러움도 옛 이야기로 변했고 그저 적막감만 감돌았다.

기자가 텅 빈 공장 정문 앞을 서성이자 왕(王·33)씨라고만 밝힌 후난(湖南)성 출신 남자가 다가왔다. 1999년부터 10년간 이곳에서 일했다는 그는 "체불된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후난성 출신 노동자들의 대표로 남아 이 근처에 살면서 매일 한번씩 여기에 나와 본다"고 말했다. 그는 체불 임금 중 기본급은 정부에서 지급해 줬지만 나머지 야근 수당 등은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 임금 체불 사태로 근로자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중국 둥관시의 지안롱(Jianrong) 가방 공장에서 지난 19일 한 근로자가 지친 표정으로 앉아있다. 경기 침체 여파로 중국 광둥성에서만 올 들어 9월까지 공식적으로 도산한 기업이 7184개에 이른다. /AP연합뉴스

둥관은 전세계 완구의 70%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단일 완구 생산기지였다. 하지만 허쥔의 몰락과 함께 둥관의 완구 업계도 사상 최악의 시련을 겪고 있다. 둥관시 랴오부(寮步)에 있는 완구 생산업체 C사의 한국인 생산부장은 "10년 전 완구산업이 호황일 때에는 한해 1억2000만달러를 수출했지만 작년엔 2800만달러, 올해는 2000만달러로 수출액이 줄어들어 종업원도 800명에서 300명 정도로 줄였다"면서 "이 고비만 넘기자는 각오로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세계 경제의 마지막 보루로 지목되던 중국 경제. 그러나 지난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세계 경제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경계 경보는 순식간에 공습 경보로 바뀌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을 대표하는 광둥성의 선전과 둥관(東莞), 광저우(廣州)의 공업지대를 둘러본 결과 중국의 성장 엔진은 급격히 꺼지고 있었고 피해 범위는 예상보다 넓었다.

기자는 18~19일 둥관역부터 승용차로 107번 국도와 고속도로 등을 통해 둥관의 장무터우(樟木頭), 황장(黃江), 랴오부(寮步), 둥청(東城), 허우제(厚街)를 거쳐 광저우 쪽의 중탕(中堂)과 신탕(新塘), 화룽(化龍) 등지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대로변의 크고 작은 건물마다 '공장 임대(出租廠房·추쭈창팡)'라는 문구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힌 대형 광고판들이 사방에 내걸려 있었다. 대형 건물에는 '사무실 임대(寫字樓招租·셰쯔러우자오쭈)' 간판이 벽면에 내걸렸다. 또 공장 임대 광고가 붙은 지역의 마을마다 '빈방 세놓습니다(有房招租·유팡자오쭈)'란 조그만 간판들도 덕지덕지 붙었다. 이런 임대 광고는 광둥성의 선전~둥관~광저우를 다니는 동안 곳곳에 널려 있었다.


▲ 지난달 25일 중국 관둥성 둥관의 카이다(Kaida) 장난감 회사에서 해고된 직원들이 공장 기계를 부순 뒤 사무실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AP


■둥관 공장 30%가 비어 있다

"세 놓는다는 광고판들이 왜 저렇게 많아요?"

기자의 질문에 운전사 중웨이창(鐘偉强·43)씨는 "지난 두 달 사이에만 둥관 인구 중 200만명 이상이 빠져나갔는데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중씨는 "정부가 발표를 안 해서 그렇지 둥관 인구는 여름까지 1000만명을 넘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갑자기 내지의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 도시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돌아가면서 지금은 800만명 미만으로 줄었다" 고 말했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에서도 엔진 역할을 해온 것이 광둥성이다. 이 지역은 지난해 중국 전체 수출의 33.7%를 담당했다. 전 세계 팩시밀리와 컬러TV, 에어컨의 절반, 그리고 냉장고와 소형 컴퓨터의 4분의 1이 이곳에서 각각 생산된다. 이런 광둥성 경제의 갑작스런 추락은, 중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 위기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글로벌 경기 침체를 가속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광둥(廣東)성 중소기업국에 따르면, 올 1~9월 사이 광둥성에서 파산한 기업이 공식적으로 7148개사에 이른다. 〈도표 참조〉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10~12월에는 도산 기업이 폭증해 6만7000개에 이른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중국 당국은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둥관시가 공장 임대가 가능한 9만2064개의 건물을 샘플 조사한 결과, 27%인 2만4887개가 빈 상태로 방치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홍콩 문회보(文匯報)가 지난 15일 보도했다.

금융위기의 충격은 의류·신발·완구 등 전통 산업에 한정된 게 아니다. 광저우 시내에 있는 첨단 IT산업단지인 톈허(天河)구 소프트웨어 단지에는 올여름까지 20여 개 회사가 입주해 있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10개 이상이 빠져 나가 사무실들이 텅텅 비어 있다. 그런데도 입주 문의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이 건물의 3층에 있는 한 인터넷 광고회사는 올 상반기에는 직원 100명이 500㎡의 사무실에서 북적거렸지만, 지금은 20명으로 축소됐다.


■내수시장도 무너져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중국 경제가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영향을 다소 받긴 하겠지만, 연착륙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세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수출에 의존해 온 중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기 시작했고, 경제 전망도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

중국의 11월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2% 감소했다는 발표는 중국 정부는 물론 전 세계 경제 전문가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매달 20%를 넘던 수출 증가율이 10월에 19.2%로 떨어진 것만으로도 경기 둔화의 전주곡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11월엔 한술 더 떠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6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은 "중국은 GDP 대비 수출 비중이 30%를 넘을 만큼 수출 의존도가 큰 나라"라며 "10월 이후 급격한 수출 감소는 중국 경제를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입도 무려 17.9% 급감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내수(內需) 시장도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 경제가 연착륙하고 세계 경제로부터 디커플링(decoupling·탈 동조화)될 것이라는 오랜 믿음은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기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둥관시 관타이루(莞太路) 주변의 허우제(厚街) 가구시장에 가보면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기대가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약 1㎞의 길가에 수백 개 가구점들이 밀집해 있는 이 가구시장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거려 광저우(廣州)나 선전(深�)의 번화가 못지않았다고 부근에서 만난 부동산업자 판(潘)모씨가 전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어 신장(新疆)의 산골짜기처럼 사람 그림자도 찾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예전에 이 근처 공장들은 ㎡당 12~14위안에 임대됐지만 지금은 6위안에 내놔도 보러 오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기업주 야반도주를 막아라'-지방 정부는 감시반까지 가동

중국의 희망이었던 기업들은 이제 중국 정부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광둥성 지방 정부들은 야반도주하는 중소기업 사장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11월 1일은 둥관시 장안현 창안(長安)진에 있는 웨이쉬(韋旭) 신발공장의 월급날이었다. 타이완 자본으로 설립된 장안현 최대 신발공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장 장자잉(張佳潁)의 휴대폰은 이미 전날 오후부터 불통이었다. 이날 3000명의 격분한 종업원들을 향해 창안진 정부는 "여러분 월급은 창안진 정부가 대신 주겠다"고 달랬다.

둥관시 노동국에 따르면 9~10월 두 달 동안 둥관에서 회사가 도산한 뒤 임금을 체불하고 사장이 도망간 업체가 117개, 피해 종업원은 2만명을 넘었다.

지방정부들은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요주의 기업들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최근에만 45개 기업체 사장이 도망간 광저우 하이저우(海州)구는 '도산기업 노동자 응급처치' 조례를 만들고, 이 조례에 따라 매일 '라오쯔쉰차위안(勞資巡査員)'이라는 전문 감시조를 18개 지역에 파견해 기업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다. 하이저우구 노동국 관계자는 "감시조는 50인 이상을 고용한 533개 기업의 경영 상태와 임금 지불 현황 등을 날마다 조사한다"고 문회보에 밝혔다.




■내년 중국 경제 경착륙 전망 늘어

중국 정부는 매년 신규로 공급되는 700만명 이상의 노동 인력을 흡수하기 위해 매년 최소한 8% 경제 성장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작년처럼 두자릿수(11.9%)까지는 안되더라도 8% 달성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불과 2~3개월이 지난 지금 중국 경제의 경착륙을 점치는 분위기가 우세해졌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은 5.0%, 홍콩 증권사인 CLSA는 5.5%로 전망했다. 세계은행은 7.5%로 전망했지만, 이 또한 중국 정부의 마지노선인 8%를 밑돈다.

수출 급감과 경기 급락, 부동산 가격 폭락, 여기에 실업 문제 및 사회 불안까지…. 중국은 지금 개혁·개방 30년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공산당 싱크탱크의 한 관계자는 "실업 급증은 이미 정치 문제이며, 중난하이(中南海·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층들의 거주지)의 최대 근심거리"라고 털어 놓았다.

중국 연구기관들은 내년에 1000만명 이상의 농민공과 최소 200만 명의 대졸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산당 중앙 당교(黨校·공산당 간부교육기관) 저우톈융(周天勇) 부주임은 최근 중국경제시보에 발표한 글에서 "실질 실업률이 올해 12%에 달하고 내년에 14%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가 추정한 올해 공식 중국 실업률 4.5%의 3배를 넘는 수치다.

외신과 일부 전문가들은 '시한폭탄'처럼 누적된 중국 서민들의 불만이 톈안먼(天安門) 사태 20주년을 맞는 내년 폭발하면서 "잘살게 해줄 테니, 민주화는 참으라"는 식의 개발독재형 공산당 통치체제에 위협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한다.

그러나 중국 지도층에서는 '체제 위협론'이 과장됐다고 반박한다. 중국 정부 싱크탱크인 국무원 발전연구센터는 "내년에 4조위안(약 77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이 본격 집행되면 900만명의 신규 취업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중국은 내년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

중국 경제의 경착륙은 한국에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은 한국 경제의 가장 듬직한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의 수출 구조를 보더라도 그렇다. 한국이 중국에 중간재나 부품을 수출하면, 중국에서 완제품으로 조립한 뒤 선진국 시장으로 나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자리 잡았고, 한국은 다른 국가와의 교역에서 본 경상수지 적자를 중국 한 나라에 대한 흑자로 다 만회하고도 남았다. 국내 일각에서는 여전히 중국 경제가 한국 경제의 최후의 보루일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중국 경제의 추락은 우리에게 미국 경제의 침체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만용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내년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입력 : 2008.12.27 02:32